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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10-04 09:28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즐겁게 내달리는 고등어 떼를 티브이 화면으로 보았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아이들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물이 서서히 조여올 때까지도 고등어는 무리 지어 유영을 즐겼다. 건져 올린 것은 고등어의 몸통일 뿐, 고등어의 푸른 자유는 이미 그물 밖으로 다 새어 나간 뒤였다. 싱싱한 고등어를 보면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동그란 눈 속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방추형으로 생긴 몸매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맵시가 난다.


짙은 색을 띤 등에는 물결무늬가 일렁인다. 제가 가본 바다를 기억하기 위해 고등어는 제 몸에다 그 바다의 물결을 새겨 둔 게 아닐까. 고등어의 모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등과 뱃살의 대비다. 군청색을 띤 등은 눈부시게 흰 뱃살 때문에 마치 '눈 속에 묻힌 댓잎'처럼 보인다. 첫 애를 가졌을 때 나는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교사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면, 이틀에 한 번 꼴로 고등어조림이 나왔다. 고등어조림이 지겹다고 했더니 고향이 남해라는 식당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고등어는 고등교육을 받은 생선이라 그 값을 톡톡히 할 거라고. 무와 함께 심심하게 조린 그 식당의 고등어조림은 사실 일품이었다. 무에 밴 고등어 맛과 고등어가 끌어안은 무 맛, 그중 어느 맛이 더 좋은가가 가끔 교무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무뿐만 아니라 시래기, 묵은 김치 등 어느 것과도 잘 어우러진다는 게 고등어의 매력인 것 같다. 저 혼자만의 맛을 고집하는 스테이크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친정어머니는 언제나 연탄 화덕 위에 석쇠를 얹어 놓고 고등어를 구웠다.


검푸른 껍질이 부풀어 오를 즈음, 고등어는 자글자글 소리를 냈다. 뒤집는 순간 떨어지는 기름을 타고 파란 불꽃이 일어났다. 그 순간 고등어의 눈에 잠시 푸른 바다가 비쳤을까. 바삭해진 껍질을 젓가락으로 벗겨내고 살점을 뜯으면 고등어에서 뜨거운 김이 훅 올라왔다. 고등어가 상에 오른 날, 우리 집 밥상은 그야말로 만선이었다. 왜 하필 고등어였을까. 한창 클 아이들에게 넉넉히 먹이려면 값이 싸면서 살점이 많은 고등어가 적당했을 것이다.


몸에 힘 올리는 데는 그만한 생선이 없었으므로. 갈치나 청어에 비해 가시가 적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으리라. 아이가 생선을 저 혼자 발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가시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어쩌면 우리 형제들은 고등어를 발라 먹으면서 세상의 가시에도 조금씩 눈을 뜨지 않았을까. 삼 년 전, 고등어가 부산의 市魚로 결정되었다. 반가웠다. 씩씩하고 활기차게 태평양을 누비는 고등어의 역동성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약하는 부산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부터 이 지역의 특산물이 되어 가난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도와 온 고등어가 마침내 그 공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곳곳에서 일 년 내내 고등어구이 냄새가 풍겨 나올 정도로 부산 사람들은 고등어를 즐긴다. 즐겨 먹는 음식이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얼굴에 약간 기름기가 돌면서 가무잡잡한 부산 사람들은 고등어를 자주 먹어서 그런 건 아닐까.


말투가 다소 거칠고 성급한 면이 많은 부산 사람들은, 잡히는 순간 몸을 패대기치듯 버둥거리는 고등어와 기질적으로도 닮았다. 그러니 고등어가 부산의 시어가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 하겠다. 살점을 내어 고등어가 대가리에 등뼈 하나만 거느린 , 접시 위에 누워 있다. 당당해 보인다. 빼앗긴 자가 아닌 베푼 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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