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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한그릇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3-19 00:00

때때로 먼 추억은 사소한 것으로부터도 강렬하게 밀려와 순간적으로나마 가슴을 콱 누른다. 추억의 중심엔 아무래도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소싯적 그들과 함께 들르던 찻집, 밥집, 술집들도 포함된다. 이젠 흔적조차 없지만 아직도 뇌리에 삼삼한 그 집들의 정경이며 차 맛, 술 맛, 밥 맛 그리고 특유의 냄새까지. 우연히 그런 공간을 떠올리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의 음성,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어스름 꼬리를 물며 되살아 난다. 마치 밤하늘을 한참 바라보노라면 안보이던 별들이 까만 하늘을 비집고 하나 둘씩 깨어나는 것처럼.

세대(世代)를 넘겨가며 더욱 가속되는 도시화(都市化)는 오늘도 멈출 줄 모른다. 예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잠시 쉬려 해도 수월하지 않다. 어쩌면 날로 탈바꿈하는 세상에서 소싯적 흔적과 기억을 더듬어 그리워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무얼 원망하고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또 모여들면 도시는 숙명처럼 사람들의 뒤를 따르고, 거대한 생명체인 도시는 성장하고 변화하게 마련이다. 성장과 변화는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도시의 외양이 바뀌면 거기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나 인식도 당연히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내용이 도시의 외양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또한 그 무엇이 있어 진하고 진한 세월을 감당할까.

서울을, 서울의 거리를 틈이 나는 대로 다녀본다. 그러나 아무리 도시기행을 해도 두터운 세월이 덧댄 곳에서 추억의 단초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세월의 틈새 군데군데에 남은 흔적도 그나마 위태위태하다. 그러니 다니던 초등학교 후문의 여전한 돌계단 몇 개, 또는 오히려 키가 작아진 것 같이 남아있는 어릴 적 놀던 동네의 은행나무, 이런 것들이 날라다 주는 흐릿한 사금파리 추억에도 가슴이 콱 눌리는 거다.

을지로 초엽에서 곧장 가다가 조금 비껴난 수하동 골목에 오래된 필름보관소 같은 밥집이 하나 있는데, 하동관(河東舘)이다. 밤새도록 곰탕을 고아 낸 것이 낼 모레면 70년째가 된다. 도심 한복판의 키 작은 그 밥집은 하늘을 찌르는 빌딩 그리고 공사 현장의 높은 가림 담장으로 에워 싸여있어 홀로된 섬과도 같다. 그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쉽게 직감할 수 있어 씁쓸하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고 수십 년 한결 같은 그 곰탕 맛은 가슴을 따듯하게 녹여낸다. 아직 그대로인 그 집과 그 집의 맛이 반갑고 또 반갑다. 서울에서 닥치는 여간 일이 아니다.

예전과 다름없는 하동관의 낡은 테이블에 앉으면 오랜 세월 잘 간수된 놋그릇에 듬뿍 곰탕을 내온다. 사람마다 날계란을 풀기도하고 깍두기 국물을 넣어 달래서 먹기도 하지만 찬으로 나오는 별나지 않고 소박한 김치깍두기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먼 그 시절에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주름이 더 깊어지고 백발은 더 희어진 주인장이며, 그 집을 찾는 사람들이다. 예전엔 손님의 대부분이 노신사(老紳士)들이었는데, 지금은 맛과 추억을 물려받은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그 집을 찾던 예전의 노신사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나 보다, 하긴 세월이 얼만데.

오후 4시 무렵이면 하동관은 문을 닫는다. 한 푼 벌어먹기 고단한 요즈음에 장사로 치면 보통 오만한 게 아니다. 그러나 양지머리와 같은 고기와 양 같은 내포를 푹 고아 탕을 우려내서 제대로 된 곰탕 대접하려면 어쩔 수 없단다.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매일 밤 새 새로 곤 곰탕이 그 시간 무렵이면 동이 난다는 얘기가 더 맞다. 주인장의 진하디 진한 고집이다. 잘 나가는 밥집에 대고 주변에선 분점이니 뭐니 얼마나 말이 많았고 유혹도 오죽 많았을까. 하지만 집이 갈리면 맛도 갈린다, 이 말이 그 집 말의 전부다.

맛도 추억도 물려지는 몇 안 남은 오래된 밥집에서 곰탕 한 그릇 훌훌 비우고 나니 깊은 뱃속까지 든든하다. 그건 그 집의 고집으로 여태 잘 살아남은 추억까지 잔뜩 목에 넘긴 까닭일 거다. 그 집이 사라지면 기억 속의 여느 집이 그랬던 것처럼 추억의 물림도 끝나고 더는 갈 수도 없이 뇌리 한 구석에서만, 혀 끝에서만 가물가물할 거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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