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도약의 무기로 삼은 박경준 회장

▲ 박경준 회장이 31일 로스로드 한인타운 NRA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재권 기자
열의 아홉은 놀란다. “BC밴쿠버 한인회장이 36살이라고?” 따지고 보면, 그 나이에 한인회 회장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모 정치인도 만 36세에 당대표로 선출되지 않았나? 더구나 인공지능과 휴머로이드 로봇이 활개치는 시대에, 그것도 이곳 캐나다에서 나이를 논한다는 게 얼마나 진부한가?
그런데도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어떤 위인(?)이기에 그 오랜 전통의 한인회를 이끌고 있을까? 어떻게 지난 임기 1년을 보냈을까? 남은 1년은? 버나비 노스로드 비즈니스협회(NRA)의 전무이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랭리 타운쉽 시의원 출마도 한다는데, 이유는 뭘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끝이 없다. 그렇게 호기심과 궁금증을 한아름 안고 어느 오후 NRA의 사무실을 찾았다.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는 그의 풍채는 당당하고 건장했다. 하지만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의 얼굴은 여전히 젊음(?)의 풋풋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더 일었다. 한인사회의 젊은 리더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삶과 비전이 진정 궁금했다.
Q. 캐나다 이민은 언제 오셨나요? 이유도 궁금합니다.
2001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왔습니다. 이유는 이곳 밴쿠버의 풍광에 우리 가족이 완전히 반해서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 아버님이 대한항공에서 20년 정도 근무하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세계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곳 밴쿠버로도 여행을 오게 됐고요. 그런데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가족 모두가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저야 당시 어려서 가족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밴쿠버의 아름다운 풍경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밴쿠버에서의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바로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 후 약 5년의 기다림 끝에 영주권을 받고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무모하고 도전적인 결정이었지만, 그만큼 밴쿠버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웃음)
Q. 처음 정착은 어디에서 하셨나요?
버나비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 곳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Q. 이민 후의 학창 생활은 어땠나요?
다행히도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생활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조용하고 소소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친구들과는 잘 지냈고요. 제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꽤 많았습니다.
◼ 내성적이던 아이… ‘K-문화’ 선봉에 서다
Q. 내성적인 성격이라니 놀랍네요. 그런데 어떻게 코나(코리안 나이트) 행사를 주도했을까요?
아, 제가 10학년 때 기획했던 그 축제요? (웃음) 운도 좋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라이온스 클럽의 후계자 클럽인 ‘리오 클럽’이라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클럽의 회장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매 해마다 멀티 컬처럴 클럽 행사를 열었습니다. 회장으로서 그 행사를 한 해 진행하고 나니, 한국 문화 행사도 진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문화 행사라는 취지에도 맞았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행사가 코리안 나이트였습니다. 다행히 첫해부터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는데, 특히 11학년에서 대학교 2, 3학년 학생들의 도움으로 200명이 참여하는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400명, 600명, 800명, 1000명이 모이는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유료 티켓을 구매했고요. (웃음)
Q. 홍보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페이스북에서 홍보도 했지만, 돈이 없어서 무작정 발로 뛰었으니까요. 후원도 받으러 다니고, 포스터도 직접 만들고, 여기 로히드에서도 많이 홍보했어요 (웃음)
Q. 말씀을 들으니 여전히 의문입니다. 리오 클럽의 회장을 역임했다고 하시니. 그때부터 리더의 역할을 하셨는데요?
그렇게 되나요? (웃음) 하지만 오해입니다. 단지 저희 아버지께서 평소 봉사 정신을 많이 강조하셔서 리오 클럽에 참여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회장직까지 맡게 된 거고요. 단지 하나를 말씀드리면, 저는 어려서부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이 친구는 이런 장점이 있고, 저 친구는 저런 장점이 있으니까 이런 일을 하면 잘하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행사를 기획하는 데에 유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2008년도 천둥 2기 활동 사진./ 본인 제공
Q, 그럼 원래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나요?
처음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밴쿠버 한인 문화협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신 아버님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저희 아버님도 처음부터 그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잠깐 석문화 무형문화재 관련 일을 하셨고, 그 계기로 이민 후 UBC 챈 센터의 막사발 축제를 기획하게 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Q. 대학에서 전공을 바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예, 처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싶어서 ‘헬스 사이언스’를 선택했는데, 영 재미가 없었어요. (웃음) 그래서 과거 문화예술에 관한 좋은 기억도 있고, 기획하는 일도 재미있어서 밴쿠버 필름 스쿨의 엔터테이먼트 비즈니스로 다시 진학했습니다. 기획 프로듀싱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당시 제가 주도했던 행사 공연기획들과도 관련이 있었고요.
Q. 그럼 졸업 후 그쪽 관련 일을 하셨나요?
예, 행사 중에 만난 분들과의 인연으로 한국의 영화 기획사에서 2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 때 트렌포테이션 팀에서 일하고, 워쳐스키 브라더 ‘센스 8’ 촬영 때는 캡틴을 하기도 했어요.
Q.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일은 아주 재밌었어요. 다만 영화 산업의 특성상 일회성 계약이다 보니, 일의 밸런스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는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고, 잠깐 쪽잠을 자며 바쁘게 지내기도 했지만, 영화 촬영이 없을 때는 일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 싶어 밴쿠버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2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자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거든요. (웃음)
Q. 다시 돌아온 밴쿠버에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웃음)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려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약 9년 동안 유통회사의 마케팅 분야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원래 꿈이 파이어족이라 그 사이에 투자와 비즈니스 관련 업무도 병행했고요. (웃음) 물론 제가 좋아했던 문화 관련 기획 일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2004년쯤에 진행했던 코나 행사가 2011년쯤에 막을 내렸거든요. 그게 너무 아쉬워서 2016년에 한 번 더 진행했습니다.
Q. 이후에도 큰 행사를 많이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당연히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그냥 시작하는 거죠.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먼저 업무의 전체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진행 중에 만나는 적임자들에게 하나씩 저의 업무를 나눠주는 식입니다. 이분에게는 마케팅 매니저 일을, 저분에게는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그런 식으로요.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보다 더 큰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핵심 능력을 발휘할 분이라는 생각이 들면, 많은 공을 들입니다. (웃음)

▲ 2010년도 Korea Night 기획 때 가수 박재범 씨와 스태프들(왼쪽 두 번째)./ 본인 제공
◼ ‘K-문화’ 전도사… “‘NRA’는 한인사회로 이끌어준 나침판”
Q. 버나비 노스로드 비즈니스협회(North Road BIA)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십니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비즈니스를 하던 중에 NRB의 회장이신 최병하 주 의원님의 권유로 NRB의 전무이사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이곳 노스 로드 한인타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Q. NRB는 어떤 단체인가요?
버나비의 대표적인 한인타운 상업 중심지인 노스 로드 일대의 200여 기업과 건물주를 대변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10여 년간 한인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성장을 지원하고 주류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버나비 상공회의소(BBOT)와 같은 현지 기관과 협력해 ‘Korea Business Connections Reception’ 같은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하고, BC 한인 실업인협회 등과의 MOU를 통해 한인 상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 교류를 위한 ‘Korean Community Days’를 비롯해 ‘Easter Event, Party for your Mama’ 등 다양한 지역 행사도 운영하고 있고요.
Q. 그렇다면 현재 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요 사업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곳 노스 로드 일대를 공식적인 한인타운으로 인정받는 ‘Korea town sign’ 사업입니다. 차이나타운이나 펀자비 로드 처럼요. 이를 위해서 버나비시, 코퀴틀람시와 다양한 방법으로 조율하고 있습니다. 두 시의 관련 조례가 차이가 있어 조율의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명실상부 이곳 노스로드가 코리아타운으로서의 위상은 물론, 지역 상권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2023년도 노스로드 한인타운을 방문한 데이비드 이비 BC주 수상과 함께(왼쪽 끝)./ 본인 제공
Q. 사업을 진행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요?
말씀드렸지만, 노스로드 일대가 행정 구역상 버나비시와 코퀴틀람시에 동시에 속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업 신청을 하고 절차를 밟아나가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입장이 다른 두 시와 동시에 조율하다 보니, 혼선도 많이 생기고 절차도 늦어지고요. 하지만 현재 사업 진행을 위한 2개의 시안을 완성했고, 온라인 투표를 통해 최종 시안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이 모든 절차가 잘 진행되면 올해 9월경에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빠르면요.
그리고 어려운 점을 물으시니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제가 가장 아쉽고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기도 한데요. 두 시와의 어려움도 있지만, 사실 우리 한인사회 내부에서의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어찌 보면 한인사회의 오래된 병폐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바로 단합의 문제입니다. 저희가 사명감을 가지고 한인사회를 위해 나서서 이런 사업을 추진하면, 같은 한인사회의 단체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시기하고, 방해하고 심지어는 사업을 가로채려는 단체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일들은 정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노스로드를 넘어 ‘한인 사회’ 리더로 한 걸음 더
Q. 지난해에는 BC밴쿠버한인회 제46대 신임 회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혹시 출마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우연히 한인회장 선거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한인회장 지원을 특이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참 BIA에서 진행하는 사업들이 한인회의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넓은 의미에서는 한인회가 해야 할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한인사회를 위한 일을 시작한 이상 보다더 적극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인회장이란 신분이면 이곳 노스 로드 지역 외의 더 넓은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모두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Q. 출마하셨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웃음) 놀랍게도 주변 분들이 아주 좋아하시고 격려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과분한 직책도 얻게 됐고요. 능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이 발로 뛰려고 합니다.
Q. 올해 한인회의 사업 주에서도 한인회관 복구에 관한 사업이 눈길을 끄는데요.
예, 한인회관 복구는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1차 사업 목표입니다. 아시겠지만, 불의의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후 한인회관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가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이전이든 복구 사업이 진행돼야 합니다. 현재 전문가들의 조언과 함께 비용에 관한 가견적을 받은 상태고, 무궁화 재단에 있는 재원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버나비시, 코퀴틀람시, 랭리시에 회관 이전을 타진해 보고 있고, 지원 가능한 시의 재원도 알아보고 있고요.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와 우선으로 협의할 생각입니다.
특히 회관 부지를 지원할 수 있는 시를 우선으로 찾고 있습니다. 현재 회관이 위치한 이스트 헤이스팅스 지역은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치가 떨어져 매매한다고 해도 비용 문제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해당 시의 부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만약 이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현재 건물의 리모델링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라도 빨리 한인회관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이니까요.
Q. 계획대로 한인회관이 이전 혹은 리모델링된다면, 어떻게 운영되길 기대하시나요?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한인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버나비시에 위치한 일본 커뮤니티인 ‘니케이 헤리티지 센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곳은 일본계 캐나다인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지역 사회와 교류하는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공간에서 전통 다도나 기모노(유카타) 착용, 서예, 분재, 다도 등 문화 예술 강좌를 열고 있고, 일본계 캐나다인의 이주 역사와 회복력을 다루는 전시관도 있고요.
저희도 일본 못지않은 훌륭한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으니 한인회관이 건립된다면, 관련 비영리 한인 단체들이나 아메니다와 같은 노인 복지시설들이 입주해 함께 공간을 창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업시설도 입주해야 하고요.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1년이 지났다는 말은 아직 1년이 남았다는 말도 되는데요. 사업까지는 아니지만, 남은 1년 동안 50년이 넘은 한인회의 정관을 개정하려고 합니다. 한인회가 개인이나 일부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정관 개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익 구조도 마련해야 하고요. 현재 한인회에서 매년 추진하는 6월 ‘랭리 케이 푸드 페스티벌’과 9월 ‘노스 로드 케이 푸드 페스티벌’, 매달 진행하는 세미나 등을 통해서 수익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Q. 지난달에 열렸던 랭리 케이 푸드 페스티벌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는 어땠나요?
2일간 진행했는데, 1만5000명이 참여했습니다. 행상에 참여하셨던 랭리 시장님께서도 타운십 오브 랭리에서 진행한 행사 중 역대급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랭리에서는 크렘베리 페스티벌이 가장 큰 행사인데, 그에 못지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노스 로드 페스티벌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이었거든요. 어쨌든 이런 행사들을 더 정례화하고 확대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 2023년도 NRA 첫 야외 대행사에서(앞줄 오른쪽 끝)./ 본인 제공
Q. 현재 한인회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웃음) 잘은 모르겠지만,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연령대가 많이 달라진 게 아닐까요? 저는 30대고, 이사님들과 임원분들은 4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하니까요. 그리고 이전 한인회에 대해서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한인 행사를 많이 한다고들 합니다. 저희가 주관하는 행사는 물론이고 비영리 한인 단체에서 하는 행사를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고, 단체들 사이의 다리 역할도 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냥 열심히 발로 뛰다 보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Q. 지난 1년의 성과를 점수로 매긴다면요?
꼭 점수를 매겨야 하나요? (웃음) 굳이 점수를 매겨야 한다면, 85점 정도는 주고 싶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한인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다양한 기관과 협력 관계도 넓혀 함께 여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새로운 파트너십을 만들고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하는 데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진행 중인 사업들도 많은 만큼, 남은 임기 동안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Q. 한인회 회장으로서 밴쿠버 교민에게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인회는 몇몇 임원만의 단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인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와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고 싶고요. 그뿐만 아니라, 좋은 의견도 적극적으로 나눠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따뜻한 조언으로 함께 채워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큽니다.
Q. 다양한 곳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데, 리더로서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요?
자꾸 리더라고 말씀하시니 부담이 되는데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는 ‘신뢰’와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리더는 앞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책임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결정일수록 투명하게 설명하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우선으로 판단해야 하니까요. 저 또한 한참 부족하지만, 그러한 사람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한인사회위해 더 큰 무대로…“투표는 다음 세대위한 그루터기”
Q. 랭리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십니다. 출마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실 제가 출마를 하게 된 계기는 랭리 시장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라면 그냥 거절하고 말았을 텐데, 한인회의 숙원 사업인 한인회관 재건을 위해서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인회관 재건을 위해서는 적당한 부지가 꼭 필요하거든요. 한인회관 재건을 위해 랭리 시장님과 몇 차례 미팅도 했고, 가능한 부지도 몇 곳을 보여주셨지만, 그렇다고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시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부지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Q. 매번 선거 때마다 한인들의 투표율이 너무 낮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시의원에 출마하는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곳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오는 이민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이민자로서 모두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중국인이든, 인도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는 알게 모르게 이민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정책이나 혜택이 정말 많습니다. 문제는 다른 이민자 커뮤니티에 비해 한국 커뮤니티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시청의 안내 책자 예를 들면, 중국어, 인도어 안내 책자는 있지만, 한국어 안내 책자는 없습니다. 그럼 당장 한국인에게는 불편하죠. 그런데 한국어 안내 책자가 없다고 불평은 하시지만, 정작 그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출마해서 드리는 말씀도 아니고, 다른 한인 출마자들을 뽑아달라고 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선거하고 나면 커뮤니티별로 통계가 나오는데, 한인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한인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고, 당연히 어떠한 혜택도 없습니다.

▲ 랭리 타운쉽 시의원 출마 영상 속의 박경준 후보./ 영상 캡쳐
Q.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언어의 문제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생각과 관심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어의 어려움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한국 TV나 뉴스를 보고, 한국의 정치 사회에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게 편하니까요. 당연히 이곳 캐나다의 정치 사회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곳의 선거에도 무관심하게 되는 거고요. 물론 고국인 한국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죠.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이곳 캐나다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커뮤니티의 위상도 올라가고, 그래야 우리 자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Q. 그렇다면 기획 전문가로서 한인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기획이나 캠페인을 벌일 계획은 없나요?
(웃음) 원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출마 당사자라 그런 계획은 할 수 없고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제가 아무리 캠페인을 벌인다 해도 한인 커뮤니티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이요.
Q. 출마하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 당연히 있습니다.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무엇보다 저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인회장이나 시의원 후보자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시나, 시의원 혹은 기업들과 사업에 관해 협의를 하고 진행을 해볼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기회의 시간이고, 배움의 시간이고, 값진 경험의 시간입니다. 설령 이 과정에서 멈춘다 해도 그 경험은 저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큰 힘이 될 테니까요.
Q.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모든 분이 그러시겠지만, 제 가족들과 함께 잘 사는 겁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자기개발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요. 집에서 넷플릭스나 시청하며 한가한 시간만 보내면, 자기 발전이 없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집안 살림과 아이들 케어를 도맡아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아내의 내조가 없으면, 제가 어떻게 이런 활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Q. 마지막으로 차세대 리더로서 자녀들을 포함한 한인 2세나 1.5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웃음) 차세대 리더라뇨?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뭐라고 조언을 하겠습니까? 단지 제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고, 전공과는 무관하게 직장에 취직하고, 월급 받으며 은퇴만 기다리는 삶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하는 지를 아는 자녀요. 그리고 그것을 찾아갈 수 있는 실행력이 있는 자녀요.
Q. 그럼,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한인 이민 선배로서 다음 한인 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요?
(웃음) 이것도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럼에도 말씀드리면, 저는 한인사회가 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말 그대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언제나 힘을 합치는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오래 산 친구들을 보면, 자신들은 캐네디언이라 한국 커뮤니티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건 가족들과 영원히 인연을 끊고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도 커뮤니티가 정말 잘하는 점인데, 상대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 또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모이면, 한인 커뮤니티는 더 발전하고, 다음 세대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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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밴쿠버 한인회’의 새로운 30대 리더
젊음을 도약의 무기로 삼은 박경준 회장
▲ 박경준 회장이 31일 로스로드 한인타운 NRA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재권 기자열의 아홉은 놀란다. “BC밴쿠버 한인회장이 36살이라고?” 따지고 보면, 그 나이에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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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스펙’의 반전··· “룰루레몬 히트상품, 제 손 거치죠”
2026.06.19 (금)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의 기획 MD
비주류 경험을 무기로 바꾼 박주인 씨
▲밴쿠버 버라드에 위치한 룰루레몬 본사에서 근무 중인 박주인 씨. 평소 러닝을 즐기는 그는 올해 가을 룰루레몬이 주최하는 하프 마라톤에 처음 도전할 계획이다. 흔히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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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전역이 나의 일터”··· 대륙을 누비는 여행 간호사
2026.05.01 (금)
캐나다 곳곳의 의료 공백을 메우며
대륙을 횡단하는 김성준 여행 간호사
▲여행 간호사 김성준 씨는 주짓수 도복과 하이킹 신발, 스노우보드, 간호복 몇 벌과 한국 조미료를 실은 트럭에 유기묘 남매 두 마리를 태우고 캐나다 대륙횡단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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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산업의 편견 넘어··· 에볼루션이 연 ‘커리어의 길’
2026.03.27 (금)
[Biz&People]
‘기회의 땅’ 에볼루션, 3인 3색 커리어 정착기
▲왼쪽부터 에볼루션 코리안 팀 운영을 책임지는 팀 매니저 도채아, 서비스 서포트 스페셜리스트 황건, 유니폼 스페셜리스트 윤태희 씨. 온라인 카지노 플랫폼 분야의 글로벌 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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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여도 유쾌한 숫돌질, ‘밴쿠버 칼갈이’의 이민 2막
2026.01.02 (금)
이민 19년차 ‘밴쿠버 칼갈이’ 김우성 씨
▲‘밴쿠버 칼갈이’ 김우성 씨 / 손상호 기자 밴쿠버 이민 19년 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칼날을 세우며 이웃의 마음까지 다독이는 남자가 있다. 바로 ‘밴쿠버 칼갈이’ 김우성 씨(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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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위한 ‘원스톱 재활치료’, 에버그린 10년 노하우죠”
2025.12.05 (금)
[Biz&People]
30대 나이에 5개 지점 운영 중인 에버그린 재활클리닉 박세환 원장
▲에버그린 재활클리닉의 박세환 원장캐나다는 의료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느려, 교통사고나 업무 관련 부상, 혹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생기면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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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생의 반전 인생, ‘미쉐린 스타’ 셰프 되다
2025.11.07 (금)
밴쿠버 한인 최초 원스타
‘스시현’의 이주현 셰프
▲밴쿠버 미쉐린 원스타를 받은 스시현의 이주현 셰프 / Sushi Hyun 지난 10월 2일 발표된 밴쿠버 미쉐린 가이드에서 두 곳의 식당이 새롭게 원스타를 받으며, 밴쿠버의 미쉐린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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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의 길, 엄마의 마음으로 동행합니다”
2025.10.10 (금)
엄마와 아기 사이의 첫 ‘교감’을 이어주는
박도연 산후병동 간호사·모유수유전문가
▲분만실과 산후병동 간호사로도 일하고 있는 박도연 모유수유전문가 출산의 기쁨도 잠시, 많은 엄마들은 아이와의 첫 ‘교감’인 모유수유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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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변화를 읽고 AI로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2025.09.12 (금)
딜로이트 세일즈포스 컨설턴트 박상우 씨
▲강연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대기 중인 박상우 씨.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AI와 기술의 미래에 대한 견해를 풀어냈다. /권자경 인턴기자기술과 혁신의 기준이 끊임없이 재편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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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경력단절 후, 이젠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다
2025.06.27 (금)
10년간 전업주부로 쉼표 찍고, 캐나다 이민···
석세스에서 이민자의 첫걸음 돕는 백경민 씨
정착 준비부터 타지에서의 첫걸음까지, 이민길은 고민의 연속이다. 10년간 전업주부로 살다 마흔에 밴쿠버로 이주해 이민자 정착 지원기관인 석세스(S.U.C.C.E.S.S)에서 다시 커리어를 일궈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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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익 좇던 회계사에서, 公익 품은 도박 산업 지킴이로
2025.05.23 (금)
BC주의 건전한 도박 문화를 만드는
회계사 출신 도박 감사관 김현영 씨
BC 주정부 소속 도박감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현영 씨BC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활발한 도박 산업을 보유한 주(州) 중 하나다. 복권, 카지노, 빙고, 경마 등 다양한 도박 산업이 활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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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벽 넘어, 생명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2025.04.25 (금)
UBC Volentia 소속 홍사랑 의료 통역사
“진료 후 환자분이 짓는 미소가 큰 힘”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이민자라면, 병원에서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통역을 도와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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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에서 빅테크 개발자로··· 출신 배경이 강점됐죠”
2025.03.21 (금)
마이크로소프트(MS) 엔지니어 안혜선 씨
서른 중반에 해외 이직 성공··· 입사 1.7년차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시애틀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안혜선 씨 비전공자가 IT업계에 취업하는 일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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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표 김치찌개가 금메달 요리의 원동력 됐죠”
2025.02.21 (금)
캐나다 요리 경연대회 우승자 알렉스 김 셰프
한식 재료에서 많은 영감··· 메뉴에 활용하기도
알렉스 김 셰프(가운데)가 지난 1일 오타와에서 진행된 캐나다 요리 경연대회 우승 이후 기뻐하고 있다 / Canadian Culinary Championship 지난 2월 초 오타와에서 열린 캐나다 요리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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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치유하는 그림의 힘··· 현대인의 마음 건강 돌봐요”
2025.01.31 (금)
미술치료 9년차 박난 심리상담사의 이야기
아트파크 심리상담소의 박난 상담사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불안과 스트레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경험이다. 하지만 거창한 심리 상담을 받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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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에 나이·언어 장벽 넘어 캐나다 의사로
2024.12.27 (금)
한국 흉부외과 과장에서 캐나다 의사 되기까지
캐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손영상 박사의 도전기
구로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일하다 50이 다된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 53세에 나이에 캐나다 의사 면허를 취득한 손영상 박사한국에서 대학 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며 탄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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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MZ 홀린 ‘퍼프 패딩’ 제 손 거쳐 탄생했죠”
2024.11.29 (금)
캐나다 대표 브랜드 아릿지아의 김채연 디자이너
“디자이너는 여행으로 시야 넓히는 것이 중요해”
아릿지아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채연 디자이너. 본인의 손을 거쳐 완성된 슈퍼 퍼프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면 아릿지아(Aritzia)의 주력 상품인 슈퍼 퍼프(Super P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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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급증하는 유망 직업 ‘언어재활사’의 모든 것
2024.10.18 (금)
Aretē Centre의 이민형 언어재활사
“원활한 의사소통 위한 다리 역할 하며 큰 보람”
언어나 의사소통과 관련된 장애를 진단하고 재활을 도와주는 언어재활사(Speech-Language Pathologist, SLP)는 최근 US뉴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최고의 직업 10위에 선정됐을 정도로, AI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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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인터뷰]버나비서 ‘한인 맞대결’ 최병하-이한 후보
2024.10.04 (금)
NDP 최병하 “경찰·검사 출신의 한인 목소리 대변자”
보수당 이한 “버나비 문제 직접 경험한 검증된 일꾼”
제43대 BC주 총선이 오는 10월 19일(토)에 다가온다. 총 93명의 BC주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은 3회 연속 집권을 노리는 BC NDP(이하 NDP)와 중도우파인 BC 보수당(이하 보수당)의 2파전 양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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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탐구하는 사나이, 밴쿠버의 미래를 설계하다
2024.08.09 (금)
밴쿠버 도시계획가 이의태 씨
밴쿠버는 최근 몇 년간 심각한 주택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주거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주택 위기는 주거의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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