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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5-10-23 08:3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얼마 전 한인타운에 볼일이 있어서 간 일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서 무심히 내다본 길에 어느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연세가 높으신 듯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종종걸음으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아주 힘들게 걷고 계셨다.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또 안쓰러워서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인타운까진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그 노부부는 아주 천천히 힘들게 걸어오고 계셨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먹고 있는데 마침 그 노부부가 같은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나름대로 단장을 하고 할머닌 화장도 곱게 하고 계셨다.

지나가시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혼잣말처럼 하신다.

"우리 할아버지가 97세나 됐는데 아주 정정하신데 난 걷지도 못해"

그 소리에 놀라 다시 쳐다보니 할아버진 할머니를 위해서 물도 날라다 주고 주문까지 다 하고 돈 계산도 직접 다하신다.

100세 가 내일모렌데 정말 저렇게 다니시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드시려고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신 그 노부부를 보면서 정말 이젠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요즈음은 주위에서 심심찮게 100세 사시는 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100수는 뉴스거리였다.

100세를 산다는 건 정말 축복받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수명이 갈수록 길어져서 앞으로 120세까지도 살 수 있다니 두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자꾸 줄어들고 노인들만 돌아다니는 거리를 상상만 해봐도 그리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다.

인간이 80 이 넘으면 이성적인 판단도 흐려지고 모든 기능이 약해지는데 그보다 20년을 어찌 내 힘으로 모든 걸 하면서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건강도 별문제 없고 재력도 뒷받침이 돼서 그때까지 산다 한들 무슨 큰 즐거움이 있을까,,,.

인간의 수명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 그 또한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이다.

모두가 건강하게 적당한 나이까지 살다가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 또한 내 마음대로 안 되니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고 나에게 다가올 그 어떤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다가올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올지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도 하고 현실적인 문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올해 들어서 유난히 주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분 또 편찮으신 분들이 많다.

아마 내 나이가 이젠 죽음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남편에게 내가 죽으면 어찌어찌하라고 말은 해놨지만 서로 기억력도 없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글로 써놔야겠다.

지금은 아직 생각에 머물러있는 일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또 이성적으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까지 산다면 그때 가서 마음이 변해서 더 살려고 발버둥 치고 삶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흉한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그것이 삶에 대한 연민이니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것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잘 죽을 수 있을까?

세상 끝날 웃으면서 잘 살다 갑니다. 하는 그런 죽음을 기대해보는 건 이룰 수 없는 꿈인지,,,.

 

오늘도 어느 교우의 장례미사에 다녀왔다.

영정사진에서 그분은 엷은 미소를 지으시고 계신 아주 점잖은 인상의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다.

어떤 삶을 사시고 어떤 병고를 치르시고 저렇게 누워 계신지 참 위대해 보인다.

삶이 만만친 않았을 텐데 또한 혼자서 가는 임종의 순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어떤 인생이든 그 순간을 다 겪어내고 저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 젊었을 때만 해도 80 이면 아주 장수 하는 편에 속하고 그 나이에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들 했다.

부모님도 그때쯤 돌아가셨고 나도 그 나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남은 귀한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야겠다.

열심히 운동도 해야 하고 뭔가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 또 봉사도 해야 하고 참 할 일이 많다.

아무도 친구 해줄 수 없는 그 외롭고 긴 여정에 주님이 함께해주신다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잠자리에 들면서 주님께 기도를 바친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저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베푸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행복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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