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남극에 사는 펭귄들이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을 견디는 방법은 집단적 체온 나누기와 자리바꿈 때문이라고 한다. 다닥다닥 붙어선 펭귄들은 1분에 10센티 정도 바깥쪽으로 이동하고, 가장 바깥에 있던 무리는 그 파동을 따라 다시 안쪽으로 들어온다. 멀리서 보면 펭귄들이 발이 시려 동동거리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서로 자리바꿈을 위해 계속 움직이는 중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펭귄들의 겨울나기가 생각났다. 이 드라마 속의 쌍문동 골목길 사람들은 늘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 중 한 사람이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 날로 골목 안 사람 모두가 알게 되고,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같이 고민한다. 이것이 내 눈에는 집단적 체온나누기로 보인다.
한 회에 적어도 한 번씩은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그 감동의 근원은 대개 결핍이다. 아빠가 없는 어린 ‘진주’에게 온 동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산타가 되어주고, 홀아비가 밥상 차리는 걸 걱정해서 이웃으로부터 반찬이 수시로 건너온다. 누가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경찰서에 조사받을 일이 생기면 골목 안 사람들은 당장 그리로 달려간다. 달려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같이 스러지고 같이 일어나는 풀잎을 연상하게 한다.
이 세상에 가족 말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입을 삐죽거리곤 했는데, 그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조금씩 잦아든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저렇게 선한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정환’은 양 팔을 뻗어 ‘덕선’을 위해 바깥을 만들었다. 정화의 팔에 시퍼렇고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만든 임시 바리케이드였다. 말이 없으니 팔뚝이라도 배경이 더욱 살아났다.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내가 갈망하는 것도 그런 은근함이다.
바둑 기사 ‘택’이가 대국에 출전하러 가는 길에 좋아하는 덕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덕선아 나 져도 되지?”
그 말에 내 마음이 울컥했다.
거의 고시에 준하는 자격증 하나를 따기 위해 남편은 몇 년에 걸쳐 시험 준비를 했다. 일 년에 단 한 번 치는 시험인데 이미 세 번이나 낙방한 남편이 네 번째 시험을 치러가는 날 아침이었다.
집을 나서던 남편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잔뜩 굳은 표정으로
“여보, 신경이 쓰여서 밤새 한 잠도 못 잤어.”
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시험에 꼭 합격하지 않아도 되니, 너무 마음 졸이지 말아요.’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텍이의 말에 덕선이는 활짝 웃으며 “그래 져도 괜찮아.”라고 했다. 덕선이는 택이의 든든한 바깥이었다. 누군가의 바깥이 되어준다는 것은 그를 아끼고 배려하며 그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원이 있을 때 바깥이 되는 원은 지름이 더 큰 원이다. 그렇듯, 누군가의 바깥이 되려면 자기 삶의 반경이 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이가 한 살 늘 때마다 삶의 반경을 늘려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살면서 나도 택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 이제 돈 안 벌어도 되지?”
“나, 늙어도 괜찮지?”
“나, 글 못 써도 되지?” 등등.
그럴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 나의 바깥이 되어준 사람이 어디 가족뿐이랴.
그러고 보니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대한 나의 첫 응답은 이런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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