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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이어스 공원 폭포 아래서...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8-09 00:00

金耳公園瀑布下
Goden Ears 공원 폭포아래서

五月綠陰多 오월의 녹음방초 푸짐하니
溪山待我來 아름다운 산과 시내 나를 기다리네
峽深山更綠 골짜기 좁고 깊어 산은 더욱 푸르른데
湫鳴白日雷 대낮에도 계곡물은 우뢰소리 울리누나
谷靜無人跡 인적없는 계곡은 정적이 감도는데
漲瀑雪浪在 물이 불은 폭포 하나 백설물결 뿐이로다
物我兩忘處 자연과 하나되어 나 자신도 잊었나니
何論是與非 세상의 시시비비 가려서 무엇 하랴

丁亥五月十七日與三人探金耳公園而暫歇金瀑下有感梅軒偶吟
정해년 5월17일 세 사람과 함께 Golden Ears 공원을 찾아가 Gold River 폭포아래 쉬면서 느낀바 있어 매헌은 우연히 읊다.


95년 가을 밴쿠버 한인신용조합 별실인 모임방을 빌려 필자가 감히 정통한학 연찬을 목표로 송산서당(松山書堂)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미친 놈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던 것을 필자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를 국어로 전용하는 서양문명의 본거지 캐나다 이민생활에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서당이 될 말이냐라는 비웃음도 샀고, 영어 배우기도 바쁜 처지에 한국에서도 배우지 않는 한문 한자가 왠 말이냐며 석 달도 못 버티고 문닫을 것이 뻔한 오발탄이라는 질책성 전화도 있었다. 그리고 어려서 조부님이 가르치는 서당에서 중 2 때까지 한학을 배운 적이 있지만 그 이후 철저히 영어와 수학을 배우며 대학까지 지속된 학창시절은 물론이요, 그 이후 지난 30년 가까이 한학과 철저히 벽을 쌓아온 필자로서도 사서삼경을 비롯한 경전의 원전강독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모한 만용이요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이 나를 주저하게 하였다. 하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결국은 나로 하여금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개원하게 하였다. 당시 이민 23년차의 중년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그간의 서양문명 적응의 지친 이민생활에서 적체된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때로는 노장을 비롯한 동양고전을 읽을 때 알 수 없는 삶의 혜안을 찾기 시작했고, 이것이 곧 나 개인 한 사람이 가진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내동댕이쳐 버렸던 동양고전학에 대한 강한 향수로 직결되었다면 이해가 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고전(Classics)이란 결국 인류가 시도한 모든 문화 문명이 시행착오를 일으키거나 실패로 끝났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기준점(bench mark)이 아닐까.  우리 동아시아 문명은 19세기 서구열강의 서세동점에 자극을 받고 지난 1세기 동안 서양을 배우며 따라잡기 위해 우리고유의 사상이나 철학을 철저하게 팽개친 자기배신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서양의 물질문명을 완전히 흡수하고 경제대국의 풍요를 자랑하지만 과연 우리의 내면에 간직한 알맹이란 무엇일까. 행여 서양의 가치관이 만고의 진리인양 착각하고 달려온 선무당은 아니었는지, 유불선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관용의 대동사상대신 배타적인 기독교신앙이 잘못 주입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지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적어도 자기정체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동양 고전 사상은 무시할 수 없는 우리들의 영원한 정신적 유산인 것이다.

우리가 이역만리 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가면서 전통적 가치 중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서양의 가치관으로 대체해야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로 남아 있어야 주류사회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영혼마저 진부한 것으로 치부하여 완전히 버리고 그들과 철저히 동화된다 한들 결코 주류사회의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복합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을 표방하는 캐나다에서는 동양사상을 당당한 가치로 내세우며 자부심을 가질 때 우리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동양고전을 이미 번역된 서물을 통해 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서물이란 게 작자의 제한된 한문실력 위에서 이룩한 하나의 해설인 이상 원전은 원전으로 이해될 때 그 무궁한 해석의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를 아무리 실력있는 영문학자가 번역했다 한들 원작 영문으로 읽는 것보다 맛이나 격이 떨어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더구나 한문은 그 특유한 간결성(terseness)과 수사법 및 운문의 특성상 원전으로 읽는 감칠 맛은 오직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나오는 감초요, 초콜릿보다 맛있는 감칠맛이 나는 것이 한문이라면 이해가 갈까. 하지만 그 길은 멀고 험하다. 속성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시나브로 읽고 쓰고 외우며 그 뜻을 음미하는 것이 한학이라는 고전이다. 하지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고전에 사용되는 한자의 숫자란 것도 수만 자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용한자 2000자에서 3000자 정도만 더 추가하면 충분히 원전을 읽을 수 있으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은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송산서당에 그간 한학을 배우겠다고 원서를 제출한 학생들의 숫자는 150명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대학 논어 중용 맹자 사서를 완독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시를 짓고 묵향이 물씬 풍기는 고문서를 읽어낼 수 있는 한학은 초학들에겐 에베레스트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오늘 시작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매력있는 학문인 것이다.  이민생활에서 무료한 시간을 잡기에 허송하는 대신 한학을 한번 시작해보라. 그 속에 진리가 있고 성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두보나 이백 백낙천 같은 대시인들과 원전으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필자는 9월에 다시 사서삼경 입문반 과정인 명심보감 강좌를 개설하고 뜻있는 호학지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밴쿠버의 호학지사들이여, 송산서당으로 오라. 우리 모두 함께 배우며 아름다운 이민생활의 꽃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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