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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 “무채혈 혈당 측정, 화웨이가 백지수표 내밀었지만 독자개발한다”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2-06 12:06

마이크로파 이용, 정밀도 높인 기술 발표
"화웨이가 상용화 지원 제안했지만 거절"
"만화가 꿈꿔"…씨엘에게 그려줬던 캐릭터 인기

지난 5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사무실에서 만난 이기진 교수. 물리학 연구와 만화 작업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김윤수 기자
지난 5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사무실에서 만난 이기진 교수. 물리학 연구와 만화 작업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김윤수 기자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 수치를 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중국 화웨이에서 제안이 왔어요. 상용화까지 필요한 연구비 전액을 지원해준다고요. 정부 지원이 끊긴 상황이라서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지만, 거절하고 한국 제품으로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이기진(62)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5일 서울 신수동 본교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28일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재는 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에 발표하고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가수 씨엘(CL)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30년 가까이 마이크로파 연구에 매진해온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서강대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쓰쿠바대와 도쿄공대 문무교관(외국인 조수)을 거쳐 1999년부터 지금까지 22년째 서강대에서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교수가 상용화에 도전하는 무채혈 혈당 측정 기술은 당뇨 환자들의 오랜 꿈이다. 하루에 많게는 10번씩 피부에 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신 CNBC는 "미국에서만 1억명이 당뇨나 당뇨 전 단계의 질환을 앓고 있다"며 "비침습적인 혈당 측정 방식은 이 시장(혈당 측정기기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성인 7명 중 1명이 당뇨나 전 단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 중이지만 아직 상용화 수준에 도달한 기술은 없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자사의 스마트워치에 혈당 측정 기능을 추가하려고 경쟁 중이지만 양사 모두 확실한 상용화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양사는 피부 아래 혈관에 레이저(가시광선)를 쏘는 방식을 채택했다. 레이저가 혈액을 통과할 때 혈액 속 포도당(혈당)의 양에 따라, ‘파장’이라고 하는 빛의 특성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다. 파장의 변화 정도를 보고 혈당 수치를 간접 측정한다.

이 교수 연구팀의 논문에 수록된 무채혈 혈당 측정 기술의 모식도. /네이처 캡처
이 교수 연구팀의 논문에 수록된 무채혈 혈당 측정 기술의 모식도. /네이처 캡처
이 교수도 이 신기술 경쟁에 가세했다. 혈관에 빛을 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레이저 대신 마이크로파를 쏜다. 마이크로파 방식은 이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다. 마이크로파는 가시광선보다 멀리 뻗어나가기 때문에 위성 통신, 레이더 등에 활용된다. 물에 잘 흡수되는 특징이 있어, 음식물의 수분을 데우는 전자레인지에도 쓰인다. 이 교수는 "혈액도 대부분 물이고, 여기에 잘 흡수되는 마이크로파가 레이저보다 더 정밀하게 혈당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06년 마이크로파로 유전자(DNA)의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다가, 이 정도의 정밀도면 혈액 속에 포도당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연구 계기를 밝혔다. 같은 해 서울성모병원, 헬스케어 벤처기업들과 손잡고 정부로부터 3년간 5억원을 지원받아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손끝을 가져다 대면 모세혈관 속 혈당 수치를 알려주는 휴대용 의료기기를 만들기로 했다.

아직 상용화되지 못한 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5년이 흐른 최근에서야 비로소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의 정밀도로 혈당 측정에 성공했다. 이 교수는 "핵심 기술 개발을 끝낸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앞으로 3년 내 시제품을 만들고, 국내 기업을 통해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직면한 어려움도 있다. 2019년까지 1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기초 연구를 수행해왔는데, 상용화 연구로 넘어가던 문턱이었던 지난해 초 지원이 끊긴 것이다. 시제품을 만들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할 때까지 수억원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최근 이런 고민을 단번에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화웨이가 연구를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 교수와 서강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화웨이는 이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앞으로 필요한 연구비 전액을 지원해줄 테니 기술 이전을 통해 우리 제품으로 상용화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이 교수에게 계약서를 보내고 필요한 금액을 직접 적어서 회신해달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거절했다. 그는 "15년간의 연구 성과가 결실을 보이고 있는 만큼 무시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애초 정부 지원으로 시작한 연구인 만큼 우리나라의 기술로 끝까지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 지원사업에 재공모하는 등 연구비를 충당할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이 교수는 또 "중국의 천인계획(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과학계에서 문제 시 되고 있는 만큼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천인계획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경쟁국의 과학자와 첨단 기술 확보에 힘쓰고 있다. 지난 2017년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의 이모 교수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자율주행차의 핵심인 라이다(LIDAR) 관련 기술을 현지 대학 연구기관에 넘긴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이 교수의 과학 만화. 로봇 조수 뚜띠(왼쪽)와 본인(오른쪽)을 그렸다. /이기진 교수 제공
이 교수의 과학 만화. 로봇 조수 뚜띠(왼쪽)와 본인(오른쪽)을 그렸다. /이기진 교수 제공
이 교수에겐 그동안 몰두해온 연구 외에 또 다른 꿈이 있다. 앞으로 점점 과학기술이 복잡해지는 시대에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는 만화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 어린 딸에게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어설프게 그리기 시작한 과학 만화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동아일보에 과학 만화 한 컷과 함께 과학을 주제로 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 과학 만화에 등장시키던 자신과 가상의 로봇 조수 ‘뚜띠’는 만화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현재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의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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