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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2022.12.05 (월)
나 아주 어렸을 적에 한 번수수밭 가에서 놀다가수숫대 위에 쉬는 잠자리 한 마리 잡아서발버둥질 치는 가녀린 꽁지에강아지풀* 한 줄기 꽂아주고는휙ㅡ 먼 하늘로 날려 보낸 적 있었네.오랜 세월 흘러가고이따금 찾아와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시간 저 너머의 기억 하나ㅡ그날그 필사의 발버둥질 아, 나 정말로옛날의 그 수수밭 가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강아지풀: foxtail: 볏과의 한해살이 풀   Remorseful         ...
안봉자
감 잡았다 2022.12.05 (월)
  오랜만에 알버타에 사는 언니와 얼굴을 보고 통화를 했다. 언니와 나는 20년 전, 밴쿠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웃고, 울면서 외로운 타지 땅에서 아름다운 기억을 쌓았었다. 언니는 참 재밌는 사람이다. 웃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언니의 얼굴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다. 본인은 늙었다고 환한 대낮에도 내가 선물해준 핑크색 극세사 잠옷을 입고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감을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야! 라고...
허지수
떨어진 꽃잎에 하고 싶은 말화려한 꽃 시절이 가고 나면부호 같은 꽃잎만 땅 위에 뒹굴고죽비에 떨어져 땅에 누운 꽃잎은뒤 늦은 깨달음처럼 말이 없네추적거리는 찬 비라도 내리면더 할 나위 없는 적요. 막막한 탄식그래도 비껴가는 뉘엿한 석양이 있어한 무더기 노을 이라도 뿌려 준다면...부끄러움 모르던 한창 시절걷어 제낀 앞섶마저 거침 없었고화려한 속살, 원색으로 뽐내던 그대땅속에 내린 뿌리가 있음으로하늘 향해 꽃 피울 수 있음을 잊은...
조규남
             “ 토마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뭘 그리 보고 있어? “ 하우스 키퍼 리사가 짜증내며 내게 던지는 말이었다. 아침 회의 중 리사 말을 놓쳤다. 리사에게 미안해하며 살짝 윙크했다. 리사도 그런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곳은 알라스카 하이웨이였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알라스카 하이웨이가  펼쳐져 있다. 난 매일 아침 그곳을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의 운수를 점치곤...
정효봉
미운 정 고운 정 2022.11.28 (월)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요사한 것싫다 싫다 하던 것이자꾸만 스치다 보면어느새 정이 들어 있기 마련인 것을 듣기 싫다 짜증 부리면서어느새 몸에 배어자기 것이 되어 있는 잔소리들도이제 교훈으로 남아새 삶의 지표 위에 서 있질 않던 가 어느 날엔가 내 책갈피에 꽂히기 시작한무심했던 한 장의 연서도이제 날마다 기다림의 기쁨으로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맘을 치장하고 있는 일 오늘도 꽃잎처럼 날아올 그대 향기에저무는 햇살 함께...
강숙려
도마소리 2022.11.28 (월)
  함성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다각다각' 하는 소리가 끼어들고 있었다. 도마 소리였다. 잠결에 듣는 소리는 가까이 들리는 듯하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래서 아련하다. 윗동네의 예배당 종소리나 이른 아침 '딸랑딸랑' 들려오던 두부장수의 종소리, 도마 소리가 그러했다.어머니는 소리로 먼저 다가오는 분이었다. 펌프질을 하는 소리, 쌀 씻는 소리, 그릇을 챙기는 소리 등. 그 중 도마소리는 잠을 더 자라고 토닥여주는 소리였다. 나는 그...
정성화
옥양목 숫 눈 길에걸쭉한 이야기 포개 진다맨발을 가지런히 부려 놓은비둘기의 시린 이야기와꽃무늬 천방지축 흩어 놓은강아지의 속 없는 이야기그 옆을 따라나선 또 하나시름에 눌린 신발의 문양만 찍어 놓고내 것이라 우기는 헛헛한 얘기들직립하지 못한 나의 비틀거림이으레 흔적에 배어 있어 매무새를 들키고무엇을 남기느냐 보다어떻게 걸을 것인가에 대한 공허한 외침눈 위에 찍어내는 행간에 마음을 내 거니또 다른 내가 하얗게...
한부연
소똥 2022.11.21 (월)
따뜻한 방에 있다 갑자기 밖에 나와서 그런지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더군다나 땅에 떨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했다. 요즈음은 시골길도 흙이라곤 찾아 볼수 없이 온통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소는 간혹 불만을 터뜨렸다.“전에는 아무 곳에나 똥을 싸도 괜찮았는데, 이제 정해진 곳에만 싸야 하니. 원! 하지만 버릇이 돼서 밖에만 나오면……, 으! 오늘은 더 못 참겠어. 끙! 아, 시원 타!”어쨌든 나는 그 충격으로...
이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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