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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9-17 00:00

‘호텔 밴쿠버’ 레스토랑 요리사 이보은씨

◇ 호텔 밴쿠버 레스토랑의 동료들과 상사로부터‘5년 이내 부주방장이 될 사람’이라는 극찬을 듣고 있는 이보은씨는 나이보다 성숙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일터의 작은 것들을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우리 교민 2세들이 밴쿠버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에 많이 진출하기를 바라는 그녀는 레스토랑 취업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줄 생각이다.

취업 문이 바늘구멍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와 이를 열수 있는 열쇠가 있기 마련. 한국인을 만나기가 특히 어려운 업종 가운데 하나가 밴쿠버의 호텔 레스토랑이다. 그동안 요리학교를 다니는 한인들이 드물었던 현상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진출이 쉽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또한 그 길로 이끌어 줄 튼튼한 선배나 취업정보가 없었던 점도 있다. 이런 척박한 취업환경의 바늘구멍을 뚫은 이보은씨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 현재 호텔 밴쿠버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 작은 일부터 찾아서 하자

이보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유학을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요리학교 진학을 원했지만 ‘유학 가서 무슨 요리냐’고 말리는 아버지의 반대로 ‘CDIC’에서 음향효과를 전공하고 졸업 직후 결혼, 요리사의 꿈은 멀어지는가 했다. 그러나 시댁이 밴쿠버에서 제법 큰 규모의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었고 주방에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요리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는 며느리를 눈여겨 본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운타운 ‘Dubralle Culiuary School’에서 프랑스 요리를 전공 하게 되고, 이후 제빵제과 과정과 와인 프로그램까지 마쳤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요리를 잘 하는 것과 취업은 또 별개의 문제. 하루에도 몇 번씩 칼을 팽개치고 싶은 갈등을 이겨내고, 한국인으로 처음 호텔 밴쿠버 레스토랑에 입성하기 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때로는 창고에 쌓아 둔 재료들을 발로 차며 운 적도 많았다는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요리사도 일반 취업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요리사의 취업 열쇠도 ‘적극성’

요리사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조리솜씨가 취업의 열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보은씨는 뜻밖에 ‘적극성’이 관건이라는 것. 뿐만아니라 한국적인 교육방식으로 자란 우리 2세 요리사들의 취업은, 입사 이후 외국인들에 비해 승진의 기회가 훨씬 많다는 긍정적인 전망까지 전한다.   
“우리 정서가 선생님이나 윗 사람을 공경하고 도와 드리는 것은 당연한 도리인 반면, 외국인들은 그 대상이 부모든 선생님이든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은 절대 하지 않죠. 이것이 우리가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요리를 가르칠 때 외국학생들은 불이 세고 물이 넘쳐도 그건 선생님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눈치껏 불을 조절해드리고 면을 끓이면 기름기를 걷어내는 등의 단순한 작업을 도와드리면 그 애들은 이해 못해요”
26명 가운데 25명의 학생이 ‘내 일이 아닌’것으로 무관심 한 일에 팔 걷고 나선 학생을 예뻐하지 않을 스승이 있을까.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란 인종은 달라도 대체로 비슷한 법. ‘메트로폴리탄’호텔 부주방장이던 교수는 케이터링 업체와 쿠킹 스튜디오, 그가 참여하는 모든 강좌에 동참시키는 것은 물론 훗날 독립적으로 세운 회사에 정식 요리사로 채용해서 일을 가르쳤다.

◆ 스파르타식 레스토랑 그러나…

이씨가 요리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독립해 처음으로 취업을 한 레스토랑은 ‘Le Crocodile’. 매년 밴쿠버 최고의 레스토랑 랭킹 3위 이내에 올라오는 이곳은, 요리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꿈인 곳. 비록 입사가 힘들긴 해도 방법은 존재한다.  
“이력서 들고 주방장을 찾아갔어요. 나를 고용해 달라가 아니라 이력서라도 한번 봐 달라고, 혹시 고용할 기회가 있으면 나를 불러달라며 당당하게 소개를 했더니 갑자기 ‘너 오늘 저녁 시간 있어?’ 하더군요. ‘칼 갈아서 복장 갖춰 입고 밤에 다시 와’하더군요.”
일주일 동안 주방장은 특별한 지시없이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너의 실력을 보이라’는 무언의 질문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
“갑자기 내 실력을 프라이팬을 돌리거나 어메이징 소스를 만들어 들이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면서 남들이 놓치는 일, 무관심한 부분을 찾아서 챙겼죠.”
이곳에서도 ‘작은 것부터 잘하자’는 원칙대로, 남들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1주일째 되던 날 주방장은 ‘널 채용하고 싶다’고 프러포즈를 했다.

◆ 행복 끝, 고생 시작!

“프랑스인 사장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어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꼬집고 집어 뜯기 일수였죠. 남자들은 가장 뜨거운 불 앞에서 푸쉬업 90개를 해야 했구요. 사람들이 설마 밴쿠버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그래도 참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밴쿠버에서 레스토랑 ‘Le Crocodile’ 경력은 취업의 보증수표. 경력만 쌓이면 어느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내도 합격이 보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주방장의 특별한 스파르타식 트레이닝을 거치며 닦은 실력 때문이기도 하고, 인지도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밴쿠버의 많은 요리사들이 ‘미쉘 제이콥’과 일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길 만큼 뛰어난 요리사인 그에게서 배운 것도 많았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더욱 완벽한 맛을 위해 직원들을 가르치는 그의 교육방식이 이후 어떤 어려움에도 버틸 힘을 길러주었다. 1년을 채운 다음 사직서를 제출했다. 
“연봉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고 ‘어딜 가고 싶냐’ 물었어요. 호텔 밴쿠버 주방장이 내 친구인데 전화 해 줄까’ 묻더군요. 해주면 고맙고… 했더니 다음날 주방장이 저희 레스토랑으로 찾아왔어요.”

◆ 적극적인 자세, 무조건 발로 뛸 것

인터뷰는 서류와 함께 간단한 1차 인터뷰, 부주방장, 주방장, 호텔 매니저, 호텔 제너럴 매니저 등 7차 면접을 거쳐야 했다. 추천을 받은 덕분에 5차에서 끝난 인터뷰 내용은 계열사와 호텔의 역사, 배경, 대표자 이름, 앞으로 3년, 5년, 10년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등 요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기업마다 채용하는 방식이 천양지차다. 그러나 호텔 밴쿠버 550명 직원가운데 300명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보은씨. 상사로부터 ‘5년 내 호텔 부 주방장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듣고 있는 이씨가 말하는 취업 비결은 “이력서를 들고 직접 찾아가 나를 알릴 것,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취업준비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것, 남들이 무관심한 작은 일에 성실하기” 등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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