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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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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4-15 09:00

권순욱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없으면서도 동료들과 후배를 사랑했다. 늘 친절하고, 온유했으며, 이 시대의 보기 드문 믿음의 영웅이었다. 어떤 때는형님같이, 어떤 때는 아버지같이, 그리고 집안의 기둥같이 버팀목이 되어준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아쉽기만 하다. 선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우리를 감동케 했던 색소폰 애창곡 “모란이 피기까지”를 이제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하지만 그는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다. 그의 본이 되는 삶이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본향으로 갔을 뿐 언젠가 우리는 그 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추리라”라고 한 다니엘의 말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소망과 부활의 약속 가운데 이렇게 슬픔을 이기고 있다.
 
   워낙 가까운 사이여서 알고 지냈던 친척들 조카들이 식장에 모여 조문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족들과 인사를 한 후,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다른 지인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영결식에서 나는 가족들 뒤에 앉아 그와의 지난날들을 생각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약 40여 년 전 우리 가족이 밴쿠버 지사로 발령받고 처음으로 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면서 부터였다. 1982년 4월이었다. 그는 1976년에 온 선임자로 나의 이민 정착에 도움을 주며 함께 했던 예배 찬양단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내는 만우절인 그날도 40년 전 그때처럼 하늘은 시리도록 청명했고, 만발한 벚꽃잎이 세찬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민자로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이민이라는 뜻을 잘 알고 있다. 정든 고향을 자의적으로 떠나 다른 나라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자로 이 땅에 온 지도 40여 년이 넘어 아들, 딸이 50대 초반이 되었고 이민 3세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와 변호사의 준비를 하는 손주, 손녀도 있다. 우리가 경험한 바로 이민은 늘 위로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국 땅에서 경험하지 못한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고국에서 삶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따르기도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명절이면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이던 만남의 행복도 잃었다. 보고 싶은 친구, 일가친척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그리움에 지칠 때도 있었다. 이민자에게는 눈물이 있을 수 있다. 아픔도 만난다.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이민의 삶의 뿌리를 정착하지 못해 꿈을 잃어버린 분들이 있는가 하면, 이민의 꿈을 성공적으로 이룬 가정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평생을 가도 만남의 첫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값진 만남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과 같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을 위한 만남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문장로가 바로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청춘도 이렇게 가고 마는 것인가. 아직도 그의 나이나 정신적으로 늘 건강을 유지해 오던 중 이 몇 해 어간 신병으로 기력이 좀 떨어진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마침내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날의  활발했던 모습이 꿈만 같았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와의 과거와 현실을 대조하면서 일시적인 것에 도취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향하여,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먼저 사모하며 매진해야 할 것이다.
 
   80여 평생을 믿음의 후손들을 남기고 떠난 친구의 유해를 잠깐 쉬어갈 동산으로 옮기며 그 누구나 다 정해진 기한이 있음을 겪고 있다. 가을철에 곡식이 이삭의 결실로 무거워지면서 잎이나 줄기는 마르고 마침내 이삭만 남게 되는 것을 보아왔다. 가족들이 준비한 추모 영상 중에 1982년 친구와 함께 찬양 인도하던 장면을 사진으로 보는 순간 애절함이 더해졌다. 영상 속에는 노랑 개나리꽃들이 가지들을 뒤덮고 있었고, 화사한 벚꽃들이 만개하여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행복한 고요의 숲도 아니요, 평화로운 은빛 달 같은 꿈의 요람도 아니다. 실낙원의 세상이다. 이 세상은 근심과 걱정, 인생의 질곡이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고 늘 새로운 모양으로 다가와 마음의 평화를 앗아 간다. 그러나 이제 부활의 봄이다.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부활을 위한 과정이다.
 
   [사자死者의 서書]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마아트를 알고 있었는지, 또는 실천했는지를 질문 받는다고 한다. ‘마아트(Matt)’란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뜻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구원이란 살면서 얼마나 위대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미션을 얼마나 깨닫고 노력했으며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느냐는 것이다. 나에게 맡겨진 마아트는 무엇이었겠는가. 지금까지 감당할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으므로 그 가치를 안 이상 돌려주는 일이 나에게 맡겨진 마아트라고 단정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것은 엄숙한 순간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그 경계가 자주 떠오른다. 그때 웃음으로 과거를 회상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한때 즐거웠고 행복했다면 나의 마아트 일부는 실천이 된 것일까. 언젠가는 나도 떠날 것이다. 그때 나와 인생의 여행을 같이했던 동료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보며 여행을 통해 기쁜 순간들이 많았다고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나 또한 경계 너머 다른 세상에서 소리 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친구가 떠난 지 반년이 지났다. 오후 늦은 시간에 착잡한 마음으로 친구의 무덤을 찾았다. 지난 40년 동안 함께하며 투병 중이던 그때에도 둘만의 18번 곡들을 연주하며 보냈던 그때를 떠올려 봤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제 더 이상 그런 시간을 이 땅에서는 이루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먼 훗날 내가 이 땅을 떠나 본향을 향해 도착하는 그때 그대를 만나 오늘의 아쉬움을 풀어볼까 하네… 그때를 준비해 주게나. 친구야! 
 
“내 나그넷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조상의 나그넷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47:9)  -야곱의 고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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