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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 삼촌과 조카의 약속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0-15 20:29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요. 그 중에 약인” (約因, consideration)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약인은 흥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제공하기로 한 무언가을 가리키는데요. 이 무엇은 반드시 상대방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계약이란 가치가 있는 무언가의 교환인 것입니다.

 

약인의 개념을 정확히 한 판례로 1891년 뉴욕 주 항소법원 (NY Court of Appeals) 에서 결정한 Hamer v. Sidway 가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1869 3 20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윌리엄 스토리 (William Story) 라는 사람이 15살 난 자신의 조카에게 $5,000을 주기로 약속을 합니다. 다만 사려가 깊었던 윌리암은 몇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조카가 21살이 될 때까지 술, 담배, 도박을 멀리하고 욕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카는 흔쾌히 승낙했고 삼촌과의 약속을 지킵니다.

 

드디어 조카가 21살이 되던 해, 조카는 삼촌에게 $5,000을 요구합니다. 윌리암은 흔쾌히 동의했지만, 너무 어린 조카에게 큰 돈을 주는 것이 영 불안했습니다. 당시 $5,000은 지금으로 치면 약 $10,000의 가치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윌리암은 이 돈을 조카가 좀더 클 때까지 맞아두었다가 나중에 주기로 합니다. 물론 이자까지 계산해서요. 조카는 삼촌을 말을 믿고 기다리기로 하지요. 이 모든 내용이 서신을 통해 오고 갔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문제는 1887년 윌리암이 세상을 떠나자 생겼습니다. 이때까지 조카에게 약속한 $5,000은 미지급상태였는데요. 루이사 하머 (Louisa Hamer) 라는 여자가 이 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내막은 이랬습니다. 윌리암이 살아있을 때 그의 조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5,000의 대한 권리를 자신의 아내에게 주었고, 그 아내는 나중에 그 권리를 루이사에게 양도했던 것입니다.

 

윌리암의 유산관리인인 프랭클린 시드웨이 (Franklin Sidway) 는 루이사의 요구를 거절하며 윌리암과 조카 사이의 약속은 약인이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계약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윌리암은 $5,000에 대한 대가로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 다툼은 법적 싸움으로 이어졌고 항소에 항소를 거처 뉴욕 주에서 가장 높은 법원인 항소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재판은 결국 루이사의 승소로 끝나는데, 판결문을 쓴 파커 (Parker) 판사는 법적 권리를 가진 행위를 자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대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윌리암의 조카가 21살이 될 때까지 술, 담배, 도박을 멀리하고 욕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충분히 약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무엇을 하기로 한 약속과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계약이 성립되는데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고요

 

혹자는 조카의 이러한 약속이 윌리암에게 과연 $5,000의 가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점은 제3자가 논할 수 없겠지요. 그저 조카가 바르게 커주길 바라는 윌리암에게 조카의 약속은 $5,000의 가치가 있었다고 믿는 수 밖에요.

 

 

 

*법적 책임면제고지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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