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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아청 박혜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8-29 11:13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나는 성격이 조금 급한 편이라 일이 있으면 빨리 해야 하고 궁금하면 바로 해결하기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생물문제가 안 풀려서 답답해하다가 마침 생물 선생님이 당직이신 것을 알았다. 그 즉시 찾아가 여쭈어 보았는데 고맙게도 큰 종이에 상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 그런데 그것이 예비고사 시험의 첫 번째 문제로 나왔다. ‘원래 내가 시험 문제 찍기 도사이기는 하지만 ….’ 역시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바로 해결해야 하는 좋은 것 같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라고 사람들이 할 정도였다. 급한 성격 탓에 하는 일의 종류도 많았고 양도 남들 보다 많았다. 체구는 작은데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작은 거인” 이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 다녔다.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당연히 빠른 것에 익숙하고 느린 것에는 낯설었던 것 같다. 바쁜 것은 때로 생활에 활력을 주지만 너무 바쁘고 시간에 쫓길 때는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민 초기에는 한국에서의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습관들이 답답함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도로의 주행 속도도 한국 보다 느리고, 전화를 잘 못 걸어서 끊어도 바로 통화음이 안 나오고, 차고 문도 왜 이리 천천히 열리고 닫히는지…. 하지만 이곳에서의 이민 경력이 쌓이다 보니, 오히려 한국에 가면 ‘빨리빨리’가 일 처리를 할 때는 좋지만 어떤 때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격이 급하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는 것이 많다.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느긋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일을 시키면 바로 바로 하지 않으니까 성격 급한 내가 결국은 하게 된다. 그런데 주위에서 들어보면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느긋한 남편들이 성격 급한 아내들을 집의 가구까지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슈퍼맨으로 만들곤 한다.

 


          우리의 생활을 음악적으로 생각 해 보았다. 빠른 템포의 곡만이 있다면 처음에는 경쾌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불안감도 느끼게 될 것이다. 느린 템포의 곡도 같이 들음으로써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빠르고 느린 템포의 음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음악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템포의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의 삶은 한국에서 부터 농담으로 ‘죽을 시간도 없다’라고 하면서 앞 만 보고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 왔다. 또 일을 붙들면 끝까지 해야 하는 습관도 있다. 그래서 몸에 과부하가 왔는지 얼마 전에는 병이 나서 고생을 했었다. 그것이 쉬라는 신호인 것 같아 일을 조금 줄이고 일을 느긋하게 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느린 것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지내다 보니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전에는 공원을 걸어도 속도를 내어 걷다보니 걷는 거리와 시간에만 집중하였다. 하지만 이젠 천천히 즐기면서 걷다 보니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전 부터 주위에서 흐르고 있었던 물소리도 크게 들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으로 부터 자연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에는 ‘빨리빨리’ 대신 느림의 미학도 간간이 느껴본다. 하지만 ‘느리다’는 것이 무기력하고 게으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 정성을 다 하며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빠른 것이 지나치면 초조감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어떤 때는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것이 있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구상하되 미리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도 중요하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 가는 시점에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는 것이 심신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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