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코로나 일지 (日誌)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5-11 22:57

김춘희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벌써 두 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그의 속성답게 방콕, 집콕 등 달갑지 않은 새로운 단어들과 함께 우리들 언어 속에도 끼어 들어와 살고 있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낯설고 두렵기까지 했는데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사이에 나름 적응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려니 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익숙했던 것들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것이 정녕 꿈이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벗님들과 함께 월남 국수를 즐겼고 커피 한 잔을 놓고 끝없이 이야기를 즐겼던 시간들, 매일 아침 영적 양식을 얻고자 새벽같이 달려갔던 미사 시간, 그뿐일까, 때로는 꿀벌처럼 분주히 이곳저곳 쇼핑을 다녔던 나만의 시간들, 이런 일상의 시간과 활동이 싹 사라졌다. 소소하게 즐겨 왔던 것들이 사라지고 일상의 생활 패턴이 정지된 시간 안에서 나는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해내야 하는 낯설기만 한 바이러스 시대에 도착한 것이다.

 

    한 주거지에 일곱 식구와 견공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처음 며칠은 여느 방학 때처럼 느긋하게 살았다. 그러나 한 열흘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놀던 공원 놀이터에 노란 테이프가 쳐지고 식료품을 사려면 2미터 간격으로 줄을 서야 했다. 일곱 식구 먹을 양식을 조달하는 임무는 어느새 즐거움에서 피곤함으로 변하여 갔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하면서 돌려가며 식사 준비를 하며 어른들이 조금씩 삐걱거렸고 아이들은 옆집 아이들과 놀지 못하고 방구석에서만 놀아야 하니 아이들대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아침이면 직장으로 학교로 달려가던 일상이 무너지고 한정된 주거 공간 안에서 온종일 공생을 해야 하니 불협화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못할 일이 뭔가요? 혼자서 유행가 가사를 바꿔서 흥얼대며 어른으로서 이 집안에 새로운 생기를 넣어 주어야만 하는 지혜를 구했다.

 

    “이번 토요일은 할머니가 그리크 수블라키로 쏜다.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집에서 너희 모두를 초대하는 거야.” 딸에게 그리크 레스토랑에 음식을 나 대신 주문하라고 했고 사위는 신나서 한 사람씩 메뉴 주문을 받아 식당에 전화하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간만에 양고기 수블라키를 즐기며 분위기가 전환 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끔 무슨 특별한 메뉴를 제공할 때는 이 집에 분위기가 삐거덕거릴 때이다. 수블라키 먹은 그날 저녁 딸은 엄마 돈 너무 많이 썼다고 거금을 돌려주었고 아들도 엄마 돈 많이 썼다고 엄마한테 돈을 주겠다고 약정을 했다. 내가 거금을 썼지만 결국 나는 지네들 돈으로 인심만 쓴 셈이다.

 

    이렇게 집안 분위기를 이리저리 살피며 지내던 차에 우리들의 사회적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는 사위는 약 열흘 격일로 직장에 나가다가 이제는 매일 근무로 복귀했고 교직에 있는 딸도 재택근무로 시작하여 학교로 돌아가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마침내 집안에 시공간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리빙룸 한쪽에는 온라인 학교가 차려졌고 또 한쪽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간편한 헬스장이 꾸며졌다. 또 저녁이면 식구들이 모두 동네 산책을 나가고 아들은 딸아이 체력 단련으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돈다. 집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하루 한두 번 산책을 나가면서 나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생활 패턴이다. 미우나 고우나 모든 것이 가족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한낱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깨 버렸지만, 만물을 지배하는 인간은 인간답게 코로나를 극복하는 삶을 터득하고 있다. 한국의 어느 메디칼 바이오 회사 대표가 뉴스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빨리 전파돼도 우리 인간의 두뇌가 더 빠르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지인이 카톡에 만화를 올렸다. 이야기인즉슨 마귀가 “내가 교회 문을 모조리 닫아 버렸다 했더니 하느님 말씀, “나는 각 가정을 교회로 만들었다라는 이야기다. 악마가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해도 인간은 절대 멸망당하지 않는다. 창조주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약속하신 바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년 전에 뉴욕 맨하탄에서 살던 딸 내외가 이리로 이사 오면서 우리와 함께 기거를 해왔다. 새로 들어 온 새 식구와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남이 모여 살자면 성격의 차이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딸이 나와 한 공간을 쓰고 있으니 그것도 나에겐 인내와 양보가 늘 요구되는 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딸 내외가 새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 나갈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일 년 반을 함께 살면서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고모 고모부 이사 가면 주말에는 슬립 오버 하겠다고 들 떠 있고 나를 엄마라 부르는 사위는 자기들 보금자리에 첫 손님은 당연히 엄마라고 한다. 어제저녁엔 딸 사위가 맛있는 스테이크를 내놓았고 아들은 바비큐로 맛있게 구워 식탁을 장식했다. 샴페인을 터트리고 아들네와 딸네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석양빛을 받아 더욱 다정해 보였다. 그날 밤 코로나바이러스 스트레스는 우리를 피해 지나갔다. 내일은 더 밝을 것이고 희망도 우리 편이 될 것이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코스모스9 2020.11.09 (월)
코스모스9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자고 일어나면 수북이 쌓여서 ‘읽어 주세요’ 라며 나를 기다리는 그 많은 카톡 메시지가 요즘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지난 3월에 오랜만에 한국방문 비행기 표를 사 놓고 한국 가면 이번엔 꼭 고교 동창들을 만나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밴쿠버에 사는 친구의 안내와 배려로 접속되어 고교 동창 카톡방에 발을 딛게 되었다. 서울 사대부고 9회 여자 동창 방이다. 한국 전쟁 후 우리...
김춘희
예정했던 모국 방문은 한바탕 꿈이 되어 버렸다. 언니와 형부께 드리려고 한 올 한 올 따다가 말려예쁘게 포장 했던 고사리 묶음 단은 다른 선물과 함께 아직도 저만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그렇게 뒤 헝클어 놓았다. 넉 달 이상을 자가 격리 아닌 격리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따분해지고 어딘가 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내 속에서기어오르고 있을 때, 마침 아이들이 오카나간 지역으로 3박 4일 가족 여행을...
김춘희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벌써 두 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그의 속성답게 방콕, 집콕 등 달갑지 않은 새로운 단어들과 함께 우리들 언어 속에도 끼어 들어와 살고 있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낯설고 두렵기까지 했는데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사이에 나름 적응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려니 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김춘희
겨울 부츠 이야기 2020.02.10 (월)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몸 위로 차오르면 나는 겨울 부츠를 꺼내 신는다. 지난 1월에는 예상치 못했던 북극의 한파와 폭설로 학교와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았다. 뜻하지 않은 휴교 덕분에 아이들은 미끄럼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며 한껏 휴가를 즐겼다. 부츠를 발에 껴 신으며 나는 12년 전의 몬트리올로...
김춘희
(이 글은 지난 6월 2일부터 13일까지지 예루살렘 성지 순례 후 조선일보 6월 22일자 기고 감상문 ‘순례 지팡이’와 7월 31일자 기고 ‘올리브 나무의 침묵’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우리 순례 일행은 사해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오른 쪽으로 우뚝 서 있는 마사다를 케이블 카를 타고 올랐다. 요새란 뜻을 지닌 마사다는성지는 아니지만 이스라 엘의 국립 공원으로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50m의 고지대로 절벽 위에 오르면 마치 거대한...
김춘희
(이 글은 지난 6월 2일부터 13일까지지 예루살렘 성지 순례 후 조선일보 6월 22일자에 기고 한 감상문 ‘순례 지팡이’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점심 저녁 식탁에 올리브 피클과 올리브기름이 필수로 올라왔다. 기름은 빵에 묻혀 먹거나 야채에 뿌려 먹고 올리브 피클은 우리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듯 이 곳 사람들의 필수 반찬인 격이었다. 올리브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이탤리,...
김춘희
순례 지팡이 2019.06.25 (화)
벼르고 벼르던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떠나던 6월 2일 전 날.아이들은 늙은 엄마가 먼 길을 나서는 게 영 불안들 한 모양이었다. 출발 전 날 며느리는 여행 동안 꼭 쓰라고 지팡이를 사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난 아무 말 못하고 아이들에게 순종해야 했다. 순례를 앞 둔 5월 1일 아침 산책길에서 발을 헛디뎌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얼굴을 긁어 잎술도 터지고 뺨도 긁혀 꼴사나운 얼굴로 순례를 간다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내가 봐도 이건 좀...
김춘희
어머니의 냄새 2019.04.04 (목)
나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위로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내 밑으로 줄줄이 동생이 넷이 있었던 나에게 엄마는 없고 어머니만 있었다. 말 배울 때부터 엄마라는 단어를 몰랐다. 어머니, 엄니 는 있었지만 엄마는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인가, 어머니가 후회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너무 엄하게 아이들을 길렀더니 엄마 소리도 못 한다고. 그 후 우리 형제들은 오빠와 나를 빼고는 모두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 불렀는데 나는 엄니란...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