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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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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7-27 15:58

신순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7살 보미는 미술대회에서 3등에 입상하여 상금으로 100달러 수표와 트로피를 받고
흥분되어 어쩔 줄 몰랐습니다.
“엄마, 저 이 돈으로 새로 나온 레고 사도 되죠? 약속했잖아요.”
“그래, 네가 열심히 해서 받은 상금이니 이번엔 너가 하고 싶은 것 하자. 돈이 남으면 동화책도
하나 사고.”
“와!”
보미는 100달러라는 돈이 새로 나온 레고도 사고 동화책도 살만큼 큰 돈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나면서 내년에는 더 잘해서 꼭 1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엄마랑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하면서 가끔 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상을 받고 보니 매일매일 연습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미에게 사 줄 동화책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던 엄마
얼굴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보미야, 여기서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앨버타 근처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구나.”
“그럼 동물들이 다치겠네요?”
“응,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일은 그 산불이 점점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번져서 그만 다들 급하게
피난을 갔대. 그 중에 한국인 아기 엄마가 너무 갑자기 불이 빠르게 다가와서 아무것도 없이
아기만 업고 도망나왔대. ”
“아기랑 아기 엄마는 안 다쳤어요?”

“그렇기는 한가 봐. 대피소로 가는 중인데 아기 기저귀도 분유도 유모차도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왔다고 도와 달라고 엄마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어.”
보미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코가 따가와지면서 콧구멍이 벌름거려졌습니다. 보통
엄마한테 혼나거나 슬픈 이야기를 읽어서 눈물이 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엄마, 그 아기는 그럼 분유도 못 먹고 있어요?”
“그렇겠지? 쓰던 거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라도 좀 나눠 달라고 하네.”
“엄마, 내 장난감이랑 과자를 보내 줄 수 있을까요?”
“글쎄, 거긴 지금 너무 멀어서 보내줄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네. 돈이라면 모를까.”
보미는 실망했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나 돈 있잖아요. 상금으로 받은 100달러요. 그걸로 아기에게 먹을 거랑 장난감을 사주면
되잖아요.”
 
“어머, 하지만 그건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새 레고 블록을 산다고 했잖니.”
“엄마, 난 이미 레고 블록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새 장난감 대신 아기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어요.”
“보미야…”
엄마는 사랑스러운 보미를 꼭 껴안고 우리 아가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면서 대견해했습니다.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도 될 일이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보미의 첫 기부를 의미
있게 하기 위해 그 상금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디로 돈을 기부해야 할지 여기저기 알아보던
엄마는 그 지역 신문사의 소개로 산불 피해 지원 모금단체에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잃은 아기들에게 먹을 것과 기저귀를 사달라고 보미가 직접 쓴 메모도 함께 보냈습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보미의 정성까지 해서 피해를 입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보미가 살아가다 만약 어렵고 힘든 상황에, 누군가 지금의 보미같은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함께 보냈습니다.
“보미야, 기부란 내게도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누는 것이란다. 우리 보미 참 장한
일을 했구나.”
그리고 보미엄마의 연락을 받았던 신문사는 보미의 기부를 기회삼아 독자 모금운동을 적극
주도하여, 마침내 6만달러가 넘는 큰 돈을 모아 산불피해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보미네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마중물이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앨버타 인근의 마을에 살던 지호 엄마는 남편이 일터에 나간 사이 산불이 크게 번져서
아직 갓난 아기인 지호와 함께 급하게 집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소방대원이 집집마다 지금 당장
그대로 빨리 나오라고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대피를 시켜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채 집을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시뻘건 불꽃이 건너편에
보였고, 불씨가 사방에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아기가방과 휴대폰만 들고 지호를 안은
채 구급대원들이 안내하는 차에 올라 대피소로 가는데 너무 무서워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채 여기저기서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뭔가 펑 터지는 소리
등에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혹시라도 지호한테 불꽃이라도 튈까봐 지호를 꼭 껴안고 가면서
당장 지호에게 먹일 분유와 갈아줄 기저귀가 걱정이었습니다. 상황을 보아하니 집에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대피소에 얼마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리 싸
둔 아기가방으로는 하루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호 엄마는 급한 마음에 그동안 아기를
키우면서 간혹 도움을 받았던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XX대피소로 아기랑 피난 가는 중인데 쓰던 거라도 좋으니 도와주세요. 분유, 분유병,
기저귀, 입던 옷, 유모차 아무거라도 좋아요.’
사실, 마음이 너무 다급해 올린 글이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식간에 안부를 묻는 댓글과 용기를 주는 댓글들이 주루룩 달렸고, 그중 근처에
사는 어떤 엄마들은 급한대로 아기용품을 꾸리고 주변에서 나눔을 받아 직접 대피소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피소에 도착하자 진짜 지호엄마를 찾아와 아픔을 함께
나누어 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앞으로 어떻게 하나 너무 막막했어요. 당장 내일 지호에게 먹일
분유도 없었는데…”
“이런 일은 누구에게 라도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용기를 내세요.”
그 뒤 간신히 만난 남편과 2개월이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생활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산불이 잡히고 유독가스가 모두 빠져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발표에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너무 기가 막히고
망연자실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웃들이 함께
아픔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디 사는지 누군지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하여 산불 피해자들을 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호야, 세상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거란다. “
지호의 엄마, 아빠는 혼자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이 불행하고 큰 일을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차 이겨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지호네가 도움을 받았 듯이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도움을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있기에, 이 세상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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