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멀리 가는 물

정성화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7-15 10:29

정성화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망초꽃이 핀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도시락을
쌌던 종이로 작은 배를 접어 강물에 띄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종이배는 신이 난 듯
제 몸을 흔들며 강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강은 스스로 멀리 가는 물이면서 멀리 데려다 주는
물이었다.
 
 문학 또한 멀리 가는 물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며 이 시대의 낮은
곳을 거쳐 흘러간다.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눈물이나 한숨, 절망까지 끌어안고 함께
흘러가는 강물, 흘러갈 힘을 잃거나 방향을 잃은 채 돌이나 모래톱에 기대어 있던
물줄기까지 업고 가는 강물이다. 그래서 나는 강이 좋다. 글을 쓰는 것이 그 물줄기에 섞여
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흐르고 흐르면서 스스로 깊어지는 강물, 묵언수행으로 더
맑아지는 강물과 어우러지는 게 좋아 서다.
 

 그러나 나는 자주 흐름을 멈춘 채 한 자리를 맴돌거나 물풀더미를 덮어쓴 채 강바닥을 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강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힘들 때마다 달려오던 것이며,
세상에 대한 적의敵意와 원망을 토로하던 곳, 그리고 꺾인 내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 이 강이야 말로 나를 일상적인 나로부터 가장 멀리 데려다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생각하며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은 마치 애인과 보내는 시간처럼 행복하다. 그런데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으름과 글쓰기에 대한 회의, 그리고 내 마음 속 문자판에 수시로 뜨는
"당신, 문학적 재능 없음."이란 이 메시지는 어찌하나.
 
 문학의 밑돌을 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사랑인 것 같다. 삶의 불량
스러움이나 냉소까지도 따뜻한 연민으로 감싸 안는다. 내가 문학에 끌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쓰는 사람" 이전에 "보고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 안과 밖의 압력을 조절하는 일이다. 앞서 가는 물줄기는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고, 내 등 뒤로 밀려오는 물줄기는 너무 위력적이라 두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벌벌 기어서 갈 수 없는 일, 그저 독하게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불현듯 "개똥벌레"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로 시작해서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로 끝나는 그 노래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설 추억 2024.02.26 (월)
먼동도 트기 전 미처 눈곱도 닦아내지 못한 아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나선 읍내 방앗간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떡시루에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온 함지를 진작부터 길게 늘어선 줄 끝에 내려놓으신다. 그리고 아이에게 징긋 눈짓 한번 주시곤 잰 걸음으로 난전으로 나가신다. 아이는 당연한 듯 제집에서 가져온 함지 곁에 꼭 붙어 선다. 한동안 차례를 놓치지 않고 함지를...
바들뫼 문철봉
삶을 위한 사유 2024.02.26 (월)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쉽게 넘어지고, 상처 받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나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직면한다. 종종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실존 적 두려움을 피해보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매일 아침 인류의 고통을 새롭게 마주할 뿐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고통과 재난을 등지고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존재의 한계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권은경
햇살 좋은 날에 2024.02.26 (월)
볕이 좋아 지팡이 짚고공원에 갔네전깃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새들처럼공원 벤치에 얼기 설기울긋불긋 빨래 줄에 널어 놓은 빨래처럼나이든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고 있다몸이 힘들고 고달파도마음이 행복하면무릎 통증 어지러움이야이기고도 남을 테지만푸르고 깊은 하늘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햇살이 눈부셔서 만은 아니다.봄은 개나리 나무 잎 새에서 오고겨울은 한낮에도 언 땅 사이 살얼음 사이에숨었다
전재민
신호등 약속 2024.02.21 (수)
나는 그동안 이 신호등 앞에서 몇 번이나 멈췄었을까꾸고 나서 벌써 잊은 꿈을 기억해 내려는 듯이정표 없는 갈림길에 홀로 서 있는 듯그런 표정으로 파란불만 기다리던 지난날이제는 달라지고 싶다차창에 낙하하는 수천 개의 빗방울에 고마워하자빗방울이 고마우면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게 없겠지누구라도 잡아두지만 때가 되면 보내는 신호등어디서 긁혔는지도 모르는 상처는 아프지 않아신호등처럼 보내면 떠나는 걸 알아도 아프지 않아품 안에서...
윤미숙
개똥 통장 2024.02.21 (수)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계좌가 하나 있다. 이 계좌 잔고의 정확한 액수는 사실 계좌주인 나도 잘 모른다. 그 액수를 도통 모르는 점이 실은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글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되실 것이다. 수시로 적립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며, 이 계좌를 개설한 지는 대략 삼년 정도가 되었다. 오늘부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이 비밀 통장은 이름하여 ‘개똥 통장’이라 한다. 누구든지 손쉽게 계좌를 열 수 있다. 그동안 나만 알고(최측근 언니들 몇...
김보배아이
  우리 부부는 아들 하나를 키웠고 손주가 3명 있다. 손주로는 쌍둥이 손녀에게 3년 아래로 손자가 하나 있다. 쌍둥이 손녀는 올해 14살이 되었고 손자는 6월이 되면 11살이 된다. 손녀들은 7학년까지는 학교 공부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게 지내더니 8학년에 올라가니 심각해진 모습이 보인다. 손자 녀석은 여전히 학교 공부하는 눈치가 전혀 안 보인다. 주간 동안 하루는 방과 후에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픽업하면서 손자에게...
김의원
대관령 양 떼 목장에 눈이 내린다영하 13도의 추위 속목장 언덕에 눈이 쌓이고돌풍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며뿌연 안개를 뿌린다뺨을 때리는 눈보라로 얼굴이 얼얼하다뒤로 돌아서서 바람을 막아보지만앞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전날 내린 비로 나뭇가지마다물방울이 얼어서 유리 구슬이 트리처럼 달리고세찬 바람에 꺾어진 가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아래를 보나 위를 보나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하얀 눈의 세계몸이 휘청 거리게 흔들어 대는...
조순배
  늙은 개와 70 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정관일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