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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된 후손 샤를르 킴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2-27 00:00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가 내줘야 할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내줘야 할 것들에는 부모가 살면서 구축해왔던 무형의 가치관도 포함된다. 가릴 것 없이 내줘야 하는 배경에서 부모들은 자신들만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평생 부모에게 안겨 줄 모든 기쁨과 행복을 건넨다. 그것도 모자라 자라면서 두고두고 순백의 마음을 부모에게 내준다. 그 무엇이 있어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는 때보다 더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생색도 나지 않게 부모에게 보내는, 갸륵하고 고귀한 선물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부모 스스로의 강조에 의해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을 받는 자식의 영혼의 세포 안에 스며들면서 완성되듯, 자식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부모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새김으로써 완성시켜야 한다.

내 아들놈이 여남은 살 무렵의 일이다. 머리칼이 많이 자라서 아무래도 미용실에 가야 할 때, 내가 나섰다. 커다란 천을 아들놈의 목에 두르고, 가위며 전기 헤어컷터를 들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여기를 손보면 저기가 덜한 듯하고, 또 저기를 손보면 여기가 모자란 듯하다가 끝내 아들놈의 머리칼은 불에 타다만 듯한 볏단 모양이 되고야 말았다.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고는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금방 눈물이라도 떨굴 듯하더니, 저보다 더 안절부절하며 낯빛 붉어지는 나를 보고는 이내 얼굴을 편다. 괜찮아, 아빠.

다음 날, 학교에 간 아들놈은 희한한 제 머리칼을 두고 깔깔대는 아이들의 온갖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도대체 누가 네 머리를 이 꼴로 만들었냐는 제 친구들에게 아들놈은 이렇게 말했단다, 샤를르 킴….

샤를르 킴?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

제 머리모양을 그 꼴로 만든 이 아비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헤어 디자이너 샤를르 킴이 되었고, 여남은 살 무렵의 아들놈은, 이젠 창피한 것 다 알만 한 나이의 아들놈은, 그 머리 모양으로도 꿋꿋하게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고, 또 꿋꿋하게 학교에 다녔다.

패인 곳은 꽤 깊이 패인 그 희한한 머리모양이 다시 미용실에 찾아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샤를르 킴은 내내 송구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아들놈은 그 뒤로 샤를르 킴에게 제 머리칼을 맡기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자식이 자라난다는 것이 내게 주는 무엇보다 큰 의미는, 내 걸음이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향하게끔 하는 장치들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 수 대에 걸쳐 천주교를 믿어온 우리 집안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그 옛날 천주를 믿는다는 죄목으로 끌려나가는 자식에게 그의 어머니는 미리 기워놓은 새 버선을 신겼다. 흰색 고운 그 버선은 여느 것들과는 다르게 버선코를 뒤꿈치로 내어 기웠다는데, 자식의 주검이 하도 참혹하여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다만 그 버선 모양을 찾아 제 자식을 가려냈다는, 조상의 얘기다.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자랑스런 가문의 후손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 말하자면 네 조상의 거룩한 삶을 깊이 새겨 자긍심을 지녀라, 온갖 생각과 행동거지를 바로 하라는, 행간에 숨은 압박이 아주 강렬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태 살아오면서 나에게 닥친 유혹과 갈등의 순간에 그 이야기를 떠올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조상의 가없는 은공과 덕을 흠복할 줄 모르는, 못나고 못된 후손이라 손가락질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역경과 유혹에 휘청거리는 순간에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영광된 조상의 깊은 음성(吟聲)을 느끼기보다, 내 옆에 자라는 아이의 모습에서, 내 걸음이 어느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무게 넘치는 메시지를 읽는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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