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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2021.10.04 (월)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즐겁게 내달리는 고등어 떼를 티브이 화면으로 보았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아이들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물이 서서히 조여올 때까지도 고등어는 무리 지어 유영을 즐겼다. 건져 올린 것은 고등어의 몸통일 뿐, 고등어의 푸른 자유는 이미 그물 밖으로 다 새어 나간 뒤였다. 싱싱한 고등어를 보면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동그란 눈 속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방추형으로 생긴 몸매는 어느...
정성화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남극에 사는 펭귄들이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을 견디는 방법은 집단적 체온 나누기와 자리바꿈 때문이라고 한다. 다닥다닥 붙어선 펭귄들은 1분에 10센티 정도 바깥쪽으로 이동하고, 가장 바깥에 있던 무리는 그 파동을 따라 다시 안쪽으로 들어온다. 멀리서 보면 펭귄들이 발이 시려 동동거리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서로 자리바꿈을 위해 계속 움직이는 중이다.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펭귄들의 겨울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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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에 대하여 2020.12.14 (월)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내 귀를 보고 있으면 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얼굴에 달려 있는 죄로 오십 년이 다 되도록 투박한 경상도말만 듣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세수를 한 뒤에는 귓바퀴부분을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준다. 매일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날아와 탕탕 부딪히는데도 나의 귓바퀴는 여전히 그 형을 유지하고 있으니 참 용하기도 하다.서울 나들이를 가면 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서울...
정성화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경부선 기차가 지나가는 시골이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 심심하면나는 강둑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언제나 어두운 들녘의 한 쪽을 들치고 씩씩하게달려왔다.기차는 아름다웠다. 캄캄한 밤하늘에 소리 없이 풀어지던 한 무더기의 증기도 아름다웠고,네모난 차창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만드는 금빛 띠도 무척 아름다웠다. 그 들녘에 이르러울리던 기적 소리는, 기차가 길게 내쉬는 숨비소리로 들렸다. 나는 그때 기차가...
정성화 
수필은 그물이다 2020.05.11 (월)
살아가는 모습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그냥 사는 사람과 어떻게 든 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살아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삶은 하나의 서커스다. 한꺼번에 접시를 세 개 돌리거나 허공에 몸을 날려 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 단원처럼, 그날 하루의 공연이나 무사히 마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오랫동안 배를 탔다. 비바람 불고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남편을 내보낼 때마다 두려웠다. ‘우리가 무사히...
정성화
창가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과 신문, 그리고 향이 그윽한 원두커피 한 잔, 이것이 우리 집‘아침 3종 세트’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제 막 나온 것’이다. 오늘의 기사가 궁금한지 내가펼치는 면마다 햇살이 저 먼저 고개를 드민다. 키가 작은 커피 잔도 계속 하얀 김을 전령으로내보내며 소식을 기다리는 눈치다. 신문에 쏠리는 눈들이 아침을 더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신문 기사는 대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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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는 아프다 2019.11.18 (월)
칠십대의 노점상 할머니가 대통령의 가슴에 기대어 울고 있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매일자정쯤 나와 열 두 시간동안 시래기와 무청을 주워 팔아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을하며 울었다고 한다. 우는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대통령의 표정도 무척 착잡해 보였다.   사는 게 너무 고달파서 한바탕 울고 싶던 사람들의 마음을 툭 건드리는 사진이다. 사진 속배경이 된 배추더미는,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잠깐 잠이 든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정성화
버티고(Vertigo) 2019.09.03 (화)
아이섀도우를 바르는 손끝이 떨렸다. 눈썹을 너무 치켜 그리면 팔자가 드세 보인다는 말이 생각나서 다시 눈썹 끝을 얌전히 주저 앉혔다. 헤어스타일은 또 어떻게 하나, 미용실에 가면 한 오 년쯤은 젊어 보이게 해 줄텐데…. 망설여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부분에 신경이 쓰였다. 얼굴은 얼굴대로 굵은 허리는 허리대로 여기는 어떻게 할 거냐며 한꺼번에 내게 보채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이 모든 휘둥거림은 며칠 전 받은 전화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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