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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살면서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지 않게 되면, 한국에 갈 일이 점차 줄어든다.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겨들었는데, 작년에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니 서글픈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당장 한국에 가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형제자매가 있어도 며칠은 괜찮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묵을 곳을 인터넷을 통해 구했다.    예전에 엄마 집에 머물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해서 몇 년 만에...
박혜정
탈피 2026.10.02 (금)
검은 물속 바위 아래 웅크린가재 한 마리가 몸을 비틀고 있다살아남으려 껴입은 갑옷은 어느새숨을 옥죄는 감옥이 되었다터져 버릴 것 같은 몸을좁은 문틈으로 밀어낸다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온다무방비하고 말랑한 새 몸가재는 벗어낸 뿌연 몸뚱이와 마주한다나를 지키던 세계를조각조각 씹어 삼켜새로운 갑옷을 만든다다음 죽음까지 또 한 번의 영원을 준비한다유명한 그림 속 붉은 가재를 떠올리다고개를 내젓고는청록의 꼬리를 접었다 펴물살을...
이인숙
꽃의 체온 2026.10.01 (목)
     인사동에 가면 '볼가'라는 찻집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실내에 들어서면 창가에 풀꽃들이 도열해서 길손들을 반겨준다. 깜찍하게 예쁜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살며시 꽃잎을 만져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꺾고 싶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욕이 발동을 하는 것일까. 꽃 앞에서 해 보는 생각이지만 내가 꽃잎을 만져보는 더 큰 이유는 생화인가 조화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다....
반숙자
감 2026.10.01 (목)
          1. 감 꽃 샛결바람 따스히 감 꽃이 떨어져요 장독대 물들이고 담장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밭일 나간 엄마에게 막내소식 들려주려 바삐 바삐 떠나가다 가지 끝에 결린 바람   맴을 돌다 사분사분 감 꽃만 흩날려요   샛결바람 따스히 떨어진 감 꽃이 내 마음 물들이고 발치 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2. 목걸이 실에 꿰어 만든 목걸이 엄마 기다리다 길어진 모가지에 드리우고...
김호정
세월은 몸보다 먼저 손을 늙게 한다“언니, 그냥 마트 가서 사 오면 되지. 요즘 누가 집에서 송편을 빚어요.”   추석을 앞두고 함께 송편을 만들자고 권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송편을 사러 마트에 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요즘은 그렇구나…’ 변화하는 명절 풍속을 따라갈 준비가 안 된 나는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는데, 내 손만 예전의 추석을 붙잡고 있다.   결혼 후에는 차례를...
김아녜스
커피 데울 결심 2026.09.25 (금)
아내가 내려준 커피가책상 위에서 식고 있다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전화 한 통 받고스마트폰 화면 하나 넘기는 사이나의 하루도 조금씩 식었다전자레인지에 넣고30초 누른다사람 사이이만큼 여백은 어떨까뜨겁게 사랑하자는 말 대신식은 마음 조금 데워 보는 것오늘도30초만큼은 남겨 둔다데울 결심 있는 한우리, 아직 식지 않았다.
김경래
                                                                                                                                             ...
박광일
고구마 넝쿨 2026.09.23 (수)
볼품없던 고구마 하나가 물병속에 자리잡고 앉아여린 줄기를 내밀더니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다  그때,아들이 둘째아이 소식을 전한다  유리창 넘어 햇살을 받아붉은빛을 띤 잎사귀들이자기들도 들었는지 덩달아 손을 흔든다  한 줄기에서 또 한 줄기 새순 하나 늦잠을 자면먼저 난 잎들이 간지럼을 태우듯그 곁을 더듬어 올라간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에 한꺼번에 흔들렸다가  서로 몸을...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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