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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캔쿤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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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1-29 09:25

한힘 심현섭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덴버를 지나 텍사스를 관통하면서 곧장 멕시코 남동쪽 유칸탄 반도 끝자락에 있는 캔쿤을 향해 날아갔다. 비행시간이 5-6시간이니 북미주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 가는 시간에는 반 정도인데도 지루하고 몸이 비틀린다. 갈수록 장거리 비행이 힘들어 진다. 연로한 분들이 비행기 타기 힘들어 한국을 못 가겠다고 했던 말이 새삼 귀전에 와 닿았다.
 
한국인에게 멕시코는 생소한 나라는 아니지만 사실 멕시코에 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다. 축구를 잘하고 마약을 잘하고 춤을 잘 추면서 정열적인 사람들이라고 쯤 여기고 있다.
멕시코는 과거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이전에는 아즈텍과 마야 문명이 발달했던 열대의 나라였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서 허무하게 멸망하고 난 후에는 오늘날 그들의 혼혈인들이 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 미국과 육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국경선 양쪽의 형편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멕시코 인들의 상당수는 오직 미국으로 들어가는 일만이 일생일대의 과제인양 죽기 살기로 미국으로 넘어가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는 엄청난 숫자의 멕시칸들이 넘쳐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는 왜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로 갈리게 되었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양쪽 다 서구인들이 들어와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멕시코는 스페인의 정복으로 시작해서 일방적인 식민 착취를 오랜 동안 받았고,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새로운 대륙을 찾아 와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간 차이가 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통해 자주적인 독립을 쟁취하고 세계 최초로 민주헌법을 제정하여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민주주의 정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멕시코는 스페인과의 오랜 독립전쟁으로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독립 후에도 안정적인 정권을 거의 유지하지 못했다. 물론 수많은 요건이 있겠지만 우선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은 양국의 차이가 여기서 결론이 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멕시코는 발전해 갈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진 나라이다. 우선 인구가 1억3천만 명으로 세계 10위이고, 면적이 남한의 10배에 달하고 있으며 석유를 비롯해서 풍부한 지하자원이 개발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시장인 미국이 바로 옆에 있다.
이제는 한국이 자랑하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로 멕시코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멕시코mexiko의 발음은 ‘메히꼬’에 가깝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멕시코’로 표기하고 북한에서는 스페인어 원어에 가깝게 ‘메히꼬’로 읽는다고 한다.
 
캔쿤에 도착한 것은 서서히 어둠이 가라앉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어수선한 시골 장터 같은 공항 밖으로 나와 5박6일을 묵기로 한 Grand Park Royal Cancun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프론트에서 손목에 노란 밴드를 채워줬다. 호텔 내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서비스 받을 수 있는 징표였다.방에 들어와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텐을 밀어내니 창밖에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며 하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래로는 반짝이는 불빛이 물 위에 비치는 수영장들이 야자수를 담아내며 반기고 있다. 첫 인상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처음 보았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40여 년 전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넓고 푸른 바다, 밀려오는 하얀 파도, 해변에 늘어선 야자수들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감성에 젖은 사람은 이 풍경만으로 속으로 ‘됐다’고 외친다. 하염없이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고 거기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훨훨 날아오른다. 쉬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내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런 상태를 자유롭다고 하던가.
 
신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신들 앞에서는 영원의 물결로 변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떠밀려 올라가고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하고 만다네.
<괴테>
괴테는 파도를 영원과 죽음으로 표현했지만 나는 그저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멈추지 않는 역동성이고 아름다움이고 자연에 대한 경탄이라고 말하고 싶다.
 
캔쿤의 모든 호텔들은 거의 다 숙박비에 식사와 음료, 술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과연 그런 가격에 만족스런 식사까지 잘 제공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숙박비는 호텔에 따라 계절에 따라 심지어는 날짜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1박에 대체로 $200-$700 선이다. 이 호텔에는 대형 뷔페식당이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하고, 멕시칸 레스토랑, 일본 레스토랑과 이태리 레스토랑의 저녁은 예약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예약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아침 일찍 오피스로 달려가서 예약을 하고 하루에 한 곳씩 세 곳을 다 가봤는데 모두 만족할 만하고 특히 이태리 레스토랑은 바다 전망도 좋고 어디 가도 만나기 힘든 고급 레스토랑으로 메뉴도 완전 풀코스로 와인 서비스도 훌륭했다.
캔쿤에서 낭패스러운 일은 멕시코 페소를 잔돈으로 준비하지 못한 점이었다. 현지에서도 이상하게 잔돈을 교환하기 힘들었다. 달러로 일 불짜리라도 준비했어야 했다. 음식값을 따로 지불하지 않는데 직원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불만이 없으니 숙박비에 팁이 포함되어 있다는 문구는 있지만 그냥 나오기가 공연히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서둘러 뷔페식당으로 내려갔다. 밖에서는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고 있고 먼 바다에서는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수영장과 정원이 있는 파티오에 자리를 잡고 나가 앉았다. 멕시코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데낄라’ 한 잔을 시켰다. 그동안 데낄라를 마셔본 기억이 없다. 손등에 라임조각을 문지르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린 다음 데낄라를 단숨에 원샷으로 마신 다음 손등을 혀로 핥는 게 전통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1온스짜리 소주 잔 만한 잔에 라임조각을 끼워서 1/3을 담아서 내왔다. 알콜 도수가 35%이니 위스키 보다는 약한 술인데 그래도 요즘 소주에는 거의 두 배나 되는 술이다. 소주도 한 잔을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 습관 때문에 한 번에 넘기는 일이 내게는 서툴렀다. 한 잔을 마시니 술을 마셨는지 말았는지 기별이 안 온다. 선인장으로 발효시켜 만든다는데 소주처럼 색깔도 맑고 향은 나는 둥 마는 둥 하고 맛 역시 특이 할 게 없는 술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데낄라의 특징이다. 술만 마실 때는 손등의 소금을 핥겠지만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술이다. 한 잔 두 잔 계속 시키다 보니 여덟 잔을 마셨다. 가져오는 웨이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술이 어지간히 올라서 그쯤해서 그만 두었다. 여기서도 술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시지는 못한다고 한다. 힘들어도 한 잔 한 잔 주문해서 마셔야 한다. 물론 다음 날부터는 웨이터의 수고를 덜기 위해 더블로 시켜서 마셨다.
 
웨이터들은 모두 친절하고 웃는 낯으로 대하는 품에 호감이 갔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배가 불룩하고 얼굴은 둥글게 넓은 편이다. 아마 스페인과 마야인 사이의 혼혈인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옥수수는 신대륙이 원산지로 지금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수확이 까다롭지 않다. 이곳 마야인들은 옥수수를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옥수수 없이는 죽는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멕시코 음식은 옥수수가 기본으로 출발한다. 밀과 옥수수 가루로 만든 ‘또띠야‘에 속을 채워 타코도 되고 둥글게 싸서 먹는 브리또도 되는데 거의 주식수준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이니 멕시코 음식만 고집하지는 않고 평소 익숙한 음식들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간밤에 세게 불던 바람도 어지간히 가라앉고 바다 위에는 구름 사이로 햇살마저 비치고 있다. 비치로 나가 바닷가를 걸었다. 모래가 분가루처럼 고왔다. 청록색의 바다가 멀리 퍼져 나갔다. 수평선 너머로 큐바가 아득하게 머리 속에 보이는 듯 했다. 야자수와 야자수 사이에 그물을 매어놓은 해먹hammock에 누워봤다. 흔들흔들 요람에 누운 아이처럼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와 스르르 잠이 들게 평안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가 곧 휴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일차에는 마야 유적을 찾아 떠나는 당일 관광을 떠났다. 이집트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만 알고 있는 내게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또 다른 불가사의를 느끼게 하였다. 이곳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마야 문명은 문자가 없어 기록을 통해 세세한 부분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마치 우리의 가야가 거의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다른 삼국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현재 이집트에는 약 80여개의 피라미드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멕시코에는 약 8000여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 실로 멕시코는 ’피라미드의 나라’라고 할만하다. 마야의 피라미드 중에서 제일 거대한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를 찾아가는 길은 거의 3시간을 내내 끝없이 펼쳐진 정글 속으로 달려갔다. 산도 강도 없는 잡목 숲으로 간신히 도로를 내었다. 마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혹 가다 몇 몇 집들이 도로 옆에 있는데 열 평도 안 되는 콘크리트 벽돌로 겨우 벽만 세워놓은 작고 초라한 집들뿐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유카탄 반도는 1905년 나라를 잃고 해외로 이주하려는 1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배를 타고 도착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들을 ‘애니깽’이라고 하는데 그후 농장을 벗어나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낮 기온은 섭씨 28도에 구름이 끼여 있는데도 여기가 열대라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마침내 너른 광장이 나오고 거기 웅장한 치첸이드사 피라미드 앞에 섰다. 우선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하고 쓸데없는 신경을 쓴다. ‘감동’이라는 말 한마디면 족하다. 수만 년 전 베링해를 거쳐 아시아인들의 한 부류가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을 따라 여기 유카탄 반도까지 내려와서 이 엄청난 석재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는 감동에 한 가닥 동족의식을 느끼게 한다.
마야인들은 이 정글의 한복판에 어디서 돌을 가져다가 그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노력과 시간, 비용을 피라미드 크기만큼 엄청나게 투입하면서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신앙의 힘이다.
높이는 30m, 9층의 계단식 피라미드이며 꼭대기의 신전은 높이가 6m 정도이다. 꼭대기 신전 안에는 재규어 형상의 옥좌가 놓여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관광객들이 올라가지 못한다. 9세기에 완성했다고 추정하는데, 각 면에 있는 계단이 91개이므로 사면의 계단 총수는 91 x 4 = 364단, 여기에 정상의 1단을 더하면 365일이 되는 신비한 건축물이다. 마야인들이 오늘날 현대 문명으로 만들어도 힘든 거대한 돌의 신전을 만든 것은 그들이 믿었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한 제단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안고 나는 아주 천천히 피라미드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앞에서 보이는 두 면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면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콘크리트로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너져 내린 곳을 자세히 보니 속에는 흙으로 다져져 있고 겉면에 타일을 붙이듯이 돌들을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서 가져다 붙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파르게 점점 높아지는 위에는 돌들을 어떻게 끌어올렸을까? 무슨 도구를 사용했기에 가능했는지 피라미드는 말이 없고 보는 사람은 스스로 상상을 해 볼 수밖에 없다.
 
다음 날에는 강풍이 불어서 바깥으로 나가기가 힘들어 로비와 칵테일 바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 되니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주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창가에 앉아 멀리 바다를 보니 성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야자수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캔쿤이 좋아졌다. 1970년대에 주로 미국인들을 끌어들여 달라를 벌기위해 만들어졌다는 캔쿤 리조트는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카리브 해변을 끼고 뒤에는 호수가 있어 방의 어느 곳에서도 전망이 막히는 곳이 없다. 별다른 공장이 없는 이 지역에 그야말로 달라를 거두어 들이는 공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에메랄드 바다가 그리워지면 가족 모두와 함께 다시 오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데낄라 잔을 높이 들고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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