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익지 않은 열매는 왜 푸를까?
답은 익지 않아서이다. 말장난하냐고? 아니, 진언이다. 무림의 고수에게 칼날의 광휘를
칼집 안에 감추고 내공을 다질 시간이 필요하듯, 열매들도 무르익기 전까지는 이파리와
비슷한 보호색으로 위장하여 본색을 감출 필요가 있다.
열매의 첫 번째 사명은 번식에 있으므로 씨가 여물기 전에 곤충이나 새에 먹혀서는 낭패다.
덩샤오핑의 대외 기조 정책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식물들에게는 초 짜 상식인 셈이다.
열매가 나무에 붙어 있는 모양을 착실着實이라 하고, 번지 점프하듯 과단성 있게 가지를
버리고 뛰어내리는 행위를 과감이라 한다. 착실하지 않고는 과감할 수 없는 법. 부모가 될
준비도 없이 애부터 덜컥 만드는 인간들아, 기다려라. 어른이 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열매는 왜 둥글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고
오세영 시인이 설파했다. 스스로 익어 떨어지기 전에도 그러나 이미 사과는 둥글다. 꽃 진
자리마다 조롱조롱 맺혀 있는 둥그스름한 열매들, 직선을 싫어하는 신의 취향이신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의 마찰이나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만 사과의 엉덩이가
둥글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무는 애초 알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함께 상자에 담겨 어깨를 부딪치며 기차를 타고 흔들흔들 종착역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각을 세워 폼을 잡아봤자 피차 상처 입고 멍이나 들고 말 것이다.
젖가슴과 엉덩이가 둥근 여자 몇이 과일가게 앞을 서성거린다. 둥근 것들이 맛있고 둥근
것들이 섹시해 보이는 것 주구에겐가 먹히고 싶어서일까. 열매의 최종 목표는 먹히는
것이다. 먹혀 씨를 퍼뜨리는 것이다. 둥글둥글 굴러가 둥글게 먹혀 세상을 만드는 일,
그렇게 누군가의 말음을 빼앗고 몸을 빌리는 일이야 말로 씨를 품은 것들의 황홀한 음모이고
세상을 존속시켜 온 숭고한 비의祕義일 것이다.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살라고, 너그럽게 내어
주고 원만하게 품으라고, 둥근 지구에 최적화된 열매들이 각지고 모난 인간들에게 삶의
양식을 환기시킨다. 미운 꽃이 없고 미운 열매가 없듯 미운 여자도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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