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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별을 떠나 보내며…

김덕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11 16:3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옛날 어느 마을에 두 아내와 함께 사는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쪽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다른 편의 아내는 반대로 나이가 훨씬 적었다고 한다. 이 두 아내는 모두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사랑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연상의 아내는 나이 어린 남편과 산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 올 때마다 기회를 봐서 남편의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 둘씩 뽑기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 아내는 이와는 정 반대로, 웬일인지 큰 집에만 갔다오면 흰머리가 많아지는 남편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 젊은 아내도 역시 남편이 자기 집에 올 때마다 흰머리를 뽑기 시작했다. 불쌍하게도 이 남자는 이 집, 저 집으로 다니면서, 흰 머리카락, 검은 머리카락을 뽑히다가 나중에는 민머리가 되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자기 욕심일 때가 많다. 어느 단체나 집단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는 국가간에도 표면상으로는 서로 돕는다고 말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다사다난했던 생을 마감했다. 장례절차를 다 마치기까지 그의 일생을 재조명 하는 뉴스가 계속되었다. 소시적부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일관되게 살았다는 점에서 훌륭한 분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나에게 있어서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종필 총리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고리라고나 할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김시대(三金時代)의 주인공들이다. 이 중 누구의 이름을 거론하더라도 세 사람이 함께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역동의 세월을 살아 오면서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대변했던 방패였고, 정권을 획득한 사람들에게는 날선 창과 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분들이 있어서 우리 조국에 민주화가 이루어 질 수 있었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의 댓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본다.

불행한 시대에 오히려 위대한 인물이 빛을 발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일지는 몰라도, 그 혜택을 맛보게 된 후손들로서는 그분들의 열정적인 삶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우리에게 이런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김시대를 떠올릴 때마나 나에게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팔십년대 초는 갑작스런 정권교체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러웠고, 특별히 그 당시 대학생들은 자유와 평등을 꿈꾸며 군사정권에 맞설 때여서,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았다. 특별히 철학과라서 더 심했는지는 모르지만, 학교는 마치 데모를 하기 위해서 다니는 곳 이상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 때 마침 삼김이 연합해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 내고자 하는 명분을 내세울 때 국민들은 작은 희망을 보기 시작했고, 그 대의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데모대에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이 연합운동에 힘을 싫어 주고 싶었다. 모 당사에서 제공한 포니2에 전단지를 가득 싫고,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선전을 하고, 필요한 행정지원을 하기도 하며, 마치 구국운동에 참여하는 열사와도 같이 마음만은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 힘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그 당시 포니2는 이십년도 넘게 사용한 것이어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갑자기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 삼김은 결별을 선언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치의 복잡한 메카니즘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표면상으로 볼 때, 우리의 희망이 불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이해도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사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은 처음부터 믿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고, 정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말이다.

결국 삼김의 결별은 군사정권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그 만큼 늦춰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주화운동은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나뉘어져 또 다른 노선을 만들어 냈고, 굳게 잡았던 동지의 손은 서로를 향해서 손가락질 하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혹독한 댓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내 급우들의 처절한 투쟁의 모습을 아홉시 저녁뉴스를 통해서 보아야만 했고, 등하교 길은 마치 전쟁터에서 포탄을 피해다니는 병사들처럼 생사를 걸여야 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팔십 칠년도에는 한 학기동안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를 다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졸업학기가 되어서는 대부분의 급우들이 이미 학교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팔십 구년도에 대학을 졸업 하고, 학사장교로 군입대를 했을 때에도, 철책근무를 하지 않는 기간에는 언제 있을지 모를 데모진압작전을 위해서 병사들을 훈련시켜야만 했다.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군사정권이 삼김의 대립과 갈등을 예상하고,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 일을 앞에 두고도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대의를 이루지 못하는 한계를 미리 짐작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섬뜩한 일이고, 그 손에 놀아났다는 것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일 것이다.

두 여인이 한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자기 욕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했던 두 여인 사이에서 민머리가 되어버린 남자는 그 탐욕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결국 두 김은 모두 평생 꿈꾸어 오던 대통령이 되었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두 거물이 대의명분을 앞세우며 국민을 사랑한다고 외쳤지만, 자기 방식으로만 그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그 댓가를 국민이 고스란히 감당했어야만 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성과를 거둔 사람들에게는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럴듯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어도,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욕심을 내려 놓을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밤하늘의 별을 쳐다 본다. 몇 천년을 두고 수많은 별똥별들이 떨어졌어도,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유난히 빛나는 별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렇게 살아져 갈 인생인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처럼….

나는 “[나] 여야만 된다”는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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