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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n Peak 정상에 앉아 사색하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6-21 00:00

登麟峯坐思
Lynn Peak 정상에 올라 사색함

乾坤爲吾居 하늘과 땅을 나의 집으로 삼으니
何論是與非 시비를 가려서 무엇하는가.
生也本澹泊 사람이 태어날땐 담박했으나
外物作萬機 바깥 사물에 온갖 번뇌를 짓는다
浮生空自忙 덧없는 인생들은 부질없이 바쁘나
靑山定不違 청산은 어긋남 없이 그대로 있다.
得意看仙區 뜻을 얻어 신선의 경치를 보나니
虛虛却忘歸 마음은 허허로워 하산할줄 모르네

丁亥陽四月一日與四人登麟峯看雲霧飛翔而有懷梅軒賦

정해년 4월1일 네사람과 함께 Lynn Peak에 올라 운무가 비상하는 것을 보고 소회가 있어 매헌은 시를 짓다.

산을 가면 무식해진다. 세상 물정에 점점 어둡고, 돈 버는 일에도 관심이 없어지고, 그동안 자기가 좋아했던 모든 취향이나 취미가 시시해 보이기 시작하고, 오로지 맑은 물, 푸른 숲, 산새들의 지저귐, 피어오르는 물안개, 흩어지는 구름과 차아(嵯峨)한 산맥들이 친구처럼 다가오는 애틋한 정이 영혼의 심연으로부터 피어나니 세상사에 무관심하니 하는 말이다. 결국 유식하다거나 무식하다는 것은 무얼 많이 알고 무얼 제대로 모르고 하는 지적 수준을 형량하는 표현일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문명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시시각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생활양식이나 경제활동 방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가련하기까지 하다. 그 많은 지식 정보의 홍수속에 허우적거리며 유리한 정보나 지식을 선점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야하고, 글로벌시대를 맞아 기존의 모든 경제활동 방식이 뿌리째 도전을 받고 흔들리는 와중이라 자신의 생활수단을 방어하는 '살아남기' 작전에 혈안이 되어 날마다 전전긍긍해야 하는 하루살이 생활을 면할 수 없다. 유식하다거나 똑똑하다는 것은 이런 생존경쟁에서 눈치 빠르게 적응하며 그 묘수를 잽싸게 터득하는 재주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굴리며, 매일같이 주지육림의 향연을 벌리며, 나아가서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막강한 재부를 축적하는 실력이 인생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경제활동을 등한히 할 수는 없다. 돈도 벌 수있으면 벌어야 하고 돈도 쓸 수 있으면 쓰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돈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정신적 풍요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항상 집사람한테 돈 안 벌리는 일만 쫓아다닌다고 바가지를 긁히거나, 지인들로부터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다고 핀잔을 들을 때도 있는 대책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그 좋은 S그룹의 직장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32년 전 이민을 나섰으니 출세와 돈하고는 인연이 없는 결정을 20대에 했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에 와서도 변변한 직장 하나 갖지 못하고 구멍가게만 한 30년한 셈이니 그런 혹평이나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떤 조직밑에서 상사의 눈치 보며 바둥거리며 사는 머슴이 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또 내가 읽고 싶은 책이나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내 인생 지고의 가치로 삼고 내린 결정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나는 틈만 나면 자연을 즐기며 살았다. 북미대륙은 알래스카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안 가본 곳이 없는 여행을 즐겼으며, 한국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낚시를 원도 한도 없이 해보기도 하였으니 너무 노는 것만 밝힌 한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열심히 독서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닥치는 대로 읽으며 채워지지 않는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독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시작한 산행에서 나는 책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새로운 통찰을 얻고 마음이 평화를 얻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뿌듯한 위안을 얻는다.
 
사람은 질박한 면이 있어야 한다. 너무 닳아 빠지거나 똑똑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들을 대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을 느낀다. 인생은 문(文)과 질(質)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는 지성과 야성을 겸하여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양과 음,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노자적 통찰을 가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 문제를 논어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바탕이 꾸밈을 누르면 무댓보로 거칠고 꾸밈이 바탕을 누르면 너무 사변적으로 흐르고 만다. 꾸밈과 바탕이 잘 어울려야만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결국 조화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사람은 바탕만 일방적으로 가져도 안되고 지식이나 꾸밈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채근담에도 이런 말이 있다.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오지산골에 은거하며 돈과 명예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지녀야 하며, 반대로 오지 산골에 은거하면서 자연만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도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배포와 경륜을 가져야 한다." (居軒冕之中 不可無山林的氣味, 處林泉之下 須要懷廊廟的經綸)

이 채근담의 구절을 읽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몇 년 전에 작고한 캐나다가 낳은 위대한 정치가요 철인 학자이며 야외스포츠맨인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Pierre Elliot Trudeau) 캐나다 총리이다. 그는 지성과 야성을 완벽하게 구비한 캐나다 최대의 멋쟁이 지식인으로 오늘도 그는 흠숭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의사당에서 예리한 통찰과 언변으로 캐나다의 정치무대를 풍미했던 철인정치가임과 동시에 자연을 즐기는 야성의 사나이였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총리직을 초개같이 내던지고 야인으로 돌아가 카누를 짊어지고 단독으로 며칠 오지를 탐험할 수 있는 실력은 프로를 뺨칠 정도이다. 그는 결코 문약하지 않았기에 캐나다가 영연방의 그늘에 벗어난 독립헌법의 기초작업을 완수했고 이민의 문호를 과감하게 활짝 개방한 용기와 경륜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산행은 바로 이런 야성적이고 질박한 인성함양에 더없이 좋은 마음 수련의 장을 제공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과 혜안을 기를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다. 세상사람들이여, 우리 모두 빵에만 연연하지 말자. 좀 무식하게 살면 어떤가. 유식(有識)의 세계에서 무식(無識)의 세계로 진입하면 참된 마음의 평화가 깃들며 마음의 여유까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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