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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풍 명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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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6-10-12 00:00

조선 후기의 사람이라는데, 뭇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했던 유명한 가객(歌客)이 있었으니 바로 유청풍(兪淸風)이다. 말하자면 대중의 인기 스타였던 셈인데, 그의 절창(絶唱)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 때나마 울고 웃으며 시름을 지울 수 있었다.

유청풍의 명성이 급기야 어느 고관 벼슬아치에까지 이르렀다. 그 벼슬아치가 유청풍을 잡아들여 너른 앞마당에 조아리게 하고, 자신은 까마득한 대청마루 꼭대기에 앉아 아래로 내려다 보며 불같이 호령한다.

네 놈이 참으로 요사한 놈이다. 윤도(倫道)를 거스르는 천박한 요설로 순박한 백성들을 홀리며 다닌다 하니, 네 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네 놈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중죄를 직접 지켜볼 것이다. 당장 네 요망한 혓바닥을 놀려 보아라. 네가 과연 나를 여느 백성과 한가지로 즐겁게 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중벌을 내려 널 내치리라, 하였으니 경우가 없는 것도 이 지경이면 변고(變故)라 하겠다.

웃지 않는 공주를 위해 천일 밤 동안 옛날이야기를 해줬다던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千日夜話)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연예인들에게 웃겨봐라, 노래하라, 무참한 주문을 태연하게 일삼는 요즘 방송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들에 이르기까지, 형벌을 내리는 것과 다름없는 작태는 그 역사도 깊다.
다시 유청풍의 얘기로 돌아가서, 유청풍은 노래한다. 뭇 백성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혼신으로부터 소릴 뱉는다. 대청 마루 꼭대기에 두 눈을 부라리며 앉은 그 오만한 벼슬아치마저도 유청풍에게는 자신의 위로가 필요한 수많은 청중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윽고 유청풍의 절창이 끝나자 그 벼슬아치는 슬그머니 대청마루를 뜬다.

같은 시기, 유청풍과 쌍벽을 이루던 또 한 가객이 있었으니 박명월(朴明月)이라 했다. 해서 누군가 소리를 제법 잘한다 치면, 그 사람 청풍명월이 참 좋구먼, 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노래를 썩 잘 부르는 사람에게, 노래가 완전 조용필이네, 하는 칭찬쯤 될 수 있겠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연예인들, 또는 예술인들의 위상과 그들에 대한 인식이 무척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대중 연예인 또는 예술가들에 대한 가벼움을 관통하는 인식의 안쪽은 여전히 완고하다. 다만 청풍명월들을 얄팍하게 보는 여전한 시각이 연예계에 또는 예술계에 유입된 막대 자본에 가리워져 있을 뿐이다.

대중문화가 첨단산업으로 인식되면서부터 거대시장이 조성되었고 거기에는 더 큰 이익창출을 노리는 자본들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자본들에 의해 문호가 넓어지고, 기회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전체적인 때깔을 풍성하게 하고, 여러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을 모여들게 했지만 그것이 곧 연예,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의식이 확산된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용은 간단하다. 산업으로 인식된 공간으로 유입되는 자본은 참을성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지구력을 가지고 한 작가의, 예술가의 탄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작부터 벼랑에 서게 되는 연예인, 예술가들은 단 한 번에 승부를 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평생을 바쳐 고난의 길을 걸으며 새 지평을 연 연예인, 예술가라 하더라도 상업적으로 매력을 잃은 다음에는 철저하게 외면 당한다. 그들이 영혼으로 쌓아온 기나긴 예술역정도 돈이 되지 않는 지점에 이르면 한 순간에 그 가치를 상실한다.

들으니 백남준 미술관 건립은 첫 삽도 뜨기 전부터 잡음이 많고, 한국전의 폐허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한국의 대표적인 어느 화가의 아들은 제 아버지의 모작(模作)을 만들어 팔려 했단다. 구봉서 선생도, 배삼룡 선생도 통 소식을 모르겠고, 아주 오랜만에 텔레비전에서 뵌 신중현 선생은, 더는 연주 공간도 없고 그저 혼자 기타를 치는 수밖에 없단다.

아. 우리들의 청풍명월(淸風明月)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우리들의 청풍명월들이 욕됨은 도대체 어디에까지 이를 것인가.

*'김기승의 추조람경'을 칼럼을 이번 주부터 연재합니다. 필자 김기승씨는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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