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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수필] 북한에서 온 여인

김난호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4-18 11:59

 작지만 강한 인상의 여인이 온천에 들어 왔다. 주변을 살피는 여인의 첫 인상이 거리낌이 없었다. 여인네가 흔히 갖는 특유의 망설임도 없이 맘에 드는 자리에 가 철썩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느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그 남자가 애벌 씻기를 안하고 탕에 들어오는 것이 못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겐 참으로 대담한 첫 인사였다. 나는 그녀가 흥미로워졌다.

 우리 일행은 캘리포니아 샌루이스를 여행 중 이었다. 유명한 온천을 찾아 들어간 곳에서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나에게 준 눈짓에 나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여인의 눈은 자꾸 말하고 싶어 했다. 인사로 한 마디 정도는 물어 봐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이 근처에 살아요?” 내가 물었다. “네”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말하기 시작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북한 청진을 탈출하였다. 밤새 강을 헤엄쳐 건너 중국에 도착하였다. 같이 탈출 하던 열다섯 일행 중 죽거나 중국 당국에 잡혀 아홉을 잃었다. 중국에서 잡히면 다시 북한으로 보내져 모두 총살을 다했다. 중국에 도착 한 후 당국의 눈을 피해 팔 년을 숨어 살았다. 드디어 망명의 기회가 왔을 때 한국과 미국 중 그녀는 미국을 택했고 샌루이스 오비스포로 왔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음식을보고 이런 세상이 지구상에 있는 지도 몰랐다 한다. 북한에서는 밀가루나 강냉이가루 조차 모자라 배고팠던 그 참상은 아무도 모를 거라 했다. 죽어도 그 세상에서 나가리라 결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족이 그리워졌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있는가.’ 라며 비공식 연결을 하여 북한의 가족과 전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중개자를 통해 사만 불이란 거금을 주고 드디어 가족을 탈출 시켰다. 가족은 미국이 아닌 한국을 택했다. 십 년이 넘게 지난 후에 가족을 만났을 때 어머니도 그녀도 서로가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긴장감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적대감이 가끔 과격한 언어를 투이어 나오게 하였다. 그녀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 때 그녀의 얼굴에서 진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목숨을 내 놓고 탈출 했고 지금 그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지옥을 경험 했을 것이고 수많은 저승사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에 대해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 하느님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듣던 미국 사람들이 우리의 표정을 보고 무척 궁금해 하였다. 마침 그 곳에 온천 하러 오신 한국 분들과 우리 일행을 합하면 열 명이 넘는 숫자였다. 우리 모두가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에 빠져 든 것을 보고 일상적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한 것 같았다. 때때로 우리는 영어로 해석 해 주며 같이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이야기 일행이 되었다. 그들도 같이 탈출 하는 듯 우리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그녀는 그 좌중을 사로잡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말하고 싶어 했다. 우리 모두가 마지막으로 궁금해 했던 것은 과연 그녀가 중국과 이곳 미국에서 어떻게 자금을 마련했느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물어도 끝끝내 자신의 직업은 말하지 않았다.

 조그만 체구의 여인네가 작은 가슴에 담겨진 인생역정은 몇 겁에 걸친 고통만큼 힘들었으리라. 철갑옷을 두른 채 선택받고 세상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수없이 뉴스에서 들어왔던 흔한 탈출 이야기지만 나는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하여 들으면서 실감 할 수 있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확률이 높은 나의 동족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친정어머니께서는 육이오 사변 때 북한에서 내려 오셨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고난을 헤쳐 나온 그녀에 대해 안쓰러운 맘 보다는 대단한 여인이라는 놀라움과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강한 힘이 여인이 아닌 착각을 갖게 하였다. 우리와 이야기 중에도 그녀의 눈빛은 무척 강했고 누구도 허튼 소리하면 크게 혼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새로이 찾은 그녀의 삶이 앞으로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작별을 하였다. 여행 중 내내 그녀의 인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울지도 웃지도 감탄사도 없었던 그녀의 대화였다. 조금 후 자기는 아직도 깨끗한 처녀라고 뒤돌아서는 우리를 향해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무슨 뜻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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