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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영어 창의적 글쓰기 대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6-21 00:00

제 2회 영어 창의적 글쓰기 대회를 돌아보며

캐나다 거주 한국계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자유롭게 글로 표현되고 격려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 글쓰기 사회(Creative Writing for Children Society)’가 주최하고 밴쿠버 조선일보 및 많은 한인단체들이 후원한 ‘제 2회 영어 창의적 글쓰기 대회’가 28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마무리됐다: 초등학교 부문(~Gr.7)에서 21명, 중고등학교(Gr.8~) 부문에서 7명. 초등학교 부분이 수적으로 훨씬 많았다. 캐나다 작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전원이 90점 이상을 받아야 1,2,3 등의 수상자격이 주어지는데, 중고등학교 부문에서는 해당자가 없어 가작 및 명예상에 그쳤다.

참가 지역과 수준과 연령은 다양했다. 빅토리아에서 화이트락까지, 그리고 웨스트 밴쿠버에서 에보츠포드에 이르기까지 B.C. 전역에서 참가했고, 이곳에서 태어난 한국 후손에서부터 영어권에 갓 온 ESL 학생에 이르기까지 영어 수준도 다양했으며, 학년도 Gr.3~Gr.11까지 연령 차가 컸다. 그야말로, 본 대회의 취지에 걸맞게, 굳이 수상만을 목적에 둔 출전이 아니라 캐나다 작가들로부터 자신의 글을 점검 받고 도전 받기 위한 순수한 학생들이 정성을 들여 작품을 썼고, 다듬고, 보내왔다. 수상여부를 떠나 자신의 아이디어로, 다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2,000자 수준의 영어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참가자들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작품 검토 후, 붙었건 떨어졌건, 작가들의 서명과 점수를 포함한 평가지를 보내주는 것은, 이들의 정성에 대한 작가들의 답례이며,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이다. 떨어진 사실만으로 상심해 작가들의 평 조차 읽지 않은 어리석은 학생들이 없기를 바란다. 작년의 낙선 경험을 마음속 깊이 새긴 학생들이 올해에 수상된 경우들이 없지 않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잘 쓰는지 아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아는 것이다.

한 명의 작가로, 또는 심사위원간의 의견차를 조정하는 조정자로, 이번 대회의 출전작-특히 낙선작들을 검토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간추려, 삶에서의 ‘창의성’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참된 영어 학습에 관심이 많은 독자이자 학부모들을 위해 나누고 싶다. 다시 한번 이번 대회의 참가 학생들과 학부형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북미에서 최초로 실시하는 의미 있는 영어 창작 대회이니 만큼 앞으로도 더욱 많은 성원을 바란다.

첫째, 창의성을 가르치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창의적 글쓰기 워크샵을 수년간 진행해오면서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만나왔다. 단순히 주입식, 암기식 영어학습이 아니라 ‘끄집어 내는 교육’ ‘자발적인 교육’을 시도하기 위해서이다.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의 상담에 임하지만, 불과 8학년만 돼도 ‘창의성’의 흔적은 찾기도 힘들고 또한 말랑말랑한 창의성 교육도 쉽지 않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왜 이들의 머리는 굳어져야만 하는 걸까? 하다못해 8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곧 에세이로 통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어느 에세이도 창의적 글쓰기의 한 장르일 뿐이다. 창의가 포함되지 않는 글은 없다. 경험에 미루어, 창의성은, 혹은 창의적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는 3~5학년까지다. 혹 영재과에 속하는 아이들은 2학년 때부터 가능했던 것 같다. 이때가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글쓰기를 배울 때이다. 알파벳을 마치고 이제 문장의 구성으로 들어갈 때다. 이 시기에 창의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후 6-7학년 이후에는 더욱 세련된 글을 표현할 수 있고, 생각의 폭과 깊이가 만들어지고, 갈등 해결을 할 수 있는 창의력을 갖추게 된다. 다시 8학년으로 돌아가서, 호르몬이 과다분비되는 8학년 이상이 되면 글의 훈수가 필요 없어지고 오직 습작만이 관건이 된다. 혼자의 힘으로 서는, 그런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글을 쓰게 돼야 한다.

둘째, 창의성도 개발 돼 빛이 난다는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창의성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개인간 창의성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삶의 수많은 문제점에 봉착하면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창의적으로 문제해결을 해왔던가? 아이들의 글을 검토하면서, ‘창의성’에 관한 한 아이들의 개성과 수준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중에는 창의성이나 창의적 글쓰기 교육을 단 한번도 받지 못한 아이들도 있으나 거개는 훈련되어진 아이들이다. ‘훈련’이라는 어감이 불편하기는 하나, 쉽게 말해 아이들의 창의성이 글로 자유롭게 표현되도록 환경조성이 됐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생각들이 윤곽을 잡고 제 3자에게 이해되도록 표현되고, 강화된 것이다. 그런 누군가가 부모이면 금상첨화이다. 단, 이런 창의성 개발에 암적 존재가 암기요, 확인학습이요, 시험이요, 평가요, 성적이니 혹 이런 단어에 익숙한 부모나 학생들이라면, 이들에게는 도리어 고유한 창의성조차 위협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창의성은 개량화될 수 없고 수치화될 수도 없다.

셋째, 가장 경제적인 창의성 교육은 ‘책 읽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미는 특히 지역 도서관이 지역주민들의 삶의 일부분이다. 돈이 없어 책을 못 읽힌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도 필요 없이, 이 세상의 가장 많은 선생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책이다. 시간의 제약도 없다. 장소의 제약도 없다. 금전적인 제약도 없다. 어떻게 읽어야 된다는 제약도 없다. 한번에 한 권씩 읽어도 되고, 한번에 여러 권을 돌려가면서 읽어도 된다. 풍부한 독서에는 ‘확인학습 혹은 정독’이 적이다. 읽다가 낙서를 해도 되고, 습작을 해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된다. 책은 도구이지 보물이 아니다. 이번 대회의 수상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쓰기 선수들은 많은 책을 읽는다. 초등학교 아이의 경우, 한 달에 30-40권 정도의 책을 읽으면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해 두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맨 처음 책을 잡는다면, ‘이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고 해 두겠다. 의외로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 잡았다 놨다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돈을 들여서 감시자를 붙여 확인하게 하고 외우게 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아이의 책 습관 들이기에는 부모의 절대적인 시간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박준형 / Intercultural Educator and Author
Email) cwc2004_1@hotmail.com   / Tel) 778-233-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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