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굴드는 어떤 표정 지을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4-28 00:00

클래식 ABC / '굴드의 복제'

캐나다 출신의 괴짜 피아니스트였던 글렌 굴드(Gle nn Gould·1932~1982·사진)는 일종의 ‘도돌이표’ 음악 인생을 살았습니다. 23세의 청년 굴드가 초여름 뉴욕의 스튜디오에, 베레모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나타나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것이 1955년이지요.

그의 마지막 공식 음반 역시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1981년 최후의 녹음에서 굴드는 한결 여유 있는 박자감으로 연주 중간에 멜로디까지 흥얼거리며 만년(晩年)의 관조를 유감 없이 보여줍니다. 굴드는 사석에서 ‘골드베르크’를 ‘굴드(Gould)베르크’라고 부를 만큼 애정을 드러냈지요. 두 음반 모두 바흐의 건반 음악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명반입니다.

최근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이 새로운 버전으로 출시됐습니다. 굴드의 1955년 음원에 담겨있는 건반 터치와 음량, 페달링 등 모든 정보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되살려낸 것입니다.

굴드의 녹음에 이미 ‘길들여진’ 팬에게는 일종의 ‘불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계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까지 인용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우라는 예술 작품이 갖고 있는, 오직 하나뿐이고 둘도 없는 진품성과 권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역설은 굴드 자신이 이미 레코딩이라는 신기술을 충분히 이용하고 즐겼던 아티스트라는 점입니다. 굴드는 1964년 무대 은퇴를 선언한 뒤, 방송 진행과 녹음을 통해서만 팬들과 만났지요. 심지어 수차례 녹음한 음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편집하는 ‘짜깁기’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벤야민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굴드 본인이 아우라를 파괴하는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가’였던 셈이지요.

컴퓨터를 통한 이번 연주는 ‘21세기 기술 혁신에 대한 자찬(自讚)’일까요. 아니면 침체에 빠진 음반 시장의 ‘이슈 만들기’일까요.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지만, 특유의 냉소적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을 굴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김성현 danpa@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