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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안의 피그말리온 효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9-27 00:00

‘피그말리온 효과’ 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이 말은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과의 사랑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자 조각상이 살아나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우리의 기대가 행동변화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런 “기대” “꿈”을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두지 않고 펼쳐 보일 수 있는 철저히 안정된 공간. 이 세상에 그런 곳은 존재할까?

MP3 플레이어를 들으며 거리를 걷고,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문자를 보내고, 많은 시간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쉬는 시간이면 TV를 켜고 라디오를 듣고… 미디어의 홍수 속에 헤엄치는 나. 아무 소음도 안 들리는 고요함이 어색한 나. 오랜만에 찾게 되는 여유는 지루하기까지 한 나.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도전하고, 바쁘게 살며,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내 모습. 이건 정작 나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기계매체들과 의사소통하는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어떤지,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는지 정작 온전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블로그, 싸이월드 등을 통해 나의 기분을 표출하고, 온라인상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도 하지만, 그 공간은 남의 눈에서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여 답답하다. 세상의 많은 규칙 속에,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사회를 두고 세계적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는 “사회는 눈치쟁이 양성소”라고 말한다. 그렇게 남의 눈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롭게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공간은 내가 나를 찾고 사랑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 그리고 그곳은 일기장이다.

어릴 적 ‘매일 일기쓰기’라는 정말 하기 싫었던 여름 방학 숙제. 그 당시에는 일기가 하루 일과의 나열과 함께 ‘참 즐거운 하루였다’라고 끝나는 글의 묶음이었지만, 지금의 일기장은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어디 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일기장이 나에겐 너무나 든든한 벗이다. 일기장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불평불만을 가득 적어내도, 우스운 희망을 적어내도 내가 덮은 그 자리, 다시 펼쳐낸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다. 나의 옛 기억들은 때론 나를 부끄럽게도, 설레게도 한다. 내가 얼마나 변했고 어떻게 세상을 배우고 있는지 보여준다. 시간에 쫓기는 생활 속에서 그렇게 잠시라도 나를 쏟아내고 나면 가끔 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볼펜을 들고 일기장을 펴고 나만의 생각과 나의 꿈을 적어본다. 예쁜 색연필을 쥐고, 아니 아무 필기도구라면 어떠한가, 나의 감정을 종이에 분출한다.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없게 너무나 바쁜 세상 속에서 단 5분만의 끼적임이라도 충분하다. 맞춤법이 틀려도, 어색한 단어들의 열거라도 나를 적어낼 수 있는 공간.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기장.

파르륵 넘겨지는 나의 일기장은 나의 젊음을 비추며 순간순간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또 꿈꾸는 많은 것들이 비밀스럽게 숨쉬고 있는 일기장. 그 일기장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해 본다. 나의 일기장 첫 장에 적어놓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소개하며,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일기를 쓰는 한 순간의 시간에 영원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 천국을 보라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의 시간에 영원을 보라

                 - 윌리엄 블레이크

김윤하 인턴기자 (SFU 신방과 4년) yka22@sfu.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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