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병은 고질병인가요?

이재경 원장 kidsvillage@shaw.ca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여자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번쯤은 앓고 지나가는 병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아이는 가볍게, 어떤 아이는 아주 심각하게…
 

 아주 심각하게 공주 병을 앓고 있는 깜찍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드레스를 교복처럼 입고 오면서 머리에는 조잡한 공주 왕관을 매일 쓰고 가방은 신데렐라, 신발은 백설공주, 독서 코너에 있는 공주 책은 몽땅 자기 거라며 안고 다닙니다.
드레스는 여름용 하늘하늘~ 망사 천으로 된 것인데 할로윈 때 카스튬으로 한 벌 얻어 입은 겁니다. 그때부터 몇 개월을 교복처럼 매일 입고 옵니다.
 
 

 엄마는 그것만 입겠다고 고집부리는 아이와 싸우기를 포기하고 날씨가 추운 날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습니다.드레스 아래 바지를 또 입는 겁니다. 두껍게 껴입은 윗도리와 바지 때문에 때깔스럽지 못한 스타일도 상관 없습니다. 드레스만 입으면 되니깐요. 어느 날 코스코엘 갔는데 눈에 익은 아주 하늘색 망사 드레스가 두꺼운 코트 아래로 눈에 뛰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그 아이였습니다. 그 공주님은 드레스가 하나 밖에 없는 통실통실한 거지공주(?)였습니다.
 

 백설공주가 왕자님과 뽀뽀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며 엄마랑 하는 뽀뽀도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징그럽게 다가온다며…. 밥 먹을 때도 상상의 왕자님을 곁에 모시고 있어 밥까지 퍼놓아야 하고 잠잘 때도 무어라 구시렁거리며 상상의 왕자님과 주거니 받거니 한다고..

 어떤 땐 쟤 귀신하고 대화하는 것 아닌가 싶어 등골이 오싹해 진다고… "야!하지마~고만해!” 하고 소리치고 싶다고. 우리 딸 심각한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비정상 아니냐고? 자기가 진짜로 공주인줄 안다고. 그 공주님은 주무실 때도 왕관은 쓰고 주무신다고.

 이래저래 엄마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니 지금 아니면 언제 사람들 눈치 안보고 드레스 입고 왕관 쓰고 돌아 다니겠냐, 웬만하면 드레스 하나 더 사주면 어떠냐고 슬쩍 바람도 넣었습니다.

 초등학교 올라가면 학교에 입고 가라고 빌어도 안 입고 갈 터이니. 공주가 가득한 알파벳 책, 숫자 쓰기 책, 색칠하기 책 등등 더 많이 사주라고 한 술 더 떴습니다. 공주 그리기, 공주 오리기, 공주 이름 알아 맞추기, 공주 이름 따라 쓰기, 공주 노래 부르기, 공주 목걸이 만들기, 공주 놀이하기.....
 

 공주와 연결해서 할 수 있는 재미난 놀이 학습들이 무한대입니다. 문자와 연결하고 그것도 한글과 영어 두 개 모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수 개념과 연결하고 상상력을 자극한 역할 놀이와 연결하고. 상상 놀이는 아이들의 어휘 발달과 사회성 발달 그리고 창의력 발달에 무척 좋은 놀이입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통해서 무섭게 더 잘 배웁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샬라샬라샤랄라~” 이 노래를 유난히 즐겨 부르던 조금 심각하게 공주병을 앓았던 꼬마 아가씨는 지금 4학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어 읽기 쓰기, 영어는 물론이고 불어까지도 잘 소화하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물론 공주병은 자연 치유되었습니다. 모든 다른 여자 아이들처럼.

 제 경험으로 여자 아이 치고 공주병 한번 가볍게든 심각하게든 안 앓고 지나가는 아이 는 거의 없지 않나 싶습니다. 혹 어릴 때 가볍게 치르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라도 필히 앓는 병 같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이에도 가끔 공주병(?) 증세를 나타내기도 하는 저는 아마도 어릴 때 못 치르고 자라지 않았나 의심스럽습니다. 팔순 파파할머니 친정 엄마께 물어봐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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