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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와인 계곡의 풍광에 젖어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2-28 00:00

丙戌陽十月十四日登寶欄草原坐望有懷
병술년 양10월14일 Brandywine Meadow에 올라 바라보며 소회가 있어

朝辭溫城海霧間 안개속을 나선 새벽 밴쿠버를 뒤로하니
天末雲低萬重山 구름 낮은 하늘끝에 천겹만겹 산이로다.
古逕寂寞竹杖輕 묵은길 적막하고 죽장은 가벼운데
只聽溪水彈琴恨들리나니 계곡물은 애끓는 가야금소리
百步九折登高原 백걸음에 아홉구비 고원에 올라보니
廻望千峯列戟看 빙둘러 수천봉이 창을 꽂은 모양일세
 赤葉金草滿眼秋 붉은단풍 금잔디는 가을빛만 눈에가득
作客浮生逼六旬 덧없는 나그네 인생 육십을 재촉하네
 
於寶欄草原梅軒鄭鳳錫賦
브랜디와인초원에서 매헌 정봉석은 시를 짓다

3년 전에 녹슨 하수관 파이프를 50cm나 절단하고 용접 봉합한 부위에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미니 카메라를 맨홀 속으로 쑤셔넣어 뒤지는 대장내시경(Colonscopy) 검사를 받았다. 수술 1년 후 실시한 내시경 검사 당시 그 부위에 수개의 용종(Polyp: 장내벽에 생기는 꽈리,이것을 방치하면 암의 화근이 됨)이 발견돼 내시경에 달린 전기 올무로 제거했던 경험이 있어 불안했는데... 담당 내과 전문의가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빙그레 웃었다. 투병기간 중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각오한 터라 기쁘다기보다는 담담했다. 오히려 이놈의 내시경 검사가 하필이면 우리들의 산행일인 목요일과 겹친 것이 짜증스러웠다. 그만큼 나는 자신의 건강에 무관심한 것일까? 아니면 그간의 단독산행을 통해 산 귀신이 씌어 약간 돌아버린 것은 아닐까?

내가 무지하고 무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평소 건강에 대한 지론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이란 것이 소우주일진데 그 안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잠재력이 내장되어 있는 만큼 나는 이를 철석같이 믿고 그냥 내버려 두는 자유방임주의적 입장이다. 그러니 평소에도 여간해선 약이나 보약 먹기를 거부한다. 더구나 양약이라는 것은 한방이 보사(補瀉) 원리에 입각한 복합생약(multipharmacy)인데 반해 일방통행성 화공약품(monopharmacy)인 독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거부반응이 있다. 내가 알기론 대개의 암환자들은 자기의지로 싸울 준비보다는 정통의학의 항암치료 요법 외에 벼라별 한방이나 민간요법, 대체의학까지 동원하지만 증상이 악화되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수이다. 내 생각으론 이 단계에서 암세포는 오히려 맹렬한 기세로 극성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엉터리 암의학(oncology)논리가 있었다. 그렇게 피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아직 기운 꽤나 있을 때 암세포들과 전쟁을 벌여보자는 무대뽀 작전을 구상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암세포를 내 몸에 모조리 끌어안고 아주 험하고 힘든 극렬한 산행현장으로 끌고 가 암세포와 사생결단의 결투를 불사하는 방식이라면 이해가 갈런지.....하여튼 산행은 나만의 독특한 암 투병 방식이었다는 것만 밝혀 둔다.

할 수 없이 토요일로 연기된 산행을 나서니 내시경 검사가 합격해서 그런지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그간의 나의 투병 작전계획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통쾌한 승리감만큼이나 20kg 상당의 배낭의 중량도 가볍게 느껴졌다. 이날 따라 어제 동네 공원에 우연히 들렸다가 관리원들이 솎아내고 버린, 여기서는 귀한 세죽(細竹)들 중 실한 것을 골라 죽장을 만들어 갔으니 '김삿갓'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스키 폴대 지팡이보다는 사제 나무작대기를 짚고서 도사나 된듯한 대리만족을 하려는 심미적 감수성이 없지않아 있는 것이다.

새벽에 출발하여 브랜디와인 계곡 중턱까지 차로 올라가 등산로로 들어서니 온 골짜기가 벌써 고즈넉한 만추의 풍광에 젖어 들고 있었다. 길섶에 담홍색 꽃잎을 무수히 달고 현란한 영화(榮華)를 자랑하던 산불꽃(Fireweed)도 스러져 탐스런 솜을 몇 켜씩이나 달고 조락을 슬퍼하듯 상복 차림이었고....정적 속에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는 애간장이 타는 듯한 가야금 선율처럼, 다가올 겨울의 엄청난 적설 속에 매장되어갈 모든 생명체들에게 바치는 가락마냥 중중모리에서 자진모리 템포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적한 길을 걷노라면 그것도 도시소음과 완전히 격절된 심산유곡이라면 들리는 모든 것이 소리의 환(幻)이 된다. 솔바람 소리가 은은한 퉁소 소리로 들리는가 하면, 자신이 발 딛는 소리나 지팡이 끄는 소리도 예사롭지 않은 음악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럿이 어울려서 희희낙낙하고 재잘거리며 걷는 것보다 홀로 묵상하고, 침잠하고 사색하며 걷길 좋아한다. 이런 방식으로 어느새 힘든 줄 모르고 정상에 도착하는 요령을 투병 중 터득했던 것이다. 등산은 편의상 단체로 가더라도 결국 산과 내가 일대일로 만나는 성지순례에 다름 아니다. 호젓한 산길에서 산과 대화를 시작하면 엄청난 가르침과 계시마저 얻는다. 막말로 시시껍절한 철학서나 종교서적을 몇 십 권 뒤적거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깨우침이 산행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자고로 득도한 고승일사(高僧逸士)들이 입산 수도한 연유가 그것이요, 명산대찰이 산속에 있어야 할 이유도 이런 까닭인 것이다.

이날 산행목표인 브랜디와인 메도우 역시 초행인 만큼 중반에 도로공사에 파묻힌 7부 능선 트레일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간 축적된 산행관록의 힘으로 무사히 도착하니 주위의 모든 산들이 성당의 첨탑처럼 뾰족하게 도열하고 있었다. 금강산 만물상을 뺨친다는 경관은 소문에 듣던 대로 명불허전... 진홍색으로 물들은 블루베리 관목들이 빽빽이 들어선 초원은 농익은 황금색 금잔디 빛을 발하고 있어 목가적인 분위기가 진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문득 코흘리개 시절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우리 세 남매에게 가르쳐 주신 최초의 서양 팝송 노래 '매기의 추억'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당시는 이 '매기'가 'Margaret'의 애칭인 아가씨 이름인 줄 알 턱이 없는 나로선 '뒷동산에서 물고기 메기와 논다'는 사실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으려니 넘어갔던 기억이 있어 쓴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 초원의 이름이 고약하게도 브랜디 양주와 포도주의 합성어라 그런지 몰라도 일행이 가져온 술이 공교롭게도 복분자주에 포도주 그리고 소주 한 병이 있었으니....초원이름 값대로 짬뽕하여 실컷 통음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등산객들이 누리는 특권이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주) Brandywine이란 합성어는 위슬러 초입의 'Brandywine Fall'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서부개척시절 철도 공사를 위해 측량을 하던 두 기사가 목측으로 이 폭포의 높이를 알아 맞추는 내기를 했는데 한 사람은 포도주 한 병을, 또 한사람은 브랜디 한 병을 걸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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