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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너는 최소한을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12-17 00:00

 

첫 아이가 두 살 때 쯤 이었으니 아이 생기면서 전업 주부로 산 지 이년 째 쯤입니다. 슬슬 답답해하는 걸 눈치챈 남편이 하루는 플룻을 사다 주며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라도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기에 정말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플룻교실에 등록을 했습니다.

18개월에서야 걷기 시작해서 이제 겨우 타박타박 걷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지하철 갈아타며 놀이방이 함께 있는 문화센터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하철 타려면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애 안고 가방 세 개 -내 책가방, 기저귀 가방, 플룻 가방- 메고, 접이식 유모차까지 들고 지하철 갈아 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음에도 배우러 다니는 게 즐거워 힘든 줄 모르고 다녔습니다. 게다가 엄마가 레슨 받는 동안 아이는 부설 놀이방에서 노래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며 즐겁게 놀아서 참 좋았습니다.

6개월이 끝나는 날이 마침 연말의 주말이었습니다. 마지막 수업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가니, 놀이방도 마지막 날이라고 그 동안 만든 작품들을 한 상자씩 들려 보내며, 더하여 선물과 놀이방 앨범을 함께 건네 받았습니다. 짐이 많아 가져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가 만든 거라 다 소중하고, 또 아빠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다 받아 들고 나왔습니다.

날은 슬슬 저물어 오는데 아침부터 내린 눈으로 도심의 교통은 그야말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짐에 아이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데리러 와 주지 않겠나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연말에 주말에 눈길 퇴근시간인데 길이 보통 막히겠냐고, 데리러 오는 시간이면 집에 오겠다면서, 지하철 타서 전화하면 내리는 시간 맞춰 역에 나오겠답니다.

눈 오는 날 도심 교통 사정을 익히 아는 터라 남편 말에 일리가 있어 알았다고 말하고는 지하철을 타러 갔습니다.
추위에 눈길을 종종 걸어 지하철을 타서 몸이 녹으니 아이가 금새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아이를 안고 기진맥진해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방금 기차 탔어. 30분쯤 더 갈 거야.”
“알았어”

약속한 역에 내려서 밖으로 나갔는데 차가 안보입니다.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자다가 깬 아이는 추워서 떨고. 택시 대기 줄 끝까지 가봐도 차는 안보입니다.
혹시나 반대쪽에 서있나 해서 건너가 봐도 없고. 전화를 하니, 길이 막혀서 아직 못 왔다고, 거의 다 왔답니다.

다 왔다는 차를 눈 속에 15분을 더 기다려서야 탔습니다. 기다리면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해서 차 타서는 절정에 올랐습니다. 시간 맞춰 나오지 않은 남편의 무성의에, 추운 데서 기다릴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해 주지 않은 무배려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미안하다는 남편의 말에 대꾸도 안하며 원망을 가득 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니 몸도 녹고 펄펄 나던 화도 한 풀 꺾이며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생각했습니다. 먼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집에서 언제 출발했는지. 전화 받고 바로 튀어 나왔답니다, 눈길이라 막힐 거라서. 차 타고 바로 전화해줬으면 더 일찍 출발했을걸.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남편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니, 막히는 차 안에서 애태웠을 것, 길 막힐까 봐 터무니없이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길에서 시간 다 보내고, 짜증나면서도 일분이라도 빨리 오려고 얼마나 긴장하며 운전했을 지, 그런데 보자마자 화부터 냈으니 본인도 참 황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차 타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안 했고, 그래도 차 탔냐고 먼저 전화한 건 그 사람인데요. 눈 오는 연말 토요일인데 전화하고 바로 나왔어도 못 오는 건 당연하지…

짐이 많지만 않았어도, 지하철이 만원만 아니었어도, 아이가 잠들지만 않았어도, 날씨만 춥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겁니다. 정직하게 따져 보면 화가 난 본래 이유는 남편이 늦게 나오기 이전에 나 자신, 즉 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애 데리고 이렇게 힘들게 집에 돌아가는데 남편은 집에서 편하게 놀고 있다가 늦게서야 출발했을 거라고 가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일이 자신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과가 기대한 대로 나오지 않거나 상대가 자신이 기대한 대로 행동해 주지 않을 때 실망하고 원망하며, 그건 그들이 고의적이고, 무책임하고, 성의가 없고,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은 노력했는데 상대가 부족하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의도적이라고 가정할 때 실망하고 분노하는 게 당연합니다. 

사람에게는 긍정적 착각(positive illusion)이라는 내적 정신 기제가 있어 대체로 자신이 잘했고 잘났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사람들보다 덜 우울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했고, 앞으로도 잘 될 거라는 낙관적 믿음을 넘어서 상대방을 의심하며 고의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고 원망하면, 그 원망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 우울해지고 타인에게로 향할 때 분노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울이 높으면 분노가 낮고, 분노가 높으면 우울이 낮은 편인데, 흥미로운 것은 북미 이민자들 대상의 한 연구에서 한국인들의 우울과 분노가 둘 다 높게 나온 결과가 보고되어 주의를 끈 적이 있습니다. 타인을 원망할 때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울해지지도 분노하지도 않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비록 내 기대와는 달랐어도 당신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고. 나도 최선을 다했고 상대도 최선 다했다고 믿는다고.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라고(I am ok, You ar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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