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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18 00:00

얼마 전 집행된 사담 후세인의 사형과 그에 따른 논란들을 접하며 이문열의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는 책 속에 내포되어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겉 내용만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 후세인 처형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아무 연관성 없는 한 사건으로 인해 이 책을 불현듯 떠올리게 되었고, 창고 안 한 구석에서 자욱한 먼지에 쌓여있던 것을 어렵게 찾아내어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나’는 아버지의 좌천으로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에서 Y읍의 초라한 곳으로 전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학급 반장 엄석대가 담임 선생의 두터운 신임과 아이들의 절대적 복종을 받으며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저항해 보지만, 엄석대는‘나’보다 월등한 학업 성적과 철권 같은 권력을 지니고 있어 달리 대항을 해보지 못한다.‘나’는 엄석대의 폭력, 비리, 억압 등을 담임에게 고자질해보지만 담임선생님은 이를 믿지 않고 오히려 엄석대를 시기하느냐며 꾸짖는다. 점점 더 학급에서 소외되어 가는‘나’는 결국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고 엄석대에게 굴복한다. 이후 엄석대에게 철저히 동조하며 급기야 그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6학년이 되자 민주적 의식을 가진 젊은 새 담임 선생이 등장하고, 엄석대가 시험지를 공부 잘하는 애들 것과 바꿔 쓰게 해서 1등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들통난다. 이러한 부정이 학급전체에 의해 기계적으로 행해지는 사실에 경악한 담임은 모든 학생들을 꾸짖고 벌 준다. 선생은 엄석대를 학급 앞에 세워 매를 때리고 아이들에게 여태까지 그의 부정행위를 말하라 한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석대의 권력 아래에서 안주하던 아이들은 주저함 없이 그의 부정을 하나하나씩 말한다. 어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욕을 섞어가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그러나‘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석대는 학교를 떠나고 학급은 그가 사라진 새로운 체제의 환경 속에서 시행 착오를 겪으며 혼란하지만 점차 민주적 질서를 회복한다. 그 후 한 가정을 거느린 성인이 된‘나’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며 엄석대와 그의 권력에 대한 일종의 향수마저 느낀다. 그러던 중에 피서길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에 붙들려 가는 엄석대와 맞닥뜨리게 되고, 그날 밤 잠든 아내와 아이들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허무함에 눈물을 떨군다.

이 책을 다시 한번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왜 내가 후세인의 처형과 이 책을 무의식 중에 연관시켰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라크의 민주화라는 명목아래 후세인을 이라크 국민의 심판대에 올린 미국과 책 속의 젊은 담임선생, 철권 같은 권력을 유지해오다 한 순간에 쓰러진 엄석대와 후세인, 그리고 무너진 엄석대를 비방하는 학급아이들과 후세인을 처형한 이라크의 현정부는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전‘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은 후 어렴풋이 느꼈던 권력의 무상함과 또 그 부질없는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 순응주의자에 대한 이질감이 후세인의 처형이라는 사건을 통해 다시 가슴속에 떠오른 것이다.

물론 후세인을 옹호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는 사형당함으로써 그가 집권당시 행한 무수한 인권유린과 학살 등에 대한 죄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인이었다고 해도, 그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그를 체포한 미국과 그런 미국의 옹호 속에 결국 그를 처형한 이라크의 현 꼭두각시 정권을 보며, 책 속의 주인공‘나’가‘일그러진 영웅’ 엄석대를 보며 느꼈던 허무함을 감출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김종무 인턴기자 (UBC 4년) jongmo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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