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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2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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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4-17 15:22

김유훈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오늘날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국가적인 과제는 “일자리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들의 일자리는 실로 심각하다.  내가 외국에 살며 보아도 이곳 역시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젊은이들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도 특별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갈 곳이 많지 않아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알바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방송에 4시간짜리 알바 두명 모집에 140명이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참 힘들겠구나” 하고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조기 퇴직자들이 해마다 수 없이 생겨나는 데 그들의 대부분은 자영업을 하겠다 하지만 몇 년 뒤에 7-80%는 결국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된다하니 그들의 장래가 걱정된다. 때문에 자영업 보다는 취업을 택하겠다 하나 그 길 역시 순탄치 않다. 심지어 퇴직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아파트 경비원인데 이곳 마저 가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하여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고급인력은 이 사회가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라 생각된다. 대신 기술 인력은 국경,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일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때문에 가능하면 대학공부보다 전문학교에서 기술 하나 더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만 68살, 1950년 1월 생이지만 내가 아직까지 현역으로 은퇴를 잊고 일하고 있다. 내 나이 50넘어 시작한 내 인생 의 2막 1장은 대형 트럭을 몰고 미국과 카나다 넓은 대륙을 달리는 트럭커이다. 이렇게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보니 트럭의 속도처럼 내 삶도 빠르게 달렸나 보다.   

나의 인생 1막은 한국에서 목회를 한 목사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아무리 힘들게 공부하였어도 부르는 곳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더우기 이민사회는 외국 땅에서 모두가 힘겹게 살아가야하는삶의 전쟁터이다. 아무리 한국과 카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목회의 경력이 있다하여도 현실은 냉냉할 뿐이다. 결국 조기에 퇴직한 실직자가 되어 이민 인생 2막에 도전을 하였다. 

 이민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인생 2막에 대한 도전이다. 나 역시 평범한 이민자로서 삶을 개척하며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교회속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마치 집에서 자란 사자라 하더라도 야생에 가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이민 사회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내가 택한 일은 택배였다. 열심히 소형 밴으로 물건들을 나르는 일이였다.  그리고 거래처는 각종 대형 도매상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 때마다 물건들은 가득 실은 트럭 운전자들에게 말을 걸며 물어 보았다.”너 한달 수입은 얼마냐?”하니 그들 대부분이 “만불”혹은 그 이상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후 나는 대형 1종 면허에 도전하였다. 4번 만에 면허를 땃어도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취직은 할 수 없었다. 이력서를 수 십 군데를 넣었고 돌아 다녔어도 취직이 안되어 나는 3년을 더 택배 일을 해야했다. 

그 후, 내가 알아낸 사실은 내 트럭을 구입하여 지입제로 회사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래서 중고 트럭을 구입하여 드디어 대형 트럭커가 되었다. 그러나 진짜 경력자가 되는 길은 더 험하고 멀었다. 내가 제대로 돈을 주고 연수 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경험하며 배워야 했다. 처음 2년 동안 나는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릴 수 없었다. “주택가에 잘못 들어가 전선줄 끊어놓기”, 주차장에서 소형차 들이받아 물어주기”, 주차를 잘 못해 옆에 트럭 들이받기” 등등 의 사고를 내면서 얻은 것은 내 손에 생긴 운전 실력이였다. 그 후 정말 거짓말 같이 수입이 생겼다. 나는 이 경험을 우리 이민자들에게 빨리 알리고 싶었다.  우리 끼리 경쟁하는 작은 가게 그만하고 넓은 대륙을 달리며 돈벌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때 마침 이민자 봉사회의 요청이 있어 “트럭커가 되는 길”이란 제목으로 2002년 첫 강좌를 하였다. 약 30명이 이 강좌에 참석하였고 그들이 다시 트럭커로서 활동하자 2004년 두번 째 강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글과 사연들이 신문에 많이 알려진 후 다시 요청이 많아 한인 신협의 후원으로 2014년 세번 째 강좌를 하였다. 그동안 80여명에게는 직접 강좌로 “트럭커가되는 길”을 알려 주었으며 간접적으로는 신문을 통해 트럭커의 삶을 알려왔다. 그 결과 지금 이곳 밴쿠버에는 현재 수 백 명의 우리 교민들이 트럭커로 고속도로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트럭을 시작한 이후 운전을 하는 동안 수 많은 경험들을 글 속에 담아 신문에 발표하여 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밴쿠버를   떠나 멀리 캘리포니아, 택사스, 노스 캐로나이나, 마이아미는 물론, 메인주 까지 미국과 카나다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듯이 다녔다. 즉 트럭운전은 여행하며 돈버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더 귀한 글감들을 준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그것도 4계절은   물론 하루의 24시간들의 변화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이른 새벽 사슴 가족들이 이슬맺친 풀을 먹는 평화로운 장면들, 로키산에서 만난 사슴들의 놀란 두 눈, 온타리오 산에서 만난 검은 곰이 연어를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며 내 트럭 옆을 지나는 순간 내가슴은 멈추었다. 한 겨울 콜로라 주 로키산맥의 산길에서 밤 하늘에 환히 비추이는 달빛에 내 헤드라이트가 별 소용이 없이 대낮 같았던 그 길 , 그리고 네바바 주 산길을 달리며 본 장면, 태양이 질 때 하늘을 붉게 물들인 모습은 정말 장관 등등은 글로서 표현을 다 할 수 없는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넘쳐나는 그 감정을 다 담아 둘 수 없어 트럭을 세울 때 마다 펜을 들어 써내려온 글들이 수필이 되었다.  

나는 수필이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이 트럭커에게 준 내 인생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17년 동안 트럭과 함께 지내는 동안 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며 그리고 글로 쓸 수 있음은 내인생 2막 2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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