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1년 내내 만화만 보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만화책이 되었든 동화책이 되었든 방학 내내 책 속에 흠뻑 빠져, 일기도 빼먹고 만화방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가 개학 하루 전 한 달치 일기를 벼락치기로 쓸 때도 있었다. 왜 꼭 일기는 날씨를 그리게 만들었을까 선생님을 원망하며 가짜 비, 구름, 해님을 만들어 넣던 일기 속에는, 수 백권의 만화 속 주인공들이 뒤엉켜 새로운 스토리로 둔갑해 일기로 등장했다. 어른이 되면 1년 내내 만화만 보면서 살고 싶었던 반짝 반짝한 상상 속에는 언제나 자장면이 차지하고 있었다. 북경반점엘 가면, 어른이 되면 만화를 보면서 100그릇을 사먹고 싶었던 그 고소하고 탑탑한 자장면이 있다.
무소 같은 힘을 가졌던 어린 시절 그 자장면
◇ 손님들에게 무엇이든 서비스를 해주고 싶어도 오히려 ‘오해’하는 고객이 있어 요즘은 직접 서비스는 잠시 쉬는 중이라는 주인 ‘크리스 김’씨. |
어른이 되어도 비교할 음식이 없는 줄 알았던 그 요리가 차츰 달라졌다. 입맛도 변했고 자장면도 변했다. 화려한 요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자장면은 직장인들의 그저 그런 ‘한끼’가 되어버렸고, 온전히 옛 춘장 맛을 내는 곳도 사라져갔다.
그래도 아주 가끔 동심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어린 시절 그 맛에 가느다랗게 맞닿는 자장면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바로 ‘북경반점’의 자장면을 맛보는 순간이다.
다운타운 랍슨과 덴만거리가 만나는 4거리에서 ‘써브 웨이’쪽을 바라보면 ‘북경반점’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창가에는 ‘앗싸! 자장면’ 큰 한글 포스터도 선명하게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방장이 밀가루 반죽을 허공에서 내려 치는 소리가 ‘탁탁’ 들릴 것만 같은 주방 곁으로 길게 늘어선 식당 안 여기저기서 ‘쪽쪽’소리가 난다. 손님들이 쫄깃한 ‘면 빨’ 맛있게 먹는 소리다.
◇ 여린 배춧잎에 새우와 해물이 듬뿍 들어간 삼선짬뽕, 생수에 갖은 야채로 국물을 낸 짬뽕국물이 깔끔하고 깊은 맛이다. 튀김옷이 파삭 소리가 나는 고소한 깐풍기와 탕수육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스 속에 포도알과 파인애플이 들어있다. |
손으로 만든 ‘수타면’으로 만든 북경 자장면 맛!
이 집 자장면은 감자, 양파 당근 넣고 완두콩 몇 알 띄워 ‘옛날’ 맛이라 우기는 자장면들과 거리가 있다. ‘케로나 오일’로 고소하게 볶은 갈색 자장소스 위에 양파, 감자, 양배추 위에 톰방 하게 썬 고기가 유연하게 떠 있다. 젓가락을 면 속으로 고정시켜 자리를 잡은 다음 쓱쓱 비빈다. 고소하고 향긋한 추억의 자장 향기가 코를 살살 간지럽히며 사람을 유혹하는 북경반점 자장면은, 성질 급한 사람은 조심할 것. 일단 비비던 젓가락을 들어 품위고 뭐고 생각 할 틈도 없이 ‘쪽’ 소리 나게 빨아먹게 한다던가, 한 젓가락 돌돌 말아 먼저 허겁지겁 입안으로 가져가게 만든다. 하지만 자장면은 소스와 면을 하나되게 골고루 비비며 그 향기로 후각부터 자극해 입안에 적당히 침이 고여 들게 하는, 자장면 제 맛 느낄 수 있도록 입 속을 준비시키는 과정을 즐기는 것도 맛있게 먹는 비결이다.
초콜릿색 소스가 감싼 면이 옅은 갈색으로 어울리면 먹을 준비 끝. 우아하게 젓가락으로 면을 살짝 감아 올려 오물 오물 먹는 것? 오 NO! 친구랑 서로 먹으려고 눈 부라리며 먹던 그날 처럼 최대한 많이 들어 올려 입안이 미어터지게 ‘우물 우물’ 먹어야 제 맛. 그래야 추억의 자장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북경반점 자장면은 기계로 무감각하게 저어대며 만든 탄성과는 식감이 다르다. 젓가락 사이를 이탈한 면발이 ‘탱탱’ 소리가 날 지경에 소스는 부드럽게 입안으로 퍼진다. 약간의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고는 춘장을 부드럽고 맛깔스럽게 만들기 어렵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양파와 양배추, 대파를 듬뿍 넣고 볶아 만든 야채로 우려낸 단 맛이 일품이다. 단맛 뒤에는 얄미울 정도로 입안에 착 달라붙는 깊고 고소한 맛이 혀를 감싸고 돈다. 조미료 맛으로 입안을 어지럽히는 장난 따위는 안친다. 여기에 손으로 쳐서 만든 면을 삶아 차가운 물을 틀어놓고 손으로 비벼가면서 잘 씻어낸 면발은, ‘탱탱’소리가 날 지경이다. 한국 자장면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음식은 입맛에 안 맞아……” 라고 하는 사람. 북경반점 자장면을 꼭 드셔보시길.
‘웃기는 짬뽕이야’
“음 음…. 자장면 정말 술술 잘 넘어간다. 굿!!’
시종일관 자장면 맛있다고 했더니 기다리다 지친 짬뽕이 ‘그래! 너 잘났다’ 벌떡 일어나며 매운 핏대를 세운다. 화끈하고 시원하다. 어라! 여린 배춧잎에 죽순, 큼직한 새우와 쭈꾸미까지 꼬릿발을 내밀고 시위를 한다. “그래 그래 너도 진하고 구수하다.”
주인 크리스 김씨는 뼛국물이니 뭐니 하는 육수를 거부하고, 생수에 양파, 대파 등을 볶아 우려낸 야채로 단맛을 낸다. 그래서인지 ‘깨끗한 맛’이다. 면발 위로 그득한 야채와 해물을 보면 짬뽕이 무슨 요리인 줄 아나 ‘웃기는 짬뽕’이다.
◇ 노래방을 갖춘 룸을 6개나 갖춘 넓은 실내는 천정이 높아 시원하고 모던한 분위기. 오향장육과 해파리냉채, 새우냉채가 나오는 ‘3가지 냉채’는 여름철 메뉴로 좋다. |
‘파삭’ 소리가 나는 깐풍기와 탕수육
사진 촬영용인가? 깔끔한 데커레이션에 앙증맞은 크기의 깐풍기와 탕수육. 이 집은 양에 치중해 수북이 음식을 담지 않는다. 보는 맛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세대 취향을 맞췄다. 꼭 중국음식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한식당을 가면 가끔씩은 감점요인이 되기도 하는 음식의 평가기준의 하나가 바로 그 양과 종류. 아무리 다다익선이라고 해도 백과사전 같은 메뉴가 있는 식당은 왠지 음식마다의 고유한 맛은 없을 것만 같은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도 북경반점은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북경반점은, 파스타가 아니어서 실망스럽게 젓가락 놀리는 아이에게 한 입만 먹이면, 훗날 엄마 아빠와 똑 같은 ‘추억’이 될만한 그런 맛이 있다.
*영업시간
11:00 am ~ 11:00 pm (연중무휴)
*주소 1638 Robson St.
*전화 (604) 689-3898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지혜로운 부모란?
2007.06.14 (목)
다문화 사회에서 지혜로운 부모란?
지난 1월부터 격주로 이 칼럼을 통해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 사회의 정보들을 공유하였다.
|
천재 여학생 vs. 천재 남학생
2007.06.14 (목)
작년에는 최초로 하버드 입학생 중에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을 넘어섰다는 발표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분야에서 여학생들이 점점 더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사법고시는 물론 의사의 분야에서도 점점 더 여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많은...
|
“BC주 인재 유치에 총력”
2007.06.14 (목)
주정부, 4개 대학에 1000만달러 지원
BC주정부가 관내 4개 대학 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총 1000만달러를 지원한다. 고든 캠벨 주수상은 12일 “대학의 연구와 혁신은 BC주의 미래를 위해 너무나 중요하다”며 “대학원 장학기금을 통해 BC주내 4개 대학이 최고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
“범죄에 대한 침묵이 우범지대 만든다”
2007.06.14 (목)
코퀴틀람 지역 범죄예방 포럼 열려
BC주에서 발생하는 범죄 유형을 살펴보면 폭력범죄는 전체 10%에 불과하며 80%는 재산범죄...
|
“김밥, 인기 가능성 있다”
2007.06.14 (목)
조지아 스트레이트지 보도
밴쿠버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조지아 스트레이트’(The Georgia Straight)지는 한국 김밥이 일본 스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인기를 끌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주말판을 통해 보도했다. 외식전문 기자 캐롤린 알리씨는 김밥과 유사한 일본의 ‘마끼(maki)’와의 차이점이...
|
BC주 거주환경 ‘탁월’
2007.06.14 (목)
서북미 4개주 비교...기대수명 BC 최고
BC주 거주환경을 미국 북서부지역 3개주와 비교한 결과 환경..
|
16세 한인 소년 US오픈 최연소 출전
2007.06.14 (목)
밴쿠버 출신 이태훈군
14일 개막하는 US오픈 출전 선수 중 최연소자는 리처드 리(Richard Lee·한국명 이태훈)라는 밴쿠버 출신 한국 교포..
|
걸으면 살고 누우면...
2007.06.14 (목)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上龍膽湖因大雪三丈覆而還눈이 세 길이나 덮인 Blue Gentian Lake에 갔다 돌아오다 尋春携酒探紫洞 봄을 찾아 술병 들고 깊은 골을 찾아드니妖紅嫩葉含朝陽 고운 꽃 어린 새잎 아침햇살 먹음었네寂陰一逕萬樹穿 인적없는 어둔 산길...
|
캐나다 공교육에서부터 아이비리그까지
2007.06.14 (목)
관리형 유학 정착시킨 토피아 아이비
조기유학이 한창 붐을 이루던 2000년대 초반 많은 한국부모들은 중고생 자녀들을 본인도 가본적 없는 북미에 보내며
|
“리더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킬라니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출된 권 명군
2007.06.14 (목)
적극성과 긍정적 마인드로 학생들에게 신뢰 얻어
7년 전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며 살아 온 한인 학생이 밴쿠버 킬라니 고등학교(Killarney Secondary School)의 2007~2008학년도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훤칠한 모습의 권 명(사진)군은 캐나다 학생들 사이에서...
|
‘글로벌 인재’ 그 기준이 궁금하다
2007.06.14 (목)
연세대 등 ‘글로벌전형’수시 모집 어학 능력 우수한 학생위한 특별 전형
3개월 전 밴쿠버로 어학연수 온 박지영(가명·20세)씨는 TOEFL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2008년 대학 수시 모집 중 외국어능력 시험점수가 높은 지원자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글로벌전형’을 목표로 한다. 4년 동안의 조기유학 경험이 있는 박씨는...
|
FDU가 주최한 입학설명회
2007.06.14 (목)
FDU 밴쿠버 캠퍼스(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Vancouver Campus)는 지난 주 7일 밴쿠버도서관에서 입학 설명회를 가졌다. 오는 9월 밴쿠버에 개교할 예정인 FDU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많은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은 이번 행사 진행을 담당한 닐 A. 모트씨(Director of...
|
“미술, 재즈 댄스, 카피라이터, 기획…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2007.06.14 (목)
7개 명문대 합격한 강민경양
◆ 기발한 발상의 ‘팝 아트’ 작품 대학에서 호평 ◇ 3개월 동안 작업한‘마더테레사’수녀의 얼굴을 흑백의 못으로만 작업한 입시 포토폴리오 작품. 처음 시작하고 끝이 보이질 않아‘내가 왜 이걸 선택했나’하는 후회와‘경쟁력이 있을까’고민하며...
|
“BC주로의 이민을 환영합니다”
2007.06.14 (목)
주정부, 이민자 위한 통합 서비스 제공 무료 영어 교육 프로그램 ELSA 확대
BC주가 이민자의 빠른 정착을 돕는 통합 서비스 ‘웰컴BC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고든 캠벨 BC주 수상은 13일 “웰컴BC 프로그램은 BC주에 정착하려는 이민자들에게 영어 클래스부터 구직정보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한지붕 밑에서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
랭리서 청소년 총격사건 발생
2007.06.12 (화)
18세 용의자 지명수배
랭리 지역에서 청소년들 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총격,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지역관할 연방경찰이 용의자를 11일 공개 수배했다. 연방경찰에 따르면 랭리 거주 피해자(17세)는 주거지역인 44A 애비뉴 21000번지 인근에서 차로 걸어가던 중 둔부에 총격을 당했다....
|
가정의 중요성(4)
2007.06.12 (화)
지난 주에 이어, 건강한 가정을 위해 부부가 노력해야 할 점들에 대해 살펴본다. 셋째, 부부가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극대화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평상시에 부부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도록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
“쉿!! 소문 날라. 맛있는 소문은 발 없이 천리를 간다”
2007.06.11 (월)
함지박
쉿! 맛있는 소문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중국집이 복닥거리면 주인이야 ‘대박’이겠지만 손님들에겐 ‘꽝’이다. 한국에서는 안방에서 전화 한 통이면 번개같이 달려 오는 배달 자장면도 있는데, 긴 줄을 서는 불편함에 겨우 한 그릇 받아들면 ‘불었거나...
|
몸에 맞지 않아 버리기 아까운 내 옷 쑥쑥 크는 아이 옷, 장난감… 가구
2007.06.11 (월)
돈! 돈! 돈 되는 알뜰 생활 정보 위탁판매점이 몰려 있는 포트코퀴틀람 Elgin 거리
“내 옷, 꿈을 접으면 돈이 보인다.” 옷장을 뒤지면 “언젠가 살 빼면 입어야지”, “아이 낳고 입어야지” …. 등등 온갖 이유로 몇 년 째 걸려있는 옷이 어느 집에나 꼭 있다. 그런 희망을 버리자. 순간, 돈이 보인다. 코퀴틀람 센터에서 포트코퀴틀람 방향으로...
|
산재보험
2007.06.11 (월)
Workers’Compensation
사업자들이 때로는 몰라서, 가입시기를 놓쳐서, 또는 번거로워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
베트남 부동산 및 증권투자(하)
2007.06.11 (월)
베트남 증시의 단기 반등 이유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모집된 베트남 주식시장을 투자대상으로 모집된 해외 투자펀드의 모집규모가 대략 30억달러 정도인데, 이 중 20억달러가 아직 투자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래곤, 프루덴샬, 도이치, 쟈캬, 블랙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