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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의 그늘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14 00:00

고등학교에 다닐 땐가 보다. 정초에 친구 녀석이 손수 그려 전해준 신년 카드에 이렇게 써 있었다. New Year! Well eating, Well living. 새해, 잘 먹고, 잘 살아라 쯤 되는 얘긴데, 그게 어디 말 뜻 그대로 온전하게 쓰이고, 곡해 없이 들리는 얘긴가. 누군가에게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면 그 말 뜻 그대로 만큼 받아들일 이는 아마 없을 게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내 안에서 그 카드의 글귀는 빈정대는 방향으로 번지지 않고, 본래의 뜻이 더욱 간곡해진 새해 덕담으로 다가왔다. 근사하게 치장된 덕담 일색인 신년 카드들 속에서 녀석의 글귀는 오히려 상쾌했다. 누군가가 梅里九里水馬水(매리구리수마수, 매화 마을 아홉 리 물길은 말이 마시고)라고 성탄 카드에 썼던 것처럼, 나름대로의 튀는 카드 말을 쓰려고 애썼던 당시 젊은이들의 재치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거였다. 각설하고, 녀석의 잘 먹고 잘 살라던 새해 인사를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삼십 년이 넘은 뒤에 세상에 불어 닥칠 웰빙 바람을 이미 예견했던 듯싶기도 해서 무릎을 친다.

웰빙 Well Being열풍이 한창이다. 숫제 광풍이다. 이거다 싶으면 마구 휩쓸리는 극성스런 현상을 목도한 것이 한 두 번의 일은 아니지만 작금의 웰빙 바람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요즘의 웰빙은 불안하다. 필요에 의해서 재화가 창출되는 원리, 또는 일반론적인 수요, 공급의 순차구조에 역행하는 웰빙인 것 같아서다. 치밀한 상업적 전략을 바탕으로 재화의 창출이 우선되고, 시장의 필요와 욕구에 관계없이 소비를 강요하는, 변형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속도감 있는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창출된 재화는 시간이 흘러서 고물이 되는 게 아니라 신상품의 탄생으로 하루아침에 고물이라는 딱지를 뒤집어 쓴다. 그러한 속성은 소비패턴의 정신 없는 회오리 속에서,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고유의 소비 사이클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시대의 낙오자인 양, 시대적응의 부적격자들인 양 손가락질 한다.

소비자들의 신중한 판단을 싫어하는 소비주의의 그러한 속성은 끝내 우리의 사유(思惟) 공간을 앗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구호는 이론(異論)의 여지를 불허하는 힘을 지니게 마련이다. 사실 웰빙은 새로운 가치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부단히 애써왔던 인간들의 제반 모습을 가리키는 신조어(新造語)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신상품으로 포장된 요즘의 웰빙은 편협하기까지 하다. 웰빙이 부르짖는 대표적인 구호는 잘 골라 먹고, 잘 발라먹는 거다. 건강하고 넉넉한 제 몸뚱이를 거의 원수 보듯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밥 세끼 꼬박꼬박 맛 있게 먹는 게 곧 보약이라는 어른들의 오랜 가르침조차 편협한 웰빙 앞에서 악(惡)이 되고 만다.

섭생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섭생만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로 호도되는 것에 대한, 편협한 웰빙에 대한 얘기다. 섭생만큼이나 중요한 인간의 사유 공간이 지금의 웰빙 광풍 아래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흔들거리고 있다. 허리둘레 1인치에 아무리 목숨을 건다 한들, 마음 깊은 곳에 잘 두었다가 언제고 가만히 꺼내서 읊조릴 수 있는 노래 한 줄 없다면, 웰빙이고 뭐고 다 허망한 일이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추구해온 삶의 방식에 웰빙의 모든 해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육체와 정신이, 물질과 의식이, 그리고 형태와 내용이 차원을 향상시킨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게 하려 했던 오랜 노력을 간과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나와 너, 나와 사회가 서로 조화롭게 소통하는 경지에 다다르려 했던,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열망했던 인간의 오랜 애씀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 말 그대로의 웰빙은, 작금의 웰빙 광풍이 조장하는 말초적 흥분상태로부터 속히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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