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눈보라를 만나 돌아오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3-22 00:00

丁亥元月初四日登塞牟山遭遇暴雪而還
정해년 정월 초나흗날 Seymour산을 오르다 눈보라를 만나 돌아오다

擧頭廻望天地間 눈을 들어 온천지를 한바퀴 바라보니
凝華凌亂雙眸眩 사방천지 눈꽃만발 두 눈이 어지럽네
上有不測造化鍾 하늘 위에 예측 못할 조물주의 뜻이 어려
暴風驟雪射萬箭 눈보라 폭풍치니 화살만개 쏘는구나
雲移霽景似涅槃 구름 걷혀 맑은 광경 열반의 경치인듯
鼠鳥共宴似逸仙 새다람쥐 같이하니 신선들의 잔치일세
奇觀滿目不可背 눈에 가득 저 경치를 차마 어찌 등돌리랴
歸來藏袖雪香殘 하산길에 감추나니 소매 속의 눈의 향기

丁亥陽一月四日與三人坐雪饗宴之中梅軒得詩
정해년 양 1월 4일 세사람과 함께 설상향연을 즐기는 중 매헌은 시를 얻다.

내 평생 이런 눈은 처음이지 싶다. 정확히 11월 초부터 하루같이 매일 쏟아지는 눈이 쌓여왔으니 산이 눈 무게에 짓눌려 땅속으로 내려갈 것 같은 무섬증이 드는 눈이다. 겨울산행은 거의 대부분이 밴쿠버 항만 북안 지역 3개 스키장 지역 산행으로 국한되기 마련이다. 산밑에서 출발하여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무래도 눈사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차나 케이블카로 스키장 입구까지 올라가 산행하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평지에는 허구한 날 비가 오지만 산꼭대기엔 매일같이 따라 붓는 겨울 비가 모두 눈으로 둔갑하여 엄청난 적설량을 기록한다. 춘하절기나 가을에 산행로를 알아볼 수 있는 진홍색 정사각형 딱지도 거의 눈 속에 파묻히거나 눈에 덮여 결빙되어 있다. 그리고 산행로가 거의 3m 이상의 눈에 뒤덮여 있어 아무리 자주 가본 산이라도 처음 가는 산처럼 낯설기만 하다. 등산로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2m 높이의 이정표 말뚝마저 모조리 매몰되고 말았으니 한심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하지만 산정상 부근의 산행로를 뒤덮은 설원은 도시나 야지의 설원과는 눈의 청정한 순도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치 고혹적이다. 나는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보노라면 조용한 흥분이 일어난다.

필자는 온타리오 토론토 북쪽 심코호(Lake Simcoe)의 비버톤(Beaverton)이란 촌동네에서 한 5년간 장사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겨울이면 충청북도 크기의 바다같은 호수가 1m 이상의 두께로 결빙되어 트럭이 건너 다닐 정도로 단단한 육지로 변한다. 나는 현지인들처럼 폭설이 1m 가량 항상 쌓여있는 호반을 스노모빌로 질주하면서 반에스키모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얼음낚시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약 두 평 크기의 양쪽으로 침상이 있는 이동식 판잣집을 썰매에 싣고 Lake trout, White fish, Walleye 등이 서식하는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동력톱으로 1m 두께의 얼음구멍을 절단해 들어낸 후 판잣집을 앉히면 훌륭한 실내 낚시터가 되는 것이다. 실내엔 200파운드 짜리 탱크를 바깥에 장착한 프로판 가스 난로가 있다. 아무리 바깥이 추워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길쌈하듯 낚싯줄을 잡고 고기를 건져올리는 스릴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긴 겨울의 한 3개월은 아예 이불까지 들고 가 그곳에서 자면서 낚시하고 아침에 가게로 출근할 정도의 낚시광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집사람한테 너무했다 싶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이 감돈다. 때로는 눈보라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데도 오밤중에 10리나 떨어진 낚시방에 스노모빌을 타고 찾아갔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눈보라 속의 호수 한복판. 그 판잣집에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가스등을 켠다. 미끼를 단 낚싯줄을 한 30m 드리우고 낚싯줄이 감긴 판대기에 장착된 평형철침을 조정하여 수평대에 올려 놓으면 끝이다. 고기가 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초속 50m가 넘는 북풍이 윙윙 귓전을 때릴 때, 러닝셔츠 바람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기분이란 정말 죽여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20파운드가 넘는 대형 호수 송어라도 걸리면 한창 이 녀석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밀고 당기며 싸우는 맛이란 정말 설명할 길이 없다. 에스키모가 따로 없는 야성적인 쾌감에 온몸이 짜릿해지는 엑스터시요 오르가즘이라면 이해가 갈까.

오늘따라 쾌청한 일기예보만을 믿고 시무어 산행을 나선 우리 일행은 시무어 최고봉을 향하는 도중 내가 온타리오 심코호에서 경험했던 그런 눈보라를 만난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치 몰아치는 눈보라는 초속 80m의 강풍을 동반한 까닭에 눈을 뜰 수조차 없다. 바람에 가속이 붙은 눈송이가 얼굴을 치면 마치 수천개의 미니 화살을 맞는 느낌이다. 이런 눈 속을 걷다 보면 온통 사방이 흰색뿐인 까닭에 상하좌우의 방향감각이 없어지는 소위 화이트아웃(Whiteout) 상태에 진입한다. 그 이상의 전진은 조난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산행을 접었다. 금년 겨울 들어 세 번째의 정상도전에 실패한 분루를 삼키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다시 한번 하늘의 신묘불측한 조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십 분쯤 경과했을까. 갑자기 눈보라가 한풀 꺾이며 잦아지는가 했더니 주위가 조용해지고 설경이 눈에 아슴하게 클로즈업되어 왔다. 달무리같은 태양이 중천을 밝히며 희붐하게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정적뿐인 설원이 눈앞에 70미리 시네마스코프 흑백화면으로 다가왔다.

이럴 수가 있을까...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오마 샤리프가 눈보라 폭풍이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을 방황하다 쓰러진 후 태양이 눈부신 설원의 정적에 눈을 어렴풋이 뜨고 바라본 그 장면에 다름 아니었다. 말로 이루 형언키 어려운 희열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런 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열반(Nirvana)의 경지지 싶었다. 바로 이 순간의 그 느낌은 이런 눈보라를 무릅쓰고 산행을 나선 용감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차지할 수 있다"(None but the brave win the fair)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흥분 속에 전망이 좋은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조리했다. 오늘 메뉴는 그 유명한 '오삼불고기'다. 강력버너에 불을 지펴 프라이팬에 양념 오삼불고기를 덖었다. 고기 냄새가 온 산을 진동한다. 고산에서만 사는 솔참새(Canada jay)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귀여운 솔다람쥐 한 녀석이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소나무 가지 끝에서 두 손을 비비기 시작한다. 좀 달라는 제스처가 분명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한 감격의 산행이었다. 신비한 감동이 묻어나는 영화 속의 주연급 배우나 된 것처럼 목에 힘을 주며 우리 넷은 하산하고 있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델타 스코트데일 몰...최소 100명 피해
노스 델타의 한 쇼핑몰에서 현금카드(debit card)를 이용한 고객 중 최소한 100명이 무더기로 현금카드 정보를 누출 당해 피해를 입은 사건이 이번 주초 발생했다. 사건을 조사 중인 델타 시경은 "누군가 피해자들의 현금카드 정보를 사용해 복제카드를 만들어낸 후...
4월 1일부터 TILMA 발효...FTA 효과
BC주와 알버타주간에 체결된 상거래, 투자 및 근로인력유연성협약(TILMA)이 오는 4월 1일부로 발효된다. 캐나다에서는 일부 상거래 규정이나 전문직 자격 기준이 주(州)마다 다르다. TILMA는 주정부간의 규정 일치를 통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과 유사한 효과를...
‘매시브 테크놀러지 쇼’ 열려
캐나다의 정보기술(IT)을 한자리에 모은 매시브 테크놀러지 쇼(Massive Technology Show)가 28일 밴쿠버 컨벤션센터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번 행사에는 200여개 업체가 참여했으나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첨단기술을 실감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쫀득쫀득한 꼬치구이가 맛있는 ‘붉은 악마’는 일본의 로바다야끼가 대표 선수로 나섰지만, 그 속은 한국식 요리와 한국식 인정이 넘치는 ‘한국판 꼬치구이 집’에 가깝다는
굴 따러 가세! 2007.03.30 (금)
주말에 떠나볼까~ 유니온 베이 굴 따기 행사와 토피노
호슈베이에서 배로 약 1시간40분만에 나나이모에 도착...
BC주 교육부, 교칙 마련 의무 법안 상정
BC주 교육부는 29일 주내 각 교육청의 교칙 마련 의무화 법안을 주의회에 상정했다. 셜리 본드 교육부장관은 "BC주 교육청들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 학교 중 1/3이 주정부 기준에 맞지않는 교칙을 갖고 있었다"며 "법안은 학생 행실에 관한 적절한 교칙을...
가격, 안전, 교통, 편의, 세련
캐나다 국민은 고층 콘도(condominium)를 구매할 때 가격 등 5가지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TD 캐나다 트러스트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리드사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콘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이었다. 다음으로...
사업전략가 레오나드 브로디씨 밴쿠버 강연 '캐나다가 극복해야 할 5가지 요소' 강조
캐나다의 첨단 기술 '예보관'이자 사업전략가인 레오나드 브로디씨는 28일 밴쿠버에서 개최된 매시브 테크놀러지 쇼(Massive Technology Show)에서 캐나다 첨단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강연을 통해 "캐나다 업체들은 향후 12개월간 첨단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목격할...
Match Made in Holland 2007.03.29 (목)
By Justin Park She talked to me in Korean, even though I answered in English. It had been a long time since I spoke Korean to anyone besides my parents and other first-generation relatives. But within a couple of days, I found myself talking to her in Korean and, to my surprise, very comfortably and not totally incompetently. Our love blossomed...
센터에서 공부하는 한 영재 학생이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담에 학교를 만들고 싶어." "어떤 학교?" "여기 캐나다 학교의 좋은 점과 한국 학교의 좋은 점만 골라서 만든 학교 말이야." 아이에게 그 좋은 점들이 무엇인지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서효정 / 포트 코퀴틀람 Hope Lutheran School 6학년
우리는 같은 은하수 아래에 살고 있다. 무궁한 세계에서 하나의 은하수,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깊고 끈질긴 인연인가?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사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는 밤하늘에 깔려있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온라인 교육벤처 운영하는 유수정
캐나다에서 꼭 필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 중에 하나는 본인 혹은 자녀를 위한 개인교사(Tutor)를 구하는 일이다.
유학생 입장 대변해주는 '국제학생 협의회'
복합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밴쿠버의 매력이자 캐나다를 지탱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반 중 하나이다. 우리들이 공부하고 있는 이곳의 학교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러시아인, 이란인, 캐나다인 등 마치 '세계 학교'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캐나다에 살면서 종종 주변의 한국인들로부터 캐나다에 대한 불평들을 듣게 된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의료 시스템이 답답하기 그지 없으며 빨리 병을 치료받지 못하니 불안하다며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강에는...
공동체 의식 높아지고 인성 계발에도 도움
학생수가 적은 학교에서 교육 받는 학생들이 좀더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와 화제다. SFU 신문방송학과 캐서린 머레이 교수와 교육학과 히엔 엔구옌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한 '학생수가 교육의 질과 사회활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BC주의 주도(州都) 빅토리아로 가는 페리 선착장이 있는 트와슨 마을 언덕을 올라서면 미국 땅 한 뙈기가 있다. 어림잡아 2㎢도 채 못
코퀴틀람 테니스 동호회
야외 경기장 이용이 어려운 겨울철 활동이 주춤했던 스포츠가 활기를 띠는 봄. 무겁게 물기 머금은 구름이 가시고 맑은 하늘이 이어지는 화창한 날씨가 시작된 밴쿠버에서 가장 발 빠르게 시작된 신생 동호회는 ‘코퀴틀람 테니스 동호회’. 아직 공식적인 명칭도...
주정부, '퍼시픽 리더 프로그램' 도입
BC주정부가 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공무원 채용을 적극 늘려나가기 위한 캠페인을 펼친다.    고든 캠벨 BC 주수상은 "민간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도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무원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밴쿠버 인터내셔널 오토쇼' 31일 개막
밴쿠버 인터내셔널 오토쇼가 이번 주 31일 개막해 4월 8일까지 9일간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2007년 오토쇼에는 현대, 도요다, BMW 등 수입 자동차 메이커들과 GM, 다임러클라이슬러 등 북미 자동차 메이커 등 24개 회사가 참여해 450여대의 새로운 차들을...
조사 보고서 결론... 승무원 3명 징계 처분될 듯
지난 해 3월 발생한 BC 페리 소속 '퀸 오브 노스' 침몰 사고는 결국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사고 당시 조종을 맡았던 승무원 3명에게 징계 처분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사고 경위를 조사해온 연방 교통안전국은 26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1461  1462  1463  1464  1465  1466  1467  1468  1469  147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