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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아리 2025.10.10 (금)
"물아리에 우렁이 잡으러 가자!" 지금은 안 쓰지만, '물아리'는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있는 단어였다. 빗물에 의지해 벼농사를 짓던 시절, 비가 오면 논두렁 안쪽을 진흙으로 꼼꼼히 발라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었다. 그렇게 갇힌 빗물이 찰랑이는 논을 '물아리'라고 불렀다. '아리'란 순 한국말로 '물' 또는 '그릇'이란 의미가 있었다. '항아리'에서 '아리'가 그릇을 의미하듯, 논이 그릇이 되어 물을 담았으니 '물아리'인 거였다. 그런 물아리...
박정은
가을 금관 2025.10.10 (금)
1.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라 금관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나는 한 그루 황금빛 나무를 연상했었다.박물관 유리 진열대 안에 들어 있는 천년 신라 유물들은 대개 시간의 침식에 못 이겨 퀴퀴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망각 속에 덩그렇게 놓여 있었지만 금관만은 어둠 속에서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빛깔로 너무나 선연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 천년 신라를 말해 주는 촛불처럼 느껴지기만 했다.나는 우두커니 이 천 년 신라의 황금빛...
정목일
불갑사의 상사화 2025.10.10 (금)
영광 불갑사에 꽃무릇이 핀다산문을 들어서자 고요한 숲길마다 붉은 물결이 밀려와 발끝에 불빛을 흩뿌린다마치 하늘까지 닿은 불길처럼온 산이 사랑의 기도로 타오른다 비 내리는 오후 법당의 기와집은 촉촉히 젖어 묵언의 수행처럼 무거운 고요를 품고 그 앞마당에선 꽃무릇이 빗방울 이마에 이고 서 있다방울방울 떨어지는 빛은 천년을 참아온 눈물 같아 오직 한 사람을 향한 기다림을 적신다 만날 수 없는 그...
조순배
코스모스에게 2025.10.03 (금)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가녀린 몸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손짓하며저편에서 향기로운 바람을 내게 보내면서 그 바람에 몸을 싣고모든 짐을 내려놓고 나를 오라 부르고 있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질긴 인연은 나를 꼭 붙들고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 기억 뒤편을 돌아보라 하고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마음은 나를 놓아주었다 붙들었다 하면서 바람을 이기고서 견디며 조금만 참으라 하고...
송요상
돈의 단상 2025.10.03 (금)
세계의 돈 60%이상을 움직이는 뉴욕의 중심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는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 곳의 큰 펀드 하나가 대한민국 모든 상장사 전체를 7번씩 사고도 남는 대규모의 자금을 굴리는가 하면 전 세계 주식시장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금융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가장 무섭고 강력한 권력은 전쟁무기가 아닌 돈의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1626년까지 이곳의 주인은 인디언들이었다. 당시 세계 무역의...
자명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외딴 섬의 꿈 2025.10.03 (금)
     여기     근심이 녹아 내리는 곳에 누어     푸른 하늘 속     물든 마음 건져내면     숲 속 나무 내음     물 가 물 비린내     만수우환 꼭 짜서     바위 위에 널어 말리면     쨍쨍한 햇살 내음      그러나     마음은      썰물에 밀려나간     갯가에 묶여 있고     모래바람 날리는...
조규남
태어나 한번은 우리 모두 세상의 가장 어린 막내였던 적이 있다 완벽하고 새뜻한 하얀 도화지 무한을 품었던 때가.모든 가능성을 두 손에 그러쥐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말씀하시곤 했다아기는 애초에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어.세상의 말을, 인간의 규칙을 배우면서하나둘 망각하게 돼, 하지만 우리 모두 다 알았던 때가 있었어.잠시 잊은 것뿐이야 종종 의식이 지워낸 우주의 흔적을 찾곤...
이인숙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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