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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수필당선작] 김난호 'Flute을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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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6-01-01 00:00

수필 부문 당선작

Flute을 배우며

김난호
 
화요일은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쁜 날이다. 내게 언제 한가한 날이 있었느냐고 친구들은 예쁜 눈 흘김을 하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이어주는 주업에 3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12시부터 또 3시간은 내년에 한국 갈 비행기표를 구입할 자금을 마련하는 일에 알차게 보내고, 오후 4시부터 1-2시간은 Flute을 배우는 데  시간을 보낸다. Flute이 끝나면 부지런히 집으로 달려와 식구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작은 아들에게  이른 저녁을 먹여서 카뎃에 데려다 준다. 이제는 쉴 만도 하지만 아들이 훈련 받는 동안 얼른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꼬박 2시간  운동을 한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  아들도 데려 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친구들은 이쯤 되면 그 다음날은 모든 일정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너끈히 일어날수 있으니 아마도 그 이유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은 그렇게 사는 나를 이제는 강철 덩어리인 줄 알고 때때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 주변머리 없는 사람은  아무 불평도 없이 그 요구를 다 들어주곤 하는데 어떤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우연히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조금 섭섭한 내 심정을  털어 놓았더니 언니가 "이 바보야,  여자는 사랑 받으려면 적당히 연약한 척, 아픈 척,  때로는 남편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이 기대기도 하고 보호본능이 솟아나도록  백치인 척도 하는 거야." 하면서  핀잔을 준다. 그러나 내 적성이 아닌 것을 뭐 하러 복잡하게 신경쓰나 싶어 그냥 나 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갈 수록 옛날 시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에 공감이 간다.   어느날 본가에서 명절을 지내기 위하여 차례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집에 있는 양념이나 야채를 어머님이 또 사오셨다. 나중에 냉장고에 똑 같은 야채들이 즐비한 걸 아신 뒤에 후회하시면서 괜히 내 눈치를 보시는지 "너도 늙어 봐라." 하시는 거다. 속으로는 인정을 하지 않고 교만한 반발을 하면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나도 그렇게 점점 변해 간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무엇이든지 배우는 일에 거부감 갖지 말고, 체력도 더 단련시켜서 최대한 나의 알찬 삶을 가꾸는데 게으르지 말자고.

등산에, 운동에, 나름대로 충실한 가정 살림살이에, 성가대 활동까지 합치면 동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정도다. 그러면 정서적으로는 무엇을 할까 하니 틈틈이 책도 읽고, 피아노도 어느 정도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고.....그래서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Flute을 배우고 있다. 초보반이  없어서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것이 이미 시작 한지 2개월이 지난 반인데 학동들은 모두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하나만 알려줘도 둘을 알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연습해오라고 하셔서 나를 받아 주신 성의도 너무 감사하고, 아이들 앞에서 아줌마동기생의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것도 두려워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하게 진행되어 가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마음을 빈정거리는 투로 표현하는 남편이 방해꾼이 될 줄이야!

제발 시끄러우니 그만 좀 하라고 하면서 돈이 아깝다고 놀려댄다. 힘들게 시작한 것이니 열심히 연습하라는 깊은 뜻이 있음으로 해석하지만 할 수 없이 집안의 가장 구석진 방 옷장 안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있다. 여기도 시끄럽다고 하면 차를 타고 공원에 가서 연습하려고 한다. 때때로 소리가 잘 나지도 않고, 운지법도 익숙치 않아 공부하는 아들에게 눈치를 보며 도움을 청해 본다. 그러나 대답은 무조건 연습하란다. 학생군악대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아들이 든든하다 했더니 아들도 다 소용없다. 그래서 밀어붙이기 전법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까짓 거 무조건 연습하면 되겠지 하면서 열심히 연습했더니 이제는 제법 짧은 노래는 무리없이 하는 정도가 되었다. 이론 시간에 선생님께서 음악기호에 대하여 영어로 무어라고 하는지 질문 하신다. 아이들은 아주 잘 대답한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나에 대한 배려이신지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다시 질문하신다. 아이들은 한국말로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잠잠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느라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아이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이었는지 일제히 "와아" 하며 박수를 쳐 준다. 때로는 아이들의 곁길로 새는 재잘거림으로 수업이 중단되기도 한다.

"선생님, 아파요."
"선생님, 물 쏟았어요."
"왜 제가 먼저 해요?"
"선생님, 저기 큰언니 먼저 하면 안돼요?"

내가 망설이면 안 된다 싶어 용감하게  먼저 연주한다. 아이들끼리 소리없이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마주치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위태위태하게 숙제를 마치면 아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쳐 준다. 그저 아이나 어른이나 칭찬은 환각제고 치료약이다. 내 도취에 빠져 우쭐해지고 아이들의 놀라움이 내게는 도움닫기이고 에너지이다. 고마운 아이들.

집으로 돌아와도 아이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내내 가슴에 남아 있다. 번개가 스치듯 금방 지나가 버리는 한 시간이 너무 아쉬워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악보 끝에 꼭꼭 적어와 틈틈이 연습을 한다. 거울을 보며 입 모양도 교정하고 소리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몸 동작도 예뻐야 하기에 자세도 다듬어 본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비워지는 내 생의 한 가운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했었다. 지금은 내게 빈 공간이 없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시작한 큰 아들을 보내고, 아들의 방문 앞을 지나가지도 못하고 섭섭함에 가슴저린 기억. 큰 아이 보다 먼저 사춘기를 맞는 듯한 작은 아이. 큰 아이보다 휠씬 먼저 품안을  떠나는 허전함을 안겨준 작은 아들에 대한 섭섭함을 채워 준 선택이다. 내 곁에 늘 있는 분명한 나의 가족이며 나 또한 분명한 그들의 가족이지만 서로가 완전한 위안이 되지 못함을 이제야 알아간다. 가족이란 큰 고속도로는 늘 같이 가야하지만 때로는 혼자 가야만 하는 사잇길도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럴 때 혼자 남겨진 듯 허전하고 외로운 여정의 투정을 남에게 쏟아놓고 그 영역을 침범하기에 앞서 스스로 찾아 홀로서기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살수 있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생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늘 지난 다음에야 아쉬워 한다. 지금 이 순간 또한 지난 다음에 후회하지 않으려 잡초처럼 하찮은 것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막막하고 결정을 내리기 힘든 일이 닥쳐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그럴 때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되겠지 생각하며 살아가리라.

Flute을 배우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다.  나의 인생 또한 내가 연주하는 한편의 음악인 걸. 나의 후회없는 삶을 가꾸기 위해 연습을 한다. 내 나이, 마무리로 가는 것이 아니고 남은 시간을 더 아름답게 엮어 가기 위해.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소중한 나의 음악을 멋지게 연주하기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

 

당선소감

제 곁에 있는 이웃에게서 얻는 기쁨과 애환과 감동을 저는 다만 옮겨 적은 사람일 뿐입니다. 큰 상을 받고 보니 그분들이 받을 상을 제가 대신 받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우리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쓰는데 게으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같이 하고 싶은 분이 많아지면 아름다운 우리 글은 더욱 아름다워 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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