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구수한 막걸리를 맛있게 빚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도예가 도암 김정홍 선생 댁의 막걸리 맛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소문이 자자하다.
만드는 사람 따로 마시는 사람 따로 있는 이 집 막걸리는 정확히 말하면 부인 김상순씨가 빚는 술이지만 사람들은 꼭 ‘도암 선생 막걸리’ 라고 부른다. 솔직히 도암 선생은 술 빚는 항아리를 2층으로 옮기는 일 외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건만 사람들이 굳이 이 술을 ‘도암 선생 막걸리’라고 부르는 이유.
내 집을 찾아 드는 사람, 특히 남편을 찾아 오는 누구에게라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는 김상순씨에게 ‘덜’ 미안한 마음으로 막걸리 한 사발 먹고 싶은 음흉한 아부성 발언 아닐까. 그녀에게 김정홍 선생 이름보다 당당한 핑계거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은 도자기를 배우는 사람, 구경하러 오는 사람, 한국문화 공부하러 온 외국인들까지, 아랫목에서 누렇누렇 익어가는 막걸리 냄새가 풍길 즈음이면 귀신처럼 알고 찾아 드는 사람들로 문고리가 닳을 지경이다.
▲빚는 사람 따로, 마시는 사람 따로! 이것이‘도암 선생댁 막걸리’의 특징. 일주일에 한번씩 고두밥을 쪄야 하는 김상순씨의 고충도 만만치 않을텐데 사람 가리지 않고 막걸리 익은 날 찾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몽땅 내 놓는다. 게다가 뚝딱 만들어 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맛은 또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한 동이 거덜내는데 일조를 한다. 잘 익은 막걸리 촬영이 있던 날 운 좋게 당첨된 사람은 모영상(왼쪽) 씨. 그 곁에는 도예가 도암 김정홍 선생. |
‘오는 사람 얼싸 안고, 가는 사람 붙잡는다’는 것이 사랑하는 남편의 인생관이라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160cm에 45kg 될 듯 말 듯 자그마한 체구에 한 솥씩 고두밥 쪄서 며칠에 걸쳐 정성껏 빚은 막걸리를 개봉순간 한 입에 ‘톡’ 털어 넣는 객(客)들이 어찌 이쁘기만 할까. 성깔 까칠한 기자라면 물기 덜 짠 행주로 죄 없는 식탁을 수 십 번도 더 닦으며 눈치코치 팍팍 던지며 심통을 부릴 텐데, 지금까지 그 집 가서 ‘눈치 술, 눈치 밥’ 얻어 먹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같은 여자로 아내로서 이런 그녀를 보면 존경스럽다. 이민 직후 언젠가 그녀 남편 도암 선생, 부부 싸움하고 미션으로 가출했다가 은행카드 사용법 몰라서 고픈 배 움켜쥐고 자진귀가 해서 무릎 꿇었다던가. 만약, 그때 더듬거리는 영어로 은행카드 사용법을 배워서 배고픔 면하고 가출에 성공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아마도 지금쯤 그날의 ‘무식’이 곧 ‘행운’이었던 걸 무지 감사히 여기며, 그날 가출미수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남몰래 가슴 쓸어 내리고 있을지도……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똑같은 미소로, 특별히 잘 해주려 노력하기보다 집안에 있는 그대로 ‘다’ 내놓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해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녀.
하지만 아무리 착해도 여자는 여자, 아내인 그도 사람이다. 보다 보다 궁금해서 참을 수 없던 어느 날 대 놓고 물어 본 적이 있다.
“아니, 찾아 온 사람 술 주는 것도 주는 거지만 허구한날 막걸리 담그느라 힘들고, 그 술에 안주 만들어 대느라 더 힘들고 돈 들고…… 도암 선생님 밉지 않아요?” 했더니, 대답대신 예의 그 소리 없는 미소 한번 빙긋 띠곤 또 그만이다.
얼마 전 도암 선생이 외교부로부터 큰 상을 받던 날, 설마 오늘같이 기쁜 날엔 그이도 여느 아낙처럼 약간은 흥분되고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상상하며, ‘축하’를 빙자해 그 집 현관 문을 벌컥 열었다. 문짝을 부술 듯 씩씩하게 열어 젖힌 문 소리에 도자기 만들던 자세 그대로 고개 들어 빙긋 웃을 뿐 또 말없이 찻물을 올린다. 하긴 그렇게 많이 들락거리는 사람 오갈 때마다 ‘반갑다’ ‘어서 오시라’, ‘안녕히 가시라’…… 인사하려면 장정이라도 목청부터 남아 나질 않을 테지만, 다섯 시간을 쉼 없이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도 간간히 미소 짓다가 안주가 식으면 다시 보글보글 데워 올려 놓으며 지청구 한마디 거들지 않는다. 수다쟁이 기자는 그날 두 손 + 두 발까지 세트로 들고 무릎 꿇었다.
혹여 그 집을 가거덜랑 이런 그녀를 보고 스스로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하진 말도록. 사람 좋아하기로 따지면 세상에서 그녀 남편 도암 선생을 따를 자가 없지만, 속 정(情)에서는 또 그녀를 따를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속을 미처 못 보고 ‘팽’ 삐친 사람, 자기만 손해다.
이런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높은 산 꼭대기에서 나지막하게 몸을 낮추고 서 있는 작은 소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모진 산 바람과 따가운 햇살에도 꿋꿋하게 버틴 내공이 느껴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시사철 푸른 솔 향기를 ‘솔솔’ 풍기며 등산객들에게 그늘 막을 제공하며 말없이 서 있는……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 재료 쌀 2kg(1되=1.6kg), 누룩 1봉지 200g(쌀 양의 10% 사용, 한인 마트에서 판매), 이스트 1ts, 물은 쌀 양의 150%인 3ℓ.
■ 만드는 법
① 찜통에 순면 천을 두르고 쌀 2kg을 1시간 가량 찐다.
② 찐 밥을 주걱으로 저어가며 식혀 고두밥을 만든다.
③ 이스트와 누룩 가루를 손으로 비벼 고두밥과 고루 섞어 준다.
④ 흰 면 자루에 3의 재료를 넣고 물(쌀 양의 150%인 3ℓ)을 재료가 잠기도록 붓는다.
⑤ 자루 속에 손을 넣어 물 속에서 다시 한번 쌀과 누룩을 잘 섞는다.
⑥ 내용 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끝을 꽁꽁 묶는다.
⑦ 전기 장판을 깔고 덮어 16도 정도의 따뜻함을 유지, 1주일 가량 그대로 둔다.
⑧ 노랗게 술이 익으면 중앙에 막대기를 놓고 자루를 걸쳐 놓으면 완성.
■ 김상순 주부의 한마디!
Cooking Point
① 아파트 실내 온도 정도인 23~25℃에서는 3~4일 정도면 발효가 됩니다.
② 누룩과 고두밥을 담는 통을 충분히 살균하지 않으면 세균이 번식되어 술 맛이 변할 우려가 있어요.
③ 젖병 살균제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에틸알코올로 소독하면 좋아요.
④ 술을 담그면 탄산가스가 발생하므로 완전히 밀봉하지 않아야 해요.
Cooking Tips
① 약간 단맛을 원하면 쌀 대신 찹쌀을 이용해도 좋아요. 집에서 만든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16도 정도입니다.
② 가정에서 5∼7일 발효시킨 후 2~3주 침전시켜 윗부분만 뜨면 청주가 돼요.
③ 막걸리만 만들면 여러 가지 전통주는 이를 응용해서 만들 수 있어요.
④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가 되고, 소주에 과실을 넣으면 과실주가 돼요.
⑤ 막걸리를 따뜻하게 해서 알코올을 없앤 후 식사 때 곁들이면 소화를 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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