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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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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2-06 09:27

박병호 / 사)한인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인생의 강물은 내 맘대로 흐르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다. 완만하게 굽이돌며 한 없이 흐른다. 거침없이 흐르는 푸른 강물이다. 내가 나에게 끼어들 새가 없다. 일반적으로 강물에 실린 그리움과 기다림의 원천은 어머니다. 그런데 나의 그것들은 내 나이 열한 살 때, 보라색 치마에 긴팔의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온 띠동갑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시집갈 나이 스물셋에 산골 초등학교에 주산 선생님으로 왔다. 살랑살랑 꽃바람에 부드러운 향기를 뿜으며 왔다. 그 산들 향기는 그녀가 온 지 십여 년이 흘러도 나의 뇌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덧 내 나이도 스물셋이 되던 날, 시냇가의 보라색과 하얀 꽃들 속에서 은은한 물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나의 뇌에 그리며, 이름을 바람꽃으로 지었다. 이후 아네모네를 줄여 불렀던 이름, '아모네'는 '바람꽃'이 되었다. 그날은 다이너마이트처럼 붉은 꽃망울을 쏘아 올릴 날을 기다리며 배롱나무가 매끄러운 피부를 드러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네모네는 그녀가 지은 이름이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학지'라고 했다. 좋은 이름이지만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박학지!' 라고 부르면 김치가 떠올라 흐르는 물 같은 이름을 지어 '아네모네!'라고 불러달라고 떼를 썼다고 했다. '학지'는 나와의 첫 만남 때 내 이름을 그녀가 물어보고 나서 다른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한다는 약속으로 나에게만 알려준 이름이다. 처음 주산이 관심을 끈 것은 주판 때문이었다. 그녀의 교육용 주판은 가야금만큼 컸고 주판을 애지중지 다뤄 골프가방 길이의 가야금 케이스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방과 후 과목이라 교습비를 별도로 납부해야 했지만 첫날부터 교실은 주산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들로 꽉 찼다. 사람들은 피아노나 미술 교습소 하나 없는 산촌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과외라서 그렇다고도 하고, 학교에 도서관이 없어 심심해하던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서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탄력 있고 균형 잡힌 몸매와 안정감을 주는 황금비율 얼굴의 그녀를 며느리 삼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과 크고 검은 눈동자에 아름다운 음성을 가진 그녀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학생들의 형과 오빠들 때문이기도 했다. 여하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색의 커다란 주판알이 나를 끌었다. 나의 목마름을 단박에 해소하는 단비로 와서 나의 강물에 합류했다. 그녀의 주판은 수평 막대 위 한 알은 흰색, 아래 네 알은 빨강, 노랑, 파랑, 보라색의 오색 주판이었다.  
  “우리 아빠가 오색 무지개 떡의 보라색은 물을 상징한다고 했어요. 아래알이 물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첫 수업 시작 직전 아모네 선생님께 물었다.
  “글쎄, 나중에 보자. 똑똑한 아이네. 영재는 하늘이 준 선물이지. 산수와 자연을 좋아하지? 이름은?”선생님은 알 색깔보다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며 물었다.
  “저는 4학년 '호야'입니다, 크고 넓은 들판을 뜻합니다.”
  “이름 아빠가 지어주셨니?”
  “그랬을 거예요. 호가 설곡인 아빠의 문장력과 필체는 삼남지방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훌륭한 아빠구나.”
  “다섯 살 때 사서오경을 외워 신동 소리를 들었었대요.”
  “아버지에 아들이니 호야도 앞으로 주판 알 정도는 머리에 줄줄 꿰겠네!”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제가 엄마 닮았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음과 동시에 종이 울리며 수업이 시작되고 우리의 첫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날 밤 아버지는 빨강은 불, 노랑은 흙, 파랑은 나무, 흰색은 금과 차분함과 포용력을 뜻한다고 하시며,“내 아들은 흰 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다음 날도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교실 앞 복도에서 아모네 선생님을 기다리던 나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달려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아빠가 저에게 흰 알이 되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대답 대신 활짝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섰다.
   “호야는 처음부터 주판 없이 놓아야 해.” 선생님의 흰 손이 여린 풀뿌리가 돌을 파고들듯이 내 책 보에 들어와 주판을 꺼내가며 말씀하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단다.”
   알듯 말듯 했지만 선생님이 특수교육하려는 것으로 알고 순순히 한 번도 놓아보지 못한 새 주판을 빼앗겼다. 아니 당분간 선생님께 맡겼다. 이어 쉴 틈 없이 부르는 호산 교육이 시작되었다.
  “자, 1원이요, 3원이요,  5원이요, 7원이요, 9원이요, 10원이면?”
  “35원이요.”5학년 청룡마을 형구형이 손을 번쩍 들어 대답했다.
  선생님은 형구형이 아닌 나를 보며 주산을 놓지 않냐며 엄하지 않게 추궁하셨다.
  “주판 없이 주산을 놓아요?”
   선생님은 머리에 오색 주판을 선명히 그리고, 주산을 놓는 것과 똑같이 하라고 하셨다. 왼손으로 상상의 주판 왼쪽 끝을 계란을 쥐듯이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 위에 연필을 끼우고, 수평 막대 위 흰 알은 검지로 올리고 내리고, 아래 네 알은 엄지로 올리고 검지로 내리라고 하시며 숫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떨고 놓기를! 12원이요, 14원이요, 16원이요, 18원이요, 20원이면?”
   “80원이요.” 이 번에는 4학년 중모마을 경구가 손을 들며 말했다.
   “아직 놓지 않았냐?”선생님은 이번에도 경구 대신 나를 보며 물었다.
   “주판을 그렸는데 12 올린 후 14 올릴 때 12가 달아났어요.”고개를 긁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그림을 선명히 그리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시며, 다시 숫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떨고 놓기를. 21원이요, 22원이요, 25원이요, 26원이요, 29원이요, 30원이면?”
   “153원이요.” 다시 형구형이 씩씩하게 답했다.
   “어디까지 따라왔니?”선생님은 이번에도 나를 보며 물었다.
   “21 위에 22를 넣고 25를 더하려는 순간 43이 날아가 버렸어요.”
   “두 번 더하기까지는 살아 있었구나!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는 거야.”
    그때,“왜 호야만 특별 교육을 시켜요?”경구가 화난 표정으로 아모네 선생님께 따졌다.
   “호야는 오늘 주판을 안 가져와서 그렇단다.”선생님이 웃으며 둘러댔다. “주판 없이 주산을 놓고 싶으면 집에다 주판을 두고 오려무나!”

    정식 수업이 시작되었고 아모네 선생님이 나에게는 빙긋이 웃으며 주판을 안 가져온 죄라고 하시며 백지 두 장을 주셨다. 1장은 주판의 중앙점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1부터 9까지를 놓은 주판을, 또 한 장은 주판 중앙점에서 왼쪽으로 9부터 1까지를 놓은 주판을 생생하게 그리라고 하셨다. 주산 시간인지 미술시간인지 몰랐다. 나는 처음부터 주판 없이 주산을 놓는 학생이 되었다.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다. 길을 가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숫자만 튀어나오면 뇌에 자동으로 그려진 알들이 움직였다. 내 엄지와 검지는 허공을 날았다. 자동 연습은 본능이 되었다. 조건반사적 연습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해 2학기 중간쯤 늦은 가을, 도시로 주산 급수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는데 나는 3급에 응시하게 되었다. 보통은 7급 시험을 치르는데 4 계단이나 건너뛴 것이었다. 시험 치르는 앞 날 저녁은 설레는 밤이었다. 한 번도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던 나는 깜깜한 밤이 되자 염려가 싹텄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도 십 리 길 산 넘어 집에 오는 것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던 나였는데 그랬다. 내가 잠을 설치는 통에 일찍 깬 누나에게는 학교에서 주산 연습을 하고 가야 떨지 않을 것 같다는 핑계를 댔다.  
   동트기 전, 학교를 향해 달렸다. 차가운 바람을 맞아 북쪽으로 달리며 승리감을 만끽했다.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두려움은 차를 처음 타본다는 것과 시험에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3급을 따는 유일한 학생이 '나'라는 성취감에 파고든 것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온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서하는 소녀상 뒤, 배롱나무에 갔다. 꽃 핀 지 백일이 지났음에도 나무는 절정 맞은 빨간 꽃무릇처럼 빛나는 꽃잎을 땅에 떨구고 있었다. 흰 속살을 자랑하기 위해 뱀처럼 껍질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간지럼을 탔다. 나는 나무를 두 손으로 살포시 잡고 직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근암' 선생님께 오늘 시험장에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드렸다. 고개 들어 배롱나무 꼭대기를 보며, 근암 할아버지 덕분에 자손들이 '박학의 후손'이라고 맞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아버지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줄줄 외웠던 근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는 '학문에 임하는 자세'가 무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와 혀와 입술을 움직였다.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 근본원리를 찾아라, 종합적이고 자유롭게 살펴라.”조용히 뜻을 음미하며 반세기 하고도 4 반세기 전에 근암 선생님을 기리며 훌륭한 제자의 동네, '사창'마을 사람들이 심은 배롱나무 아래서 조용히 읽어내렸다,  
  “돌아올 차는 맨 뒤 칸 오른쪽 끝 창가에 앉아야 한다!”
  갑자기 배롱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잔잔한 바람결이 흘러와 읽기를 멈추었다. 시험장에 도착해 한 알 한 알 보다 주판 전체를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감은 눈을 치켜뜨며 나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다른 수험생들도 주판 없이 시험에 임하는 나를 보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아모네 선생님의 커다란 오색 주판을 그렸다.
  시험을 치르고 또다시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달릴 버스에 올랐다. 아무도 앉기를 꺼려 하는 자리, 맨 뒤 칸 오른쪽 끝 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은 다 앉을 수 있었지만 좌석 한자리가 부족해 선생님은 혼자 서서 갔다. 그날 선생님은 보라색 셔츠에 흰 바지를 입었다. 배롱나무가 아니었다면 선생님과 싸워서라도 내 자리를 선생님께 양보하고 나는 바닥에 앉아 갔을 텐데…. 바람꽃 선생님이 서서 가는 것이 못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던 한순간, 정류장도 아닌데 갑자기 차가 멈추더니 곧 서서히 기울었다. 차가 두 바퀴 반이나 굴러 도로 아래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앉은 방향으로 구른 후 비스듬히 멈춰 섰고 나는 철봉에 오르듯 손잡이를 잡고 튀어 올라 깨진 유리창을 밀치고 논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차 안에서는 유리 파편과 잔해물 사이에서 부상자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했다. 서서 가신 선생님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피 흘리고 계실 선생님을 찾는 것보다는 파출소에 가서 사고 소식을 먼저 알리는 것이 급선무 같았다. 내 앞에 동, 서 두 방향이 놓였고 판단은 빨라야 했다. 뛰기 좋은 평지 방향, 차가 가던 방향을 택했다.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나갔다. 다른 신발마저 벗어 계주 주자처럼 한 손에 쥐고 맨발로 뛰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뇌는 온통 바람꽃 선생님뿐이었다. 교회라는 곳을 본 적도 없던 내가 하늘을 향해 선생님 살려달라고 빌며 달렸다. 바람꽃 선생님을 낫게 해주지 않으면 커서 결혼 안 할 거라고 했다. 달리고 달려 시군 경계를 벗어나고도 한참을 달려 파출소에 도착했다. 십 리 길 학교 가는 거리의 두 배는 되는 거리 같았다. 4년간 다져진 등굣길 달리기에 숙달이 된 나의 폐와 심장도 얼마나 긴장했는지 한참을 헐떡거렸다. 파출소에서 나는 사고 방향을 가르치며 더듬거렸다.
  “구해주세요 아저씨, 급해요. 선생님이 죽 죽 죽어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피 피 흘리고 있어요.”      
  경찰이 급히 움직였다. 나를 파출소에 두고 구호대와 구급차가 달렸다. 안심이 되었으나 선생님에 대한 걱정은 나를 가만히 앉아 있게 하지 않았다. 파출소를 나와 신작로로 갔다. 지리산 방향 차에게 무조건 달려들어 차를 세운 후 사정해 볼 작정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버스도 트럭도 한대 오지 않았다. 해가지고
땅거미가 지고 칠흑같이 어두워진 밤이 되었다. 차 한 대도 안 다니는 거리에 서서 선생님 걱정을 하고 있는데 구급차가 되돌아왔다. 거창과 남원, 그리고 함양의 병원에 사람들을 입원시키고 나도 입원시켜야 하는지 상태를 보러 왔다고 했다.
  “저는 다친대가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이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지요?”차분해진 내가 공손히 말했다.
  “선생님을 살린 사람은 바로 너야!”경찰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만 늦었어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경찰은 통증을 억누르며 호야를 부르는 선생님을 응급처치 후 큰 병원으로 옮겨드렸다고 했다.
  “저도 선생님 계신 병원으로 입원시켜 주세요.”내가 떼를 쓰며 졸랐다.
   그러나 경찰은 다친 곳이 하나도 없으니 안된다고 하며 버스를 잡아줄 테니 새끼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입어 치료를 끝낸 한 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선생님께 호야는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을 알려드려야 해요. 선생님께 전보라도 칠 수 있게 해 주세요.”떼써봐야 입원을 안 시켜줄 거라고 생각한 내가 한발 후퇴해서 빌었다.
   내 소식을 경찰이 대신 전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선생님을 보지 못하고 형구형과 함께 우리마을에 돌아왔다. 그날이 나와 바람꽃 선생님의 이별의 강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몇 주가 지난 다음에야 형구형을 통해 선생님이 여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다쳐서 애를 못 낳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아모네 선생님을 찾아야 해, 형구형 도와줘.” 불행한 소식을 듣고 샘이 말라버릴 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나도 몰라 아모네 선생님이 어느 병원에 계신지를.”
  “형구형, 여자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 어디야?”
  “몰라. 선생님과 한 병원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지금이니까 지리산에서 남원, 함양, 그리고 거창은 먼 거리가 아니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는 하루 두세 차례 다니던 시외버스로 그곳들을 뒤지기에는 너무나 먼 나라의 땅이었다. 차비도 없었으며 학교를 무단결석할 수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 사정해 보았지만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모네 선생님 상태를 자세히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슬픔 딱 한 번의 표정으로 관계를 끊었다. 영영 이별했다. 그럴수록 바람꽃 선생님에 대한 나의 그리움의 강도는 세지고 어머니 같은 지리산을 담은 강물은 넘쳐흐른다. 애 못 낳는 한 여인이 물줄기를 도도히 흐르게 한다. 주산반은 없어졌다. 후임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다. 아모네 선생님의 나에 대한 관심을 시샘해 뛰쳐나갔던 경구가 시샘을 날려버리고 나를 찾은 그날, 나는 3급 합격증을 받았다. 바람꽃 선생님 대신 경구를 보듬고 엉엉 울었다. 나의 합격 소식을 전해 드릴 방법을 생각하다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배롱나무를 찾았다. 길을 물었다. 내 안에 절대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나무야 나무야 배롱나무야, 어떻게 살면 바람꽃 선생님이 나를 찾으실까?”새벽 청량한 공기에 대고 명랑하게 노래했다.
   “주산 선생이 되거라. 아모네 선생님이 못다 가르친 것을 가르쳐라.”나는 배롱나무 여린 가지들의 떨림과 함께 바람 소리를 들었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아버지가 숫자를 부르면 나는 이마에 선명히 그린 오색 주판 위에 주산을 놓았다. 바람꽃 선생님의 주판 위에서 내 엄지와 검지는 현란한 춤을 추었다.
  “떨고 놓기를. 천 일원이요, 천십 원이요, 천백 원이면?”
  “너무 쉬워요!”
  “쉽다고? 떠올고 놓기를. 3십3만 3천3백3원이요, 빼기를 십만 천십 원이요, 넣기를 6만 7천6백7십7원이면?”
   주판 없는 주산은 성장 속도가 매우 빨랐고, 또 6개월 만에 나는 유단자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5학년 1학기부터 방과 후 주산 선생이 되었다. 무료 봉사와 생생한 상상으로 바람꽃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학생들은 나를 믿어주었다. 급수 따는 시험은 보러 가지 않았다. 대도시 주산 대회에 참가했다. 입상 기록들은 각자의 이력서에 수상 경력으로 올랐다. 실제 노리는 것은 주산반의 대상 입상이었다. 신문에 나면 바람꽃 선생님이 보고 연락을 주실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5학년 1학기 마지막 수업, 등교하자마자 배롱나무에 갔다.
  “나무야 나무야 나무 백일홍아, 백일은 꽃으로, 또 백일은 잎으로, 나머지 165일은 하얀 속살로 쉼 없이 기쁨을 주는 나의 배롱나무야, 바람꽃 선생님께 전해다오. 호야가 끝까지 선생님을 기다린다고. 아이는 뇌로 출산하면 된다고.”

  사람은 도시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5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갔다. 그곳 배롱나무는 꽃 핀 지 백일이 지났음에도 꽃잎을 땅에 떨구지도 않고 속살을 드러낼 준비도 하지 않았다. 만져도 간지럼도 안 탔다. 나무 앞에 서도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도시에 온 아버지는 '사람은 누구나 흐르는 강물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이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강물에서 하산했다. 큰 산을 담은 강은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유유히 흐른다. 기다림은 멈추지 않는다. 스물세 살 이후 나이 먹기를 멈춘 바람꽃 선생님과 함께 과거로 미래로 생명줄을 긋는다.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corei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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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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