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왕서방’이 왔다가 울고 가는 맛있는 ‘자장면’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6-09 00:00

이성옥씨(포트 무디)의 자장면

◇ 한국에서 다니러 온 친정어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가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 사람들이 말하는 이성옥씨의 재주는 천가지 만가지. 한식·양식 요리 솜씨외에도 온라인 옥션에 올라오는 앤틱 소품을 골라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본업외 또 하나의 일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의 종류만큼 맛있는 레서피가 있고, 맛있는 레서피가 있으면 또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다.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으면 맛있게 만드는 사람도 있는 법.

퇴근길에 우연히 들렀던 석기시대에서 정말 우연히 자장면을 먹은 적이 있다. ‘우연’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식당에서는 메뉴판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삼겹살 혹은 뻔데기만 시키는 곳인데, 그날은 괜스레 주방 안을 기웃거리는 것을 본 주인 강미옥씨가 자장에 밥을 쓱쓱 비벼서 한 숟갈 불쑥 내밀었다.

자장에는 조미료가 ‘듬뿍’들어가야 제 맛을 낸다는 걸 우리도 알고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 헉~ 황급히 강력하게 거부를 했다. 다이어트하느라 노심초사하는 아줌마에겐 조미료는 최대의 적. 특히 혀끝 돌기가 민감하다 못해 까탈스런 사람에게는 조미료 뒷맛 때문에 밥 한 그릇 먹고 물 몇 사발 들이켜야 할 땐 억울하다 못해 화가난다. 

“미쓰 리 (현실은 아줌마)~~~ 정말 맛있어. 한번 먹어봐~ 미원 안들어갔어~”
성의를 봐서 받아 들고선 “설마 미원 안 넣고 했을라구. 그리고 자장면이 맛있어 봤자 자장면 맛이겠지…….”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혀끝으로 낼름 맛만 본다는 게 그만 그 집 식구들 먹을 자장면까지 바닥을 내고 말았다. 

한식요리 출장요리에 잡지 촬영까지 한국에서 꽤나 ‘칼’ 들고 설쳤던 ‘짬밥’에, 음식점 취재만 한국에서부터 밴쿠버까지 도합 십 수년. 그러나 자장면에 미원 넣지 않고 이렇게 담백하고 달작지근한 맛을 내는 자장을 먹어본 건 처음. 이 손맛의 주인공이 이성옥씨 였다.

그녀가 만약 밴쿠버 식당계에 뜨면 다 죽었다. 자장면.
비결이 뭘까… 뭘까…. 아무리 물어도 “그냥 야채 볶아서 자장 넣고 만들었지 뭐” 한다. 핏~ 그럼 자장면이 야채 볶아서 자장 넣고 만들지 금싸라기로 만드나 뭐. 하지만 독자들을 위한 맛있는 비결만 알 수 있다면 까짓 자존심 좀 상한들 대수랴.

“뭐죠? 어떻게 했죠? 한식 양식 중식 자격증 가진 권정수 아줌마(11번째 레서피 주인공)가 미원 안 넣으면 자장의 시큼한 맛을 없앨 수 없다던데? ”

달달달달 깨소금 볶듯 볶아대도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쏘냐. 드디어 허락을 받아내고 포트무디 이성옥씨 집을 찾던 날, 그동안 양식, 한식, 두루 두루 해내던 그녀의 손맛 비밀이 베일을 벗었다.

밴쿠버로 오기 전, 에드먼튼에서 살던 그녀는 직접 만든 순대로 끓인 순대국에 족발, 감자탕 등 맛깔스런 솜씨로 에드먼튼 일대 식당들을 숨죽이게 했던 한식당 주인이었다. 그 집 앞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것이 에드먼튼에 살고 있는 교민의 전언. 여기서 자신감을 얻게 되어 더 북쪽 지역으로 진출, 양식 레스토랑을 했던 것. 게다가 부지런하기로 말하면 숨이 막힌다.
아들 형제를 키우면서 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면서도 집안 구석구석 소품 위에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함에, 뒷 뜰에는 작은 텃밭을 일궈 씨앗을 뿌린 배추와 무, 상추는 소담스럽다.

보름 전 한국서 다니러 온 친정엄마와 머리 맞대고 ‘하하하 호호호’ 웃으며, 딸이 자장을 만들면 엄마는 밥을 퍼놓고, 엄마가 수저를 놓으면 딸은 엄마가 앉을 의자를 빼 놓는 정겨움에 한국 계시는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다.

따뜻하고 인간미가 줄줄 흐르는 엄마와 딸의 얼굴이 닮아있다. ‘나도… 나도 닮았노라’ 주장하며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드는 사위. 이곳이 외국인가 한국인가 잠시 헷갈린다. 사람 좋은 집은 그 집서 키우는 강아지도 사랑만 받고 사는 스스로를 사람이라 착각한다더니, 이 집에서는 애견 ‘예삐’와 새장안의 새들까지 손님을 반기느라 경쾌하게 재잘거린다.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메이플리치 앤틱소품 매장 한 코너를 임대해, e-베이 옥션에서 구입한 골동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그녀. 그래서인지 집안 가구며 사진을 넣어 걸어둔 액자까지 모든 게 앤틱풍이다.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더 멋스럽고 내면에 품위를 품고 있는 앤틱처럼, 사람도 사귀면 사귈수록 그 따뜻함에 빠져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성옥, 엔리, 그녀처럼….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 만드는 법

① 준비된 야채와 고기를 깍둑 썰기 해두고 마늘과 생강은 다져 놓는다.
② 마늘 생강을 약간씩 넣은 후, 돼지고기를 볶는다. (볶은 재료는 큰 냄비에 옮겨 담아둔다.)
③ 팬을 달궈 버터를 살짝 녹인다.
④ 3의 팬에 감자를 볶은 다음 양배추를 넣어 볶아 위 재료와 함께 담는다.
⑤ 자장을 볶는다. 이때 조선된장을 한 스푼 넣고 볶는 것이 포인트.
⑥ 볶은 재료를 담아 둔 냄비에 4의 자장을 넣고 볶은 후, 자작하게 물을 붓고 호박을 넣는다.
⑦ 물에 푼 전분가루를 6의 재료에 넣어 잘 저어준다. 이때 약간의 설탕도 식성에 따라 가감한다.
⑧ 끓는 물에 생면을 삶아 찬물에 비벼가며 씻은 후, 자장을 끼얹어 낸다.


■ 재료
볶음 짜장, 양파, 감자, 돼지고기, 애호박, 양배추, 당근, 굵은 생면, 설탕 마늘 생강(약간), 조선된장

■ 조리 포인트
① 조선된장을 자장을 볶을 때 넣는다.
② 고기를 볶을 때 마늘과 생강을 살짝 넣는다.
③ 식성에 따라 칠리를 잘게 썰어 자장을 볶은 다음 넣어도 매콤한 자장 맛을 낼 수 있다.

■ Cooking Tip
볶은 재료에 붓는 물은 보통 크기의 찌개 국자로 하나의 양이 1인분으로 계산.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