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어떤 만남

김유훈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9-18 16:34

김유훈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난 7월 말, 나는 비씨주 내륙 Cranbrook에 있는 Home Depot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다.
그러나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 이곳저곳에는 산불들이 나무들을 태우고 있는 광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며 운전을 하였다. NO.3번 도로는 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도로이다. 높은 산세에 울창하게 퍼져있는 나무들은 마치 푸르른 자연을 화폭 위에
그려놓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강과 호수들이 곳곳에 있고, 그 강이
미국의 오레곤주 포틀랜드까지 흐른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자유로운 방랑 시인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싶다. 특히 Manning Park 근교를 지나는 산길은 위험하고
험하다. 구불구불, 그리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없이 가는 동안 무거운 짐을 실은 내
트럭은 속도를 낼 수 없어 서행으로 운전해야 한다.

  이른 아침 나는 이 길을 지나는데 마침 곰 가족이 아기곰 세 마리와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곰은 도로를 건너 도로 막는 장애물을 잘 넘어갔지만, 새끼곰 세 마리는 여러 번
넘기에 실패하고 겨우 넘어가는 모습을 나는 끝까지 지켜 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수많은
다람쥐들이 이리저리 건너기도 하며 한 다람쥐는 길을 건너다 중간에 서서 나와 눈이
마주칠 때 깜짝 놀라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산길 운전은 위험하여도 자연의 모습과 동물들이 잘 지내고 있는 모습들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여서 이는 트럭운전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인 듯 하다.

  나는 이렇게 3번 도로를 다 지나 다음 행선지인 에드먼턴으로 향하였다. 알버타주는 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끝없이 농장지대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다시 2번 고속도로를 통해
나의 목적지에 갈 수 있다. 나는 중간에 쉬어가야 하기 때문에 에드먼턴 근처의 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밤을 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잠시 휴식 중에 작은 승용차가 내 앞에 와서
서더니 그 안에서 한 남자와 여성 한 분 그리고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함께 내리며 짐을 든
청년에게 허그를 하며, Bye Bye하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 청년에게 “네 아내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내 친구의 아내” 하더니 내 옆의 트럭
문을열고 그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 청년은 내 옆에 세워둔 트럭 운전자였다. 잘생긴
청년과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듯 우리 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너는 어디서
왔냐?” 하고 물으니, 그는 “나는 위니펙” 이라 하였고, “나는 밴쿠버” 라고 하였다. 그리고
“트럭 힘들지 않니?” 하니, “이제 5개월째” 라고 하여 나는 “20년이 넘었다” 고 하였더니, 그는
“WOW!”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의 가족은?” 하고 물으니 “나는 아들이 셋이고,
모두 위니팩에 있다. 그리고 큰 아들이 17살이다.” 하여 “그럼 너는 나이가 몇이니?” 하니
“내 나이 서른 다섯” 이라고 하여 나는 놀랐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그가 설명하였다.

  그는 “우리 부부는 독일에서 함께 고등학생 때 만나 사귄 사이였고 곧 사랑에 빠져 17살 때
결혼하고, 18살 때 첫 아이를 낳고, 둘이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고 하며 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비극이 아니라 Happy ending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마칠 무렵 그는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며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어 나는 그에게 운전 조심해서 잘 가라고 하였다.

  그의 트럭이 조금 움직이며 앞으로 가더니 그는 트럭을 세우고 차에서 내려와 나에게
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흰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트럭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고 트럭에서 내리니 그가 나에게 전해준 작은 종이는 영어 전도지였다. “Prayer
Changes Things” (빌 4:6-7) 나는 그가 준 전도지를 받고 그에게 “I’m retired pastor” 라고 하며 우리 둘은 “God Bless you!” 하며 오랜 친구가 만나 헤어지듯이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무언가 모를 긴 울림이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보람되고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그 독일 청년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였다.

  내 나이 35살, 그 시절 뜨겁던 열정으로 신학 공부에 몰두했으며, 그분이 부르시면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디든지 달려갔던 그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이렇게 젊음을 불태웠던 그들이 이었기에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젊어서 그리했던 것처럼 지금은 필리핀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우리 아들 가족을 격려하고 후원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왔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갈 참 냄새 2023.10.23 (월)
아버지는 우리 지붕이었다항상 지붕아래 튼튼한 울타리로 계셨다아버지 옆에 앉아 있으면갈 참향기로 다가오셨다 겨드랑이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수많은 날들로열매 맺는 갈참나무로 사시며내 안에 너, 네 안에 나무 한 그루따순 숨소리 다발 묶어 등짐 지고우리들 마음에 갈참나무로 뿌리내려 사셨다 이제는 동그마니 바람으로 숨소리 내는억새가 하얀 손 사례 치는 언덕에갈 참냄새가 나는 아버지 집이 있다
강애나
한글나무 2023.10.16 (월)
어느 날 오후언어로 표현하는그대 삶의 모든 편린들이 노래로 불려질 때우리의 꿈나무에게 내림굿판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우리는 밝힐 수 있으리라.글을 가진 세종의 자손이라는 자랑스런 핏줄들을.우리들은 쓰러진 글자를 일으켜 세우고 틀린 글자를 고치면서언어를 잃지 않는 작업이 얼마나 큰 노동이 될 것이라는 것을외면할 수는 없다.완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라도 더불어 살면서지조 없는 슬픈 역사를 만들어 갈 수는 없으며마주보는...
송요상
    주방영양학 교실 독자님들, 평안하시지요? 주방 영양학 교실, 심 박사가 안부 드립니다."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속담을 아직 기억하시지요? 1825년, 프랑스의 미식가 브릴라 - 사바랭 씨는 그의 걸작 『미각의 생리학』(Physiology of Taste)라는 저서에,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 줄게"라는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심정석
일하며 생각하며 2023.10.16 (월)
  나는 흙 내음이 좋아서 농촌에 산다. 값도 안 나가는 토종사과를 가꾸며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아낙으로 살며 글을 쓴다.어떤 이는 이런 나를 신선이라 부러워하고 어떤 이는 못난이라 비양을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시멘트 정글속에 갇혀 마음의 고향인 흙을 그리며 사는 도시인들이고 후자는 도시로만 나가면 뼈 빠지게 일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다고 그곳을 동경하는 가난하고 순박한 내 이웃들이다.나는 그 틈에서 머리는...
반숙자
자화상 2023.10.16 (월)
어느 시절은 봄꽃처럼 환하게 웃다가 어느 시절은 슬픔을 바늘귀에 꿰어 하루를 깁고 어느 시절은 무디어진 마음 바람에 벼리며 산 이제 바람에 닳은 얼굴 반쯤 뭉그러져붉은 꽃잎 같던 입술은 어디로 가고칸나 혹은 장미꽃 빛 립스틱이라도 발라야그나마 생기 도는 얼굴 봐 줄만한 입술 위에 꽃 피워 놓고얼굴 가만 들여다보니살고살아내고살아 지기도 한 온갖 시절그래, 노래였구나꽃이었구나사랑이었구나 담담한 눈빛이 나를...
정금자
산(7) 2023.10.11 (수)
가을산은 엄청난 생명력을 지녀옅은 파아란 녹조의 빛깔의 *대추(棗)는끝내 익어 임금님의 용포를 담은 듯붉은 색을 띄워 끊임없는생성과 소멸의 혼백에게다음 세계를 염원한다 가을산은 신비한 생명력을 지녀*사신 처럼 한 톨의 씨 밤이 썩어져내세에 *밤(栗)의 열매를 열듯산아 너는 신비한 마법으로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연결하여 영원한 생명을 띄우는구나 가을산은 유치찬란한 생명력을 지녀*오행의 조화로 황금빛 만추의...
구정동
숨고르기 2023.10.11 (수)
  누렇게 뜬 무청이 눈에 띈다. 괜히 억척을 부렸나 보다. 어제 다용도실에 놓아두고 늦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깜박하고 반나절이나 지난 지금 생각난 것이다.  성당 후문에는 일요일에만 오는 야채 트럭이 있다. 밭에서 직접 따온 신선한 야채에 늘 마음이 끌렸지만, 오후에 약속이 있거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한 번도 사본 적은 없었다. 어제 미사를 끝내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사 후 부부 동반 모임이...
민정희
아침 안개 2023.10.11 (수)
  그는 거물이야 하늘과 바다를 합방시키고 밤과 낮의 경계를 허물지 사람이 만든 구획을 지우고신의 업적조차 무화시켜 버려 논둑이며 밭고랑을 후루룩 삼키고 강물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그는미처 씹지 못한 봉우리 하나 허공에 둥실 뱉어 놓기도 해그는 고단수야 숨소리도 없이 진군해 와서 오랏줄도 없이 포박해 버리거든 품어 안는 척 발을 묶는사랑법이 내가 알던 누구와 기막히게 닮았어 겹겹이 진을 치고 포위해보아도 끝내 네 안으로...
최민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