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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골목 술판, 밤새 클럽 소음··· 안전질서 또 무너져

고유찬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2-17 17:46

지난 15일 밤 11시 30분, 1년여 전 ‘핼러윈 참사’가 일어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입구. 장발의 20대 남성이 친구와 어깨동무를 한 채, 다른 손에는 위스키 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20분 넘게 이태원 거리를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행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출동해 위스키 병을 압수하고 나서야 이들의 ‘주폭’ 행위는 멈췄다.

거리에 주저 앉은 취객. /김지호 기자
거리에 주저 앉은 취객. /김지호 기자

해밀톤호텔 뒤 ‘세계음식문화거리’를 포함한 이태원의 골목은 이날 만취한 취객들로 ‘난장판’이었다. 술병을 든 사람들이 골목마다 걸어 다니며 술을 마셨다. 골목 한쪽에 깨진 술병이 나뒹굴었고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이도 많았다. 이태원 파출소 관계자는 “금요일 기준 코로나 시절 50건 안쪽이었던 야간 신고가 100건이 넘어 두 배 넘게 늘었다”며 “주취자 신고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핼러윈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클럽·술집의 소음 문제도 여전했다.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주점과 클럽이 틀어놓은 음악 소리로 뒤덮여 함께 길을 걷던 바로 옆 일행의 말소리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준주거지역인 이태원 일대는 소음 제한 구역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작년 핼러윈 참사 당시에는 이 음악 소리 때문에 참사 현장 인근의 행인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이태원 상권은 핼러윈 참사 이후 80%가량 회복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와중에 이태원 골목 자체가 ‘술판’으로 변해버리는 양상은 과거보다 심해졌다. 음식과 쇼핑 등 다양성이 있었던 이태원 골목이 클럽과 술집으로 대부분 채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태원의 한 상인은 “이런 식이라면 ‘이태원 부활’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대로변에는 아직 빈 상가들이 많다”고 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16일 새벽 2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한 취객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비가 오는 거리엔 음악 소리가 '쾅쾅' 울려댔다. 술병을 들고 지나는 사람들은 쓰러진 취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16일 새벽 2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한 취객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비가 오는 거리엔 음악 소리가 '쾅쾅' 울려댔다. 술병을 들고 지나는 사람들은 쓰러진 취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지난 15일 밤엔 이태원에도 비가 내렸다. 하지만 골목마다 과음을 견디지 못하고 토하는 20~30대들이 많았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20대 남성은 친구 2명의 부축을 받아 끌려 다녔다. 완전히 취한 친구를 등에 업고 술집에서 나온 남성도 있었다. 한 여성은 술에 취해 바닥에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가 났다.

한 20대 남성은 의식을 잃은 채 주점 앞 길거리 한구석에 10분 넘게 누워 있었다.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은 이 남성은 출동한 경찰이 몸을 흔들어 깨우는데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태원에서 13년 넘게 가게를 운영 중인 강모(68)씨는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는 원래 각종 이색적인 외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주점과 클럽 등이 밀고 들어와 이름이 무색해졌다”며 “가게 노랫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흥청망청 분위기에 사람들이 아무 데서나 술병을 들고 다니며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한 편의점 앞에는 맥주와 소주를 병째 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는 8명의 외국인이 거리 기타 공연에 맞춰 몸을 흔들고 춤을 췄다. 이들 일행 중 2명은 각각 소주와 맥주를 병째 들고 마신 뒤 술병을 바닥에 버리고 사라졌다. 이태원 주점에서 근무하는 이모(28)씨는 “밖에서 술을 마시고 병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깨진 술병에 손님들이 다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앞을 쓸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밤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골목에는 클럽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일부 클럽에는 50명이 넘게 줄을 섰다. 행인들은 이들을 피해 골목길을 오갔다.

지하철 막차가 끊기자 이태원 주변에서는 ‘택시 대란’이 일어났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거리 한복판에 나가 택시 앞을 가로막는 시민도 있었다. 일부는 길 건너편에 정차한 택시를 타기 위해 4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기도 했다. 앱으로 잡은 택시에 술에 취한 친구를 태워 보내려던 한 남성은 택시 기사와 5분 넘게 승강이를 벌였다. 택시 기사가 “술 취한 사람은 혼자 태우기 어렵다”고 했지만, 술에 취한 손님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새벽 이태원 거리는 술병과 전단, 담배꽁초, 토사물 등으로 뒤덮였다. 상당수가 귀가했지만, 주점의 스피커 음악 소리는 여전히 컸다. 이태원 주민 서모(28)씨는 “출근하다 보면 아침 늦게까지도 음악을 틀어놓은 곳이 있다”며 “도대체 공무원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핼러윈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 골목은 준주거지역으로, 이곳에선 낮 시간대 소음이 50dB(데시벨), 밤 시간대 소음이 40dB을 넘어서는 안 된다. 도로변이라도 낮 시간대 65dB, 밤 시간대 55dB을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인파가 몰린 거리의 사람들이 내는 소리와 여러 가게 소음이 이렇게 복합적으로 결합된 경우, 소음규제법으로 단속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외부에 확성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법적인 제도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는 순찰을 하며 업소를 계도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핼러윈 참사 이후 소음을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주점은 한 곳도 없었다고 용산구 측은 밝혔다. 핼러윈 참사 이후 소음 단속 공무원은 2명으로 그대로다. 주말에만 1명 늘린 3명으로 소음을 단속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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