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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명, 나여기(羅麗基)

권순욱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8-01 15:40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에버그린 봄 학기가 끝나고 그다음 주부터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새로운 모임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처음으로 붙여진 별명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약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스스로를 재조명해보는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저마다 지니고 있었던 별명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우젠(독일영감), 영감, 관돔마, 마다리, 키신저 등 ……

 

 나에게도 어린 시절에 붙여진 별명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별명은 내 초등학교 일 학년 시절 우리 담임선생님(黃永夏)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나의 주위를 온통 시끄럽게 한 별난 별명이었습니다.

우리 연배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8.15 광복을 맞은 지 불과 몇 년이 못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교과서 중에는 음악에 관한 책이 별도로 없었습니다. 또 음악 시간이 되면 학교에 단 하나밖에 없는 풍금(오르간)을 각 학급의 필요에 따라 이동해 가면서 사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 즘에 배운 노래 중에 숨바꼭질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 그 노래가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를 맴돌곤 합니다. 노래 가사는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눈 감기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웃지 마라 잡힌다.

 

아무 소리 말아라

나 여기 선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노래 때문에 나의 별명이 만들어지게 된 사실입니다. 그때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교생이 하루를 정하여 원족(소풍)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보물찾기와 학년별 대표들이 나와서 한판의 노래자랑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노래자랑 시간이었습니다. 일 학년 전체를 대표해서 담임선생님은 나를 지명 하게 되었고, 내가 부른 노래가 바로 위에 적은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전체학교 노래자랑에서 제일 어린 학년인 나에게 일등 상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급생 누나와 형들이 부른 노래들(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 등등 …) 에 비하면 내가 부른 숨바꼭질 정도는 수준에도 못 미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래였음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노래심사위원들(교장, 교감, 교무주임)께서 어린것이 뒷짐을 지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애써 부른 한 꼬마의 용기를 가상히 여기어 봐 준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나는 그 노래자랑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날부터였습니다. 등굣길에서 만난 상급생 누나들이 자기가 차지해야 할 대상을 꼬마가 차지했다는 실패감에 못마땅하여 나를 부르기를 “야! 나여기 인마!"였으며, 다른 학생들도 그것이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일주일도 못되어 학교 전체에서 나는 이름 대신 “나여기”로 불리게 되었고, 급기야는 학교 선생님들까지고 출석시간에 부르는 권순욱 외에는 거의가 “나여기"로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학교를 졸업하고서야 마침내 나의 별명으로부터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세월 따라 나는 서울로 옮겨와 삼촌 집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의 별명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져만 갔습니다. 우리 삼촌 친구인 당시 덕수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셨던 분의 존함이 정여기(鄭麗基) 씨였습니다. 삼촌 식구들을 통해 내 초등학교 시절의 별명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또다시 나여기(羅麗基)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일이 있었던 후로부터 정여기(鄭麗基) 선생님은 나여기(羅麗基)인 나를 이름이 같다고 친동생처럼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의 학창시절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잊지 못할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불렀던 숨바꼭질의 노래 가사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는 가운데 나름 데로의 자화상을 그려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 교회에 출석하게 된 나는 비교적 하나님에 대하여 일찍 알게 되었지만, 나의 삶 속에는 하나님과 너무나도 많은 숨바꼭질의 연속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를 헤아려 보면 때로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엄청나게 괴리되었던 삶의 부끄러움 때문에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필요할 때마다 찾으셨으나 나는 그때마다 요리조리 하나님의 눈길을 피해 다닌 세월이 너무나도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면서 이제부터는 되도록이면 이와 같은 숨바꼭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이사야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 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는 뜨거운 낯을 아버지께로 향하고 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좋으니 지난 주일 담임 목사님의 설교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기운 생명력 있는 나무로 자라 담을 넘는 가지가 되어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여유를 보여 줄 수는 없을까요? 가깝게는 우리 집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셀 가족에게로, 그리고 우리 에버그린 아카데미 어르신들과 봉사자들에게까지 확산 될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되길 소원합니다.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말씀이 나에게 더는 생소하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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