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급증하는 치매가 보건 의료 최대 이슈다. 전 세계적으로 3초당 한 명의 치매 환자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치매라는 용어 대신에 인지증(認知症)라는 말을 쓰는데, 현재 인지증 환자가 650만명 정도다. 내년에는 65세 이상에서 다섯 중 한 명이 인지증 환자가 된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약 90만명이다. 노인 인구 열 명 중 한 명꼴이다. 아직 일본보다 젊은 덕인지, 인구 비율을 감안해도 그 규모가 3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20년 뒤면, 우리나라 고령 인구 비율이 일본을 앞지른다고 하니, 그 사이 쏟아져 나올 치매를 생각하면 앞날이 막막해진다. 게다가 치매는 마땅한 치료제도 없고, 뚜렷한 예방법도 없다. 초고령 사회에서 치매는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 돼간다.
알츠하이머병 치매가 발견된 지 117년이 지났지만, 현대 의학은 치매와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뇌 속에 쌓여서 치매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물질이 베타 아밀로이드 또는 타우 단백질인데, 이런 ‘치매 단백질’에 달라붙은 항체를 만들어 제거하면 치매가 사라지겠거니 생각했다. 일부 제거에 성공했으나, 이미 감소한 인지 기능은 그다지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효과를 가진 약물이 치매 신약 ‘레켐비’다. 투여 비용이 한 달에 400만원가량 든다. 레켐비는 효과 한계와 고비용으로 치매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에 요원하다.
치매 범인을 한 방에 잡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자, 뇌의학자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범인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가 속속 나왔다. 폐 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서 치매 발생률이 더 높다. 숨을 내쉴 때 처음 1초 동안 공기를 내뿜는 양이 적은 사람은 치매 위험이 크다. 호흡 능력과 폐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하여 치매가 잘 온다는 얘기다.
혈당 조절이 안 되는 환자, 씹고 삼키는 구강 기능이 떨어진 사람, 충분한 수면 시간을 못 갖는 수면 장애 등이 치매와 연관 있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도 신체 활동 부족으로 치매 발병 위험이 크다. 머리 쓰는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하지만, 앉아서 고스톱 오래 치면, 치매를 키우는 꼴이 된다. 흡연과 과음, 저(低)교육, 청력 감소, 우울증, 사회적 고립 등도 치매와 연결된다. 이제 치매는 단순한 퇴행성 뇌 질환이 아니고, 전신 복합 질환의 일환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배경 속에 나온 것이 ‘치매 예방을 위한 다(多)인자 개입 요법’(MINT)이다. 일본 국립 노화장수연구센터는 2019년부터 치매 예방 다인자 개입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시행 중이다. 65~84세 치매 고위험 고령자를 대상으로 18개월 동안 생활 습관병 관리, 운동 및 영양 지도, 구강 관리, 인지 기능 훈련 등 다인자 개입을 실시하는 것이다. 운동은 일주일에 한 번 90분간, 근육 트레이닝, 유산소 운동, 머리 쓰며 몸을 움직이는 게임을 한다. 태블릿 PC를 이용한 머리 쓰기는 한 번에 30분씩 일주일에 4번을 시킨다. 손목에는 활동량 측정기도 달았다.
그 결과가 석 달 전에 일본서 발표됐는데, 다인자 개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지 기능이 좋아지거나, 저하가 억제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했더니 인지 기능 개선뿐만 아니라, 혈압도 좋아지고, 보행 속도도 빨라지고, 근육량이 늘었다. 치매 안 걸리려고 여러 가지를 노력했더니, 노쇠도 늦춰지고, 삶이 젊어진 것이다. 이런 게 회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은 다인자 개입이 치매 재앙에서 벗어나는 희망이라며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미래 삶에 대한 목표나 동기 부여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은퇴를 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그럼 죽을 때까지 치매 안 걸리고 살아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건 어떤가. 일상을 다인자 개입 프로그램처럼 살아보시라. 새로운 학습을 하고, 줄기차게 움직이고, 부지런히 구강 관리를 하고, 손과 뇌를 연결하는 악기를 배우고, 충분한 단백질과 야채 식사를 하고, 근육을 단련해보시라. 치매 안 걸리려고 살았더니, 인생이 풍요로워졌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설사 걸리더라도, 쌓아 놓은 그 풍성함이 어디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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