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부터 우리라는 음력 1월 15일인 정월보름(올해는 양력 2월 9일)이면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며 오곡밥, 부럼, 묵은 나물, 귀밝이술 등을 먹었다. 또 풍요를 기원하며 밭과 들의 마른 풀을 태워 벌레를 잡고 비옥한 땅 만들기에 들어갔다. “내 더위 사시요” 하며‘더위 팔기’ 풍습을 통해 여름철 건강 또한 기원했다. 이러한 풍습은 먹을 것이 풍부해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월 보름에 먹는 요리에 숨은 ‘건강 비결’을 알아보자.
-
First Full Moon Food 1.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종합영양제 ‘오곡밥’오곡밥은 우리나라에서 경작되었던 다섯 가지 곡식인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으로 지은 밥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해 추수해 보관했던 곡식을 다음해 농사를 위해 선별하고, 남은 곡식을 모아 밥을 지어 먹었다. 조상들은 오곡밥을 해먹으며 한해 농사가 잘 되길 기원했고, 이때만큼은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었다.
경희의료원 사상체질과 이준희 교수는 《경희의료원보》를 통해 오곡의 특징을 소개했다. 찰지고 단맛이 있는 찹쌀은 성질이 따뜻하며 소화기를 따뜻하게 해 구토, 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소화기가 약한 소음인에 좋다. 차조 또한 소음인에게 좋은데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다. 수수는 소화는 덜 되지만 몸의 습기를 없애주며, 열을 내려 태음인에게 좋다. 고단백인 콩도 태음인에게 좋다.
오장을 보하고, 십이경락의 순환을 돕고 장위를 도와준다. 팥은 화와 열이 많은 소양인에게 좋다. 맛이 달며 부종을 빼주고 이뇨작용을 도우며, 종기와 농혈을 배출하고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한다. 오곡밥은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식품이다. 식이섬유, 미네랄, 비타민, 단백질이 풍부해 변비를 없애고, 각종 생활습관병 예방에 좋다.
Tip 오곡밥 만들기
오곡밥에 들어가는 팥은 팥알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삶아서 넣어야 다른 잡곡과 함께 부드럽게 씹힌다. 콩과 잡곡은 충분히 불려 넣는 것이 좋다. 잡곡은 쌀보다 단단하고 까끌까끌하므로, 평소 밥을 지을 때 붓는 물의 양보다 10% 정도 물을 더 부어야 오곡밥을 맛있게 지을 수 있다. 이때 팥 삶은 물을 넣으면 고소하다. 오곡밥을 차지게 지으려면 압력솥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First Fool Moon Food 2.
귀의 건강과 좋은 소식 기원 ‘귀밝이술’한자로 이명주(耳明酒)인 귀밝이술은 정월 보름날 아침, 식사하기 전에 차게 해서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정월대보름은 남녀노소 누구나 한 잔씩 술을 마실 수 잇는 유일한 날이었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1년 동안 귀가 건강하고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고 해,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좋은 쌀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술을 빚었고 때로는 한약재를 넣기도 했다.
귀밝이술 문화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해록쇄사(海錄碎事)》에는 '귀밝이술'이라는 의미인 치롱주(治聾酒)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러시아에서도 설날 식사 전 '윗가'라는 귀밝이술을 마신다. 최근 와인, 청주 등 특정 술이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알코올 음료를 적정량 섭취하면 심장 질환의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청주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올리고 펩타이드는 병원성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고 암세포에 대한 항암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일본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
First Fool Moon Food 3.
와작~ 건강해지는 소리 ‘부럼’예전 정월 대보름은 쉽게 볼 수 없었던 견과류를 모처럼 맛볼 수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어머니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럼’이라 부르는 호두, 밤, 땅콩, 잣 등의 견과류를 가져와 이로 깨물게 했다. 부럼을 깨면 잡귀가 물러가고 치아가 건강해지며, 종기와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견과류는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다. 지방이 풍부한 견과류는 오래 보관하면 냄새와 맛이 나빠질 수 있으므로 신선할 때 먹는 것이 좋으며,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 설사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루 한 줌 정도가 적당하다.
호두는 DNA 전구체가 많이 들어 있어 뇌 건강에 좋고, 불포화지방산인 리롤린산과 리놀레린산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호두에 포함된 비타민E와 플라보노이드 등은 암세포의 성장을 느리게 하고 염증을 막는 데도 도움을 준다.
땅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글루타민과 아스파틱산이 뇌세포의 발육을 돕고 기억력을 증진시킨다. 아이들에게 좋은 식품이지만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잣은 원기 회복에 좋은 식품인데 겨울철 피부가 건조하거나 머릿결이 좋지 않을 때 등 미용식으로도 좋다.
밤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이 골고루 들어 있는 식품으로 비타민B1 함량은 쌀의 4배 이상이며, 비타민C도 풍부하다. 속껍질의 떫은맛을 내는 탄닌 성분은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변비를 일으키므로 제거하는 게 좋다.
-
First Fool Moon Food 4.
겨울철 부족한 비타민 공급 ‘나물’아직 봄나물이 나오지 않은 정월 대보름에는 지난 가을 말려 보관한 나물을 삶거나 볶아 오곡밥과 함께 먹었다. 요즘에는 사시사철 채소를 볼 수 있어 정월 대보름에 먹는 나물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곡밥과 말린 나물, 부럼은 영양적으로 조화를 이루므로 챙겨 먹도록 하자. 호박, 가지, 박, 무, 고사리, 콩나물, 버섯 등 정월 대보름에 먹는 나물의 종류는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며,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다.
Tip 나물 맛있게 먹기
말린 나물은 하룻밤 정도 차가운 물에 불려 군내와 쓴맛을 빼고, 부드럽게 한다. 삶을 때 쌀뜨물을 넣고 끓이면 아린 맛을 제거할 수 있고, 소금을 약간 넣으면 밑간이 베어 맛이 더 좋다. 호박나물은 볶을 때 새우가루를, 고구마순나물과 토란대나물, 시래기나물은 볶을 때 들깨가루와 물을 섞어 함께 넣으면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시래기나물은 된장과도 잘 어울리며 멸치가루나 멸치액젓을 약간 넣어 간을 해도 좋다.고사리나물은 충분히 볶지 않으면 쓴맛이 난다. 무나물은 너무 얇게 썰면 부서지기 쉬우므로 세로 결을 따라 적당한 굵기로 자른다. 삶을 때 물 대신 육수를 부으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시금치는 물에 살짝 데쳐 수산을 제거한다. 도라지나물을 쓴맛을 제거해야 한다. 소금물에 30분 담갔다가 소금물에 데치듯이 삶은 후, 찬물에 여러 번 씻으면 된다. 나물을 삶거나 볶은 후에도 딱딱하다면 뚜껑을 덮어 약간 뜸을 들인다. 나물에 넣는 깨는 넣기 직전에 갈아야 기름 냄새가 나지 않고 고소한 향이 강해진다.
사진 조은선(상상이 스튜디오)
요리&도움말 문인영(101reci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