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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두 번째 이야기 – 주식회사 (3)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05-20 14:55

사실 남해회사는 사업적인 면에서 부실한 회사였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일명 “아시엔토”(Asiento)라고 불리는 노예무역권이었습니다. 영국정부는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에 차후 30년 동안 11만 4,000명의 노예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는데 이 권리를 양도받은 회사가 남해회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채를 남해회사에 떠넘기기로 한 영국정부의 선전과 아시엔토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기대는 전국적인 투기 열풍으로 이어지면서 남해회사 주식은 1720년 1월부터 8월까지 10배 이상 뛰게 됩니다.

남해회사 주식이 오르면서 덩달아 다른 주식도 상승했고 여기에 편승하려는 많은 회사가 허무맹랑한 사업계획을 선전하며 무허가로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회사는 일명 “거품”(Bubbles)으로 통했고 영국정부는 “거품규제법”(Bubble Act)을 통과시켜 무허가 주식발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1720년 8월 드디어 남해 회사의 주가 역시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주가는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주가는 불과 몇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고 수많은 사람이 파산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Newton) 역시 이때 약 2만 파운드를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주의 법칙을 알 수는 있어도 인간의 광기를 예상할 수는 없다.”(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the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물론 제때 투자에서 손을 뗀 사람은 상당한 이익을 얻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작곡가 헨델(Händel)은 이때 얻은 이익으로 왕립 음악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720년 12월에 시작된 수사는 남해회사가 얼마나 방만하고 부도덕적으로 운영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남해회사의 임원은 부실한 경영상태를 잘 알면서도 허위로 회사의 사업을 포장했고 주가가 붕괴하기 전 자신들의 주식을 서둘러 처분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이 남해회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방만한 경영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남해회사 수사를 맡은 수사 위원회는 회계사인 찰스 스넬(Charles Snell)에게 남해회사 장부에 대한 조사를 맡기는데 이 조사에 관한 보고서가 세계 최초의 회계 감사 보고서가 됩니다.

남해회사 사건은 여러 사람의 투자를 받은 주식회사의 운명이 투명하지 못할 때 어떠한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예로 오늘날 회사법(Corporate Law)과 증권법(Securities Law)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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