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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기다리며 2024.09.24 (화)
어제를 기다리며오늘을 기다리지 않고 어제를 기다리며 아침을 맞이한다어제를 기다려도 오늘이 온다오늘 아침에도 어제를 기다리며어제의 눈물을 위해 기도했으나오늘이 찾아와 나를 기다린다어제보다 오늘이 더 두렵다오늘은 어제를 기다리기 위해 왔다어제 핀 꽃들이 오늘 나를 찾아와부디 시들지 않기를 바란다
정호승
노을을 털다 2024.09.16 (월)
보길도 예송리황칠나무 숲갯바람에 머리채 풀고 흐노는그림자 하나마구 고개 흔들며 소리 내 울어도털어내지 못하는껍데기 속 켜켜이묵은 진액으로 곪았구나돌아누우면 그만인데결국은 다 묻히고 말 텐데여보게이제 우리도 저물어버리자
백철현
말이 달린다 2024.09.16 (월)
어느 날 한 그림 앞에서 나는 솟구치는 힘을 느꼈다. <푸른 말>이란 제목의 그림이었는데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의 1911년 작품이었다. 칠순을 코앞에 둔 내 노년의 반사 작용이었을까. 우선 이 그림이 각별히 내게 다가오게 된 계기는 해변 기마 경비 순찰대를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말이 주는 위용감에 발걸음이 멈춰졌으며, 평범한 일상에서 흔히 만나기 어려운 말의 모습과 그 크기에 압도감이 먼저 일어나기도 했다...
양한석
사과가 못났다고? 2024.09.16 (월)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 매일 빵이나 과자를 가져와서 자랑하듯 먹는 아이가 있었다. 어쩌다가 사탕 몇 개 정도의 군것질을 하던 우리에 비해 너무나 풍족해 보였다.  어느 날, 친구들이 그 아이에 대해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 나이 육십이 다 된 그애 아버지가 자전거로 막걸리 배달을 다니고, 그애 엄마는 집에서 비단 홀치기를 한다고 했다. 홀치기는 육· 칠십 년대에 유행하던 부업으로, 수많은 점들이 찍힌 비단을 오비틀에...
정성화
8월의 연가 2024.09.16 (월)
뜨거운 8월의 태양이 내리 쬐는구나그대여어서 밖으로 나와서, 해바라기 앞에 서 보게나눈부신 8월의 태양이 찬란하구나, 그대여고개를 꺾어가며 오직 태양만을 향해 있는저 애처로운 해바라기를 바라보게나 8월은 곧 지나가리라불타오르는 사랑도9월이 오면 이별이 찾아와, 그리움만 남을 터이니 그대여, 누군가를 그렇게 깊이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8월이 가기 전에후회 없는 사랑을 해보도록 하게나 설령 그것이 아픔으로 끝날지라도혹여...
조순배
달팽이마을 2024.09.09 (월)
그는 집을 쇼핑카트에 올리고 이동을 시작한다이불 플라스틱 그릇 옷 몇 벌 그리고 텐트 하나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상관없다집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차가운 기억들도 그를 놓치지 않으려 숨을 헐떡이며 따라온다집을 이고 다니는 그는 달팽이다눈살 찌푸리는 지나치는 이들의 시선도 습관이 되었다자유를 위한 방랑이라 최면을 걸어보지만눈꽃 송이 떨어질 때면 붙박이 집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모닥불을 피우며 캠핑온 척해 보지만 이빨이 수다를...
김영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201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첫 구절이다. 만약 과거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누구일까. 내 기억은 사라지고 주위 사람들의 기억에만 내가 남아 있다면 나는 그들의 기억대로 존재하는 것일까. 나를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면, 나의 정체성은 과연 성립될 수 있을까. ...
민정희
2024.09.09 (월)
   심부름 꾼이다.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충직하게 소임을 다하는 심복이다. 어떤 주인을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손의 사명이 달라지듯이 병고를 치유하는 인술(仁術)의 손이 있는가 하면 파괴와 살생을 일삼는 저주 받은 손도 있다. 기왕이면 좋은 손을 갖고 싶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겸손한 그런 손을.어느 가정이거나, 주부는 그 집의 손이어서 모든 것을 알아서 관리한다. 겨울 채비를 하느라고 이불에서 커튼까지 있는 대로 빨아 널고,...
반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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