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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좋은 날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5-03 00:00

입춘 좋은 날에 도그 마운틴에 올라

立春吉日逍遙犬岩山
입춘 좋은 날에 Dog Mt.을 소요하며

肇春香霧起 봄이 오려나 안개향기 피어나
千山烟林幽 온산연기 자욱한 숲 저리도 그윽하네
大雪塡溝壑 엄청나게 내린 눈은 골짜기를 메웠는데
融氷春澗流 얼음풀려 봄개천은 졸졸 흘러가네
十里無人響 십리를 가도가도 인기척 하나 없어
俗客却不赴 세상사람 여간해선 오지않는 곳이로다
坐看松柏靑 앉아서 온산 가득 늘푸른솔 바라보니
詩思轉悠悠 이내시정 휘돌아 한없이 흘러가네

丁亥陽二月八日與五人登犬公山坐宴而有懷梅軒偶吟
정해년 2월 8일 다섯 사람과 함께 Dog Mt.에올라 잔치를 벌이면서 소회가 있어 매헌은 우연히 읊다.

주말이나 주중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또 건강한 사람들이 등산을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는 뭐니 해도 산행이 힘들기 때문이다. 가파른 산을 오르면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해지기 마련이라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산행이 심신을 단련시키고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좋은 운동임을 누가 모르랴마는 이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격조있는 골프나 테니스에 비해 매력이 없는 것이 또한 산행이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가는 무식한 운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가를 선용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해도 솔직히 말해 필자로선 등산을 능가하는 운동이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민 후 젊어서 한때 한 5년간 낚시광이 되어 물에 살다시피 낚시에 탐닉한 적도 있었고, 40대에 접어들면서 골프에 매료되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필드에 나갈 정도로 골프광이 된 적도 있었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서야 비로소 산행에 미쳐버렸으니, 여가 선용차원에서 볼 때 세 번씩이나 여러 가지로 미쳐버린 대책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질게도 힘든 이민생활 32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여가활동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후회하진 않는다. 막말로 미칠 정도의 여가활동에 쏟아 넣은 시간이나 금전적 비용을 다 합산한다면 아마 집 한 채 사고도 남을 만치 막대한 금액일 것이다. 하지만 산에 다니기 시작하고서부터 낚시나 골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니 산행에 점점 매료되어 가다 보니 골프는 꼴도 보기 싫어졌으니 낚시는 말할 것도 없다.

산행이 힘들기만 하고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막노동같은 초보 단계인 첫 1년이 고비이다. 그 고비를 지나면서 몸이 가뿐해지고 산행 후에도 별 피로를 느끼지 않는 도약기에 이른다. 이 단계에 이르면 서서히 산행에 재미를 느끼게 되고 산행일이 기다려지는 예후를 본인이 감지하면서 본격적인 하이커로 태어난다고 보면 대차가 없다. 6년 전 초여름 어느 날로 기억되는데, 전날의 만취로 온몸이 천근만근인데다 배낭을 챙겨 나서는 순간까지 술 냄새가 물씬 풍겼으니 등산을 해서는 안될 몸이었다. 억지로 산행 집결지에 도착하니 이날 따라 가파르고 힘들기로 소문난 그라우스 그라인드 코스였다. 저고리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고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그 힘든 코스를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곧 숨이 넘어갈 듯 씩씩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힘들게 산 정상가까이 올라 땀에 절은 러닝셔츠를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였다. 땀에 젖은 하얀 러닝셔츠가 완전히 누렇게 변해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몸 안에 남아 있던 벼라별 모든 독소와 노폐물이 격렬한 산행운동으로 모조리 빠져나온 결과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정도의 알코올 섭취를 간이 해독하려면 며칠간 고생했을 터인데 단 두 시간 만에 모든 독소가 땀으로 빠져나오면서 가뿐한 몸을 느낄 수 있었던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이다. 아! 산행이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하는 대오각성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 이후 나는 몸이 찌푸둥 하거나 피로하고 과음으로 속이 쓰릴 때면 휴식을 취하는 대신 등산으로 치료하는 나만의 민간요법이 생겨난 것이다. 한방이나 보약 그리고 충분한 휴식으로 다스릴 수도 있겠지만 나로선 그만큼 등산요법이 주효했던 것만큼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기분이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 있었다 해도 등산을 갔다 오면 집을 나서기 전의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씻은듯이 사라지는 심리치료까지 가능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만이 산행에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단계를 지나면 진정한 산행인의 반열에 들 수 있다.

골프라는 운동과 산행이라는 운동을 자동차에 비교해 보라! 골프는 조금 걷다 정지간에 공을 치고 또 전진하는 간헐적 운동이니 마치 복잡한 시내에서 브레이크를 수시로 밟고 정지 전진하는 자동차의 엔진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골프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스트레스까지 동반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등산은 자기 체력의 범위 내에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운동이니 마치 엔진 가동상태가 좋지 않은 자동차를 하이웨이에 몰고 나가 한 두 시간 주행하면 엔진소리가 부드러워지는 원리와 확실히 비슷한 것이다. 게다가 눈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부지기수로 구경할 수 있으니 산행인들의 정서가 순화의 극치를 더해 갈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 아니랴.

독자들은 필자를 보고 너무 산행에만 치중하고 두둔하는 편파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의 모두에서 말했다시피 여가선용 방식의 선택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분명히 우리에겐 있다. 그러나 심신의 건강은 물론 정서순화에 가장 좋은 운동은 산행이 제일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단 한치도 양보를 할 수도 없다.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시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여 산으로 오라! 눈 시리게 아름답고 고즈넉한 산행길에 그 비밀이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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