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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2-24 00:00

은퇴자들이 사는 법 / 땅으로 돌아가 건강한 우정 나누며 사는 허억씨 김덕산씨

 

30년 이상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로 현재 메이플리지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허억씨와 김덕산씨를 만났다. 허억씨는 회계사로서 연방 감사원, 밴쿠버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서 일했고, 회계사무소도 10여년간 운영했다. 사업가였던 김덕산씨는 85년부터 보틀 디포를 운영해오다가 지난 2004년 일선에서 은퇴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덕산씨, 허억씨, 허씨의 부인 허근임씨와 장모님.

 친구와 함께 한국식 전원생활

피트리버 다리를 건너 로히드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가 메이플리지 외곽 103 애비뉴를 어렵사리 찾아내어 전형적인 랜치(ranch)형 주택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곳에 이르렀다. 보통 집 한 채에 딸린 대지가 5에이커에 달하는 이 지역은 북쪽으로는 골든 이어스 마운틴, 남쪽으로는 마운틴 베이커가 보이는 경관 좋고 한적한 곳이다.

이곳에서 세상 욕심과 복잡함을 뒤로 한 채 땅과 씨름하며 평화롭게 노후를 살아가는 분들을 만났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반갑게 맞아주는 집주인 허억씨와 이웃에 사는 김덕산씨는 70년대 초 이민와 35년 이상 밴쿠버에서 함께 살아 온 한인 사회의 어른들이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정정한 모습의 허억씨와 김덕산씨는 30년 이상 친형제 이상으로 절친하게 지내왔다. 각자의 분야에서 일하던 이들은 은퇴 전 약속한대로 한적한 이곳에 정착해 이웃이 되어 땅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가서 일할 수 있는 땅을 살까 생각했지. 그러다가 은퇴 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는 농사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마운틴'과 함께 괜찮은 땅을 찾아 같이 살자고 했어."

허씨는 친구 김덕산씨를 '마운틴'이라고 불렀다. 이름에도 '산'자가 있고 성품도 산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세심하고 꼼꼼한 허씨와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김씨는 장성한 후 타국에서 만났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평생의 벗이 됐다.
 
은퇴 10년 전부터 노후계획 세워

예전에 살았던 밴쿠버 킬라니 지역에서도 작은 텃밭을 일구며 소일을 했다는 허씨는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후 살아갈 땅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가에 살고 싶어 밴쿠버 아일랜드와 걸프 아일랜드 해안가 곳곳을 찾아 다니며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관이 좋은 해안가 주변은 이미 땅값이 너무 비쌌고, 값이 적당한 섬으로 들어가려니 힘들게 찾아와야 할 자식들이 맘에 걸렸다. 그러다가 95년에 저렴하면서도 발전 계획이 있었던 메이플리지 외곽 땅에 대해 소개 받았고, 마침 두 필지가 나란히 매물로 나와있는 것을 둘이 함께 와 본 후 부지를 샀다고 한다.

김씨는 "그 당시 워터프론트가 아니라서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이 친구가 한번만 함께 가보자고 해서 와본 후 이곳의 경관과 위치가 맘에 쏙 들어 5에이커씩 바로 계약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허씨는 은퇴한 다음해인 2001년 직접 설계에 참여해 집을 지었고, 한국식 생활양식을 고려해 지은 새 집에 1년 만에 입주했다.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노후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원했던 방식의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텃밭에는 각종 농작물 무럭무럭 자라

이웃에 살지만 대지가 워낙 넓다 보니 서로의 집은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가끔은 차를 타고 가서 만나기도 한다는 허씨와 김씨는 각자의 텃밭에서 수년 동안 농사일을 해오며 이제는 노련한 농사꾼이 되어 있었다. 농사에 대해 묻자 두 어른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말하는 톤은 한층 빨라졌다.

"이사 온 첫해부터 농사를 시작했는데, 시행착오도 많았고 한국과 토양도 달라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었어. 특히 기대했던 마늘 농사는 건조한 여름 때문에 완전히 망쳤지." 허씨는 그 다음해 파키스탄 마늘 대신에 한국의 육쪽 마늘을 구해다 심어서 주먹만한 마늘을 수확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고 기뻐했다.

손수 지어야 하는 농사라 허씨의 밭은 아담했지만 오이, 토마토, 마늘, 고추, 파, 깻잎, 더덕, 도라지, 무, 배추, 시금치, 상추, 쑥갓, 돈나물 등 키우는 농작물의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또한 정원에는 금잔화, 무궁화, 국화, 봉선화 등 한국산 꽃을 심어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밭이 황량했지만 상추와 깻잎, 고추 등 신선한 야채들이 넘치고 오이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여름 농사철을 상상하니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다.

농사가 본업이 아니라 취미라지만 한창 바쁜 농사철에는 웬만한 육체노동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 봄에는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농작물이 말라 죽지 않도록 매일 물을 줘야 하며, 돌을 솎아내고 김을 매는 등 한번 나가면 집안에 들어오기 힘들다는 것. 허씨가 모시고 있는 88세 장모님의 경우 더운 여름에도 모자를 쓰고 나가 하루 종일 밭일에 매달린다고 한다. 욕심 없이 한다는 농사일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은 정성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가 달라지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농사일 하며 건강 좋아져

농사일이 재미있는 이유로 허씨는 "농사를 하다 보면 천천히 일하며 체력의 한계까지 다다르게 되는데 이를 통해 삶의 3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첫째 일을 하니 밥 맛이 좋아지고, 둘째 땀을 흘리니 샤워 맛이 별나고, 셋째 정신 없이 빠져버리는 잠맛이 각별해 진다니 노년에 이처럼 좋은 소일거리가 또 있을까 싶다. 농사일을 시작한 후 맛보는 삶의 3가지 재미 외에 혈압이 내려가고 당뇨병이 사라진 것은 많은 운동량에 의한 특별 보너스. 

농업용 기계를 사용해 더 큰 규모로 농사를 짓는 김덕산씨는 "현직에서 은퇴한 후 아파트로 들어가는 분들이 많은데, 이 경우 신경 쓸 일 없이 편하게 살수 있지만 운동량이 줄어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남과 달리 밭이 있는 주택에서 귀찮게 사는 방법을 택했지만 사는 재미는 훨씬 더하다"라고 말했다.

물론 농사일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들여온 작물을 열심히 키웠는데 토양과 기후 차이로 꽃이 나지 않아 헛수고를 하거나 뜨거운 날씨에 말라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또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키우기 때문에 벌레나 새들이 파먹는 일도 많고, 사슴이 나타나 자식 같은 싹을 모조리 따먹을 때는 마음도 아프다.

그래도 밭에 나와 삽과 괭이를 친구 삼아 생명체들과 이야기하며 일하다 보면 마음속 걱정과 복잡함은 모두 사라지고 소박하고 건강한 삶에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소일 삼아 하는 농사지만 소출이 많아 웬만한 먹거리는 자급자족하고 친구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나눠 줄 수 있어 기쁘다는 두 어른의 얼굴에서 성실하고 푸근한 한국의 아버지상이 느껴졌다.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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