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바다와 산이 있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위슬러를 가는 길이 그렇다. 위슬러로 가는 길에 알리스 레이크(Alice Lake) 파크 캠핑 사이트가 있다.
아들 식구들을 따라 나는 가끔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캠핑 나들이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캠핑장마다 느끼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 숲속에 반듯반듯 캥핑 사이트가 들어앉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알리스 캠핑장은 어느 곳보다 더욱 애착이 갔다. 물론 그곳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소나무 숲 속에 옹기종기 사이트들이 들어 앉아있었고 시설이니 뭐니 한 것은 거기서 거기 다 비슷했지만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이트였다.
세살배기 손녀가 그곳에서 제일 잘 놀았기 때문이다. 아들 친구네도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제법 저희들끼리 잘 놀았다. 경사가 얕은 언덕을 중심으로 사이트가 삥 둘러 있어서 가운데는 자연스레 아이들의 놀이터를 이루었다.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이 자연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이리 저리 뛰면서 잘도 놀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울타리 안에 있는 놀이터였기 때문이었다.
숲속에 이런 자연의 놀이터는 알리스 파크의 매력이었다. 겨울 동안 내내 비가 내린 덕에 쌓일대로 쌓인 이끼는 땅위, 나무 등걸, 바위, 숲속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곳이 없다. 이끼의 나이는 알 수도 없다. 그런 이끼는 우기가 지나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면서 바삭 바삭 마른다. 마른 이끼는 자연스레 숲속에서 멋진 연두색 두꺼운 양탄자로 변한다. 두살 세 살 네 살 조무래기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당굴고 정말 잘들 놀아 주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조무래기들이 제 침대가 아니라고 잠투정들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이들을 위한 트레일러 영화관을 만들어 주었다. 트레일러 안에 불을 끄고 신테렐라 CD를 보여주며 “이것이 너희들 캠핑 무비 티아터야. 재미있게 봐라” 하고 어른들은 밖으로 나가 본 파이어 불에 둥글게 앉아 어른들의 재미를 보았고.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의 재미를 톡톡히 보며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모두들 꿈나라를 찾아 떠났다. 아침이면 키다리 소나무들 사이사이로 새벽을 알리는 햋살이 갈라져 캠핑장 이곳저곳을 부비고 내리 비추면 나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듣는다.
우리는 카나다에 정착을 퀘백에서 했다. 그리고 거기서 38년을 살았다. 내 나이의 반도 더 살은 곳이니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퀘백에서도 우리가 아직 젊었던 아들 나이에 캠핑을 다니곤 했다. 퀘백의 자연도 아름답다. BC의 침엽수가 남성적이라면 퀘백의 활엽수는 여성스럽다고 하고 싶다. 퀘백에서의 캠핑은 BC에서보다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나는 참으로 어이없게 캠핑을 싫어해서 남편의 마음을 가끔 편치 않게 했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캠핑 자체는 좋아했지만 퀘백에서는 가는 곳마다 여름이면 모기가 맹 활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퀘백 북쪽으로 올라 가면서 또 노바스코시아 쪽, 가는 곳마다 모기들 세상이었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모기 약을 꼭 챙겨야 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바르고 해도 나는 유난이 물것을 탔다. 블랙 플라이라는게 있다. 남편은 별로 물리지 않는데 고놈들은 왜 나만 무는지 아마도 전생에 무슨 왼수를 지었던 모양이다.
블랙플라이는 손목 목덜미, 귀 밑 같은 연한 살을 뚫고 피를 빨아 먹는다. 그 가려움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아프터 바이트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캠핑을 많이 못했다. 그런데 BC는 그 고약한 블랙 플라이도 없고 모기가 있어도 참을 만 한 정도다. 또 요즈음은 옛날보다 약들도 잘나오고 이 정도면 캠핑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에 젊은 아들 식구들과 때때로 캠핑을 즐긴다. 아이들이 노는 것만 봐도 엔죠이 만점이다. 남편과 못다한 캠핑의 즐거움을 이제 아들식구들과 다시 즐기고 있다. 먼저 간 사람이 캠핑의 맛을 더 터득하고 오라는 뜻이겠지.
아들 식구들을 따라 나는 가끔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캠핑 나들이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캠핑장마다 느끼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 숲속에 반듯반듯 캥핑 사이트가 들어앉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알리스 캠핑장은 어느 곳보다 더욱 애착이 갔다. 물론 그곳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소나무 숲 속에 옹기종기 사이트들이 들어 앉아있었고 시설이니 뭐니 한 것은 거기서 거기 다 비슷했지만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이트였다.
세살배기 손녀가 그곳에서 제일 잘 놀았기 때문이다. 아들 친구네도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제법 저희들끼리 잘 놀았다. 경사가 얕은 언덕을 중심으로 사이트가 삥 둘러 있어서 가운데는 자연스레 아이들의 놀이터를 이루었다.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이 자연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이리 저리 뛰면서 잘도 놀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울타리 안에 있는 놀이터였기 때문이었다.
숲속에 이런 자연의 놀이터는 알리스 파크의 매력이었다. 겨울 동안 내내 비가 내린 덕에 쌓일대로 쌓인 이끼는 땅위, 나무 등걸, 바위, 숲속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곳이 없다. 이끼의 나이는 알 수도 없다. 그런 이끼는 우기가 지나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면서 바삭 바삭 마른다. 마른 이끼는 자연스레 숲속에서 멋진 연두색 두꺼운 양탄자로 변한다. 두살 세 살 네 살 조무래기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당굴고 정말 잘들 놀아 주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조무래기들이 제 침대가 아니라고 잠투정들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이들을 위한 트레일러 영화관을 만들어 주었다. 트레일러 안에 불을 끄고 신테렐라 CD를 보여주며 “이것이 너희들 캠핑 무비 티아터야. 재미있게 봐라” 하고 어른들은 밖으로 나가 본 파이어 불에 둥글게 앉아 어른들의 재미를 보았고.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의 재미를 톡톡히 보며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모두들 꿈나라를 찾아 떠났다. 아침이면 키다리 소나무들 사이사이로 새벽을 알리는 햋살이 갈라져 캠핑장 이곳저곳을 부비고 내리 비추면 나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듣는다.
우리는 카나다에 정착을 퀘백에서 했다. 그리고 거기서 38년을 살았다. 내 나이의 반도 더 살은 곳이니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퀘백에서도 우리가 아직 젊었던 아들 나이에 캠핑을 다니곤 했다. 퀘백의 자연도 아름답다. BC의 침엽수가 남성적이라면 퀘백의 활엽수는 여성스럽다고 하고 싶다. 퀘백에서의 캠핑은 BC에서보다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나는 참으로 어이없게 캠핑을 싫어해서 남편의 마음을 가끔 편치 않게 했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캠핑 자체는 좋아했지만 퀘백에서는 가는 곳마다 여름이면 모기가 맹 활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퀘백 북쪽으로 올라 가면서 또 노바스코시아 쪽, 가는 곳마다 모기들 세상이었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모기 약을 꼭 챙겨야 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바르고 해도 나는 유난이 물것을 탔다. 블랙 플라이라는게 있다. 남편은 별로 물리지 않는데 고놈들은 왜 나만 무는지 아마도 전생에 무슨 왼수를 지었던 모양이다.
블랙플라이는 손목 목덜미, 귀 밑 같은 연한 살을 뚫고 피를 빨아 먹는다. 그 가려움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아프터 바이트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캠핑을 많이 못했다. 그런데 BC는 그 고약한 블랙 플라이도 없고 모기가 있어도 참을 만 한 정도다. 또 요즈음은 옛날보다 약들도 잘나오고 이 정도면 캠핑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에 젊은 아들 식구들과 때때로 캠핑을 즐긴다. 아이들이 노는 것만 봐도 엔죠이 만점이다. 남편과 못다한 캠핑의 즐거움을 이제 아들식구들과 다시 즐기고 있다. 먼저 간 사람이 캠핑의 맛을 더 터득하고 오라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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