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06 00:00

중국 청조(淸朝) 말, 1851년, 홍수전(洪秀全)이 농민군을 규합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다. 시작부터 그 말 자체가 하도 우스워 얘기가 잠깐 빗나갈 수밖에 없겠다. 난(亂)은 말 그대로 난 일진데, 그 앞의 태평천국(太平天國)은 또 무슨 말인가 하여 우습다. 하긴 이 정도면 그야말로 골머리 쑤시게 하는 요즘의 말의 조합에 비하여 좀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어긋맞은 말의 억지조합이며, 도무지 앞뒤 맞지도 않는 괴설을 늘어놓고도 시치미 까는 통에 요즘 피곤할 때가 많다.

차치하고, 전형적인 왕조 말기 현상에 말미암은 이 난은 무려 10여 년간 지속되면서 반란군은 청과 대립한다. 청의 조정에서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증국번(曾國藩)을 앞세워 군대를 파견하는데, 워낙 반란군의 기세가 등등한지라 진압군은 난을 평정하기는커녕 번번히 패퇴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조정에 전황을 알리는 장계에는 누전누패(屢戰屢敗)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당연 번번히 싸워 번번히 진다는 보고서인데, 지휘관인 증국번의 벼슬이 날아감은 말할 것도 없고, 심하면 연이은 패전의 책임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지경이 된다.

이에 보고서를 황제에게 상계하는 백관의 하나가 증국번의 전황보고서를 고쳐 쓴다. 누전누패를 누패누전(屢敗屢戰), 즉 반란군과의 싸움에서 누누이 패하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다고 고쳐 적은 것이다. 이러한 보고서를 받아본 청의 도광제(道光帝)는 오히려 상을 내려 증국번을 격려하고 진압군의 사기를 북돋운다.

황제에게 상계하는 그 벼슬아치가 전황 보고서를 거짓으로 다시 꾸며 올린 것도 아니고, 다만 바꾼 글자 순서 하나가 증국번의 목숨을 구하고 만 것이다. 증국번은 그 후 끝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과 반란군을 토벌하고,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주도하는 등 이홍장(李鴻章)과 더불어 청조 말의 유력 정치가로 또한 학자로 이름을 떨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과연 말이다. 더군다나 시련에 주저앉은 이에게는 더욱 예민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그 놈의 아, 그리고 어다. 침묵은 금이라지만 어디 사는 일이 그러한가. 옆에 주저앉은 이를 보면서 침묵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인지상정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때론 위로의 말이라고 건네는 바가 오히려 주저앉은 이에게 시련보다 더 한 상처를 안길 때가 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했던가.

참 까다로운 아, 어다. 차라리 외면하는 편이 낫지, 어디 겁이 나서 말이나 한번 건네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까다로운 곳에도 틈새는 있는 법, 아, 어가 주는 압박의 사슬에서 자유로워 지는 건 온 마음을 싣는 거다. 그냥 발린 위로가 아닌, 또는 너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심보를 위로로 가장한 것이 아닌, 고난 속의 그를 온 마음으로 긍휼이 여기는 데에서 아, 어를 가리는 기술은 소용없어진다.

말 또는 위로가 향하는 방향은 크게 봐서 남과 나, 이렇게 두 가닥으로 잡을 수 있겠다. 따라서 남을 향한 아, 어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 어는 잘 가려져야 한다. 시련에 주저앉은 스스로에게 조차 아, 어를 가려 살펴야 하는, 그 살얼음판에서 헤어나는 방법은 역시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다. 시련에 닥친 스스로에게 외부로부터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다잡아가는 긍정적 인식일 게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련한 스스로가 다시 일어날 도리가 없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을 진부한 얘기일 망정 시련에 눌릴 때는 새삼스레 다가온다, 긍정적인 인식.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한들 그건 죄 겉이다. 그 속은 마음이며 인식이다. 겉은 속에서 나온다. 무시로 주저앉고, 무시로 아픈 우리가 겉의 아, 어를 극복하는 길은 속의 진정이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아프다, 누패(屢敗). 그러나 아픈 게 다가 아니며, 아픈 게 끝이 아닌 것이 사는 이윤가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아픔이지만 오늘 아침에도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또 숨을 고르며 문을 나선다, 누전(屢戰).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입맛 까칠한 독자가 추천한 VEGETARIAN Food Restaurant 'THE NAAM'
경고! 만약 당신이 고기를 좋아하는 입맛이라면 근처도 가지 말자.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입을 닦아도 좋을 만큼 깔끔한 곳을 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베지테리언 레스토랑 ‘The NAAM’은 나달나달한 메뉴 판 속에 깨알같이 쓰여진 60여가지 음식이 몽땅...
우는 아이도 ‘뚝’그치게 하는 캐나다 특허 직전 빼낸 레서피~~~ 맛은 High~~~ 칼로리는 Low~~~ ‘엄마표 밥풀 강정’
그녀 손끝에서 조미료가 나오는 걸까? 뭘 만들어도 감칠 맛 나는 손맛 좋은 주부가 있다 알고 보면 그녀 음식 맛이 남다른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제39호 향군뉴스 2006.11.25 (토)
재향 군인회 54주년 기념식  김재수씨 공로휘장... 안보강좌도 마련 재향군인회 제 54주년 기념식이 31일 오전 밴쿠버 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캐나다 서부지회 창립 9주년 기념식을 겸한 이날 행사에는 더그 저메인 KVA 태평양지부 부회장을 비롯한 한국전...
밴쿠버시는 다운타운 소재 플라자 오브 네이션(Plaza of Nations) 공연장 유리 덮개에 대한 안전 검사를 실시한 결과 결함이 발견됐다며 즉각적인 보수 명령을 내렸다. 플라자 오브 네이션의 야외 무대에는 비가 와도 지장이 없도록 유리와 알루미늄 틀로 제작된...
BC주에서는 생나무가 인기
크리스마스를 한달 여 앞두고 트리와 전구로 단장하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조 나무를 사용해 장식하는 집들도 있지만 BC주에서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트리 농원'에서 재배된 생나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전나무는 인조...
샘플 검사 결과..."UBC 샘플은 다른 경로로 오염"
밴쿠버 지역 수돗물이 이콜라이균에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주초 UBC에서 채취한 수돗물 샘플에서 이콜라이균 양성 반응이 나타났으나 이후 검사 결과에서는 오염 사례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광역밴쿠버지역청(GVRD)은 이콜라이균 양성 반응이...
작년 기부금액 13.8% 증가...아보츠포드 전국최고 560달러
지난 해 캐나다인들이 자선 단체나 종교 단체 등에 기부한 금액이 사상 최고치인 79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4년과 비교해 10억달러 이상 늘어난 것이다.  캐나다 통계청은 지난 해 기부에 동참한 캐나다인은 약 600만명이며 기부 금액 규모는 2004년과 비교해 13....
하버드 신입생의 가장 큰 두려움은 누군가 갑자기 자기를 학교 오피스로 불러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않을까 하는 것이다. "올해 입학 사정에 컴퓨터의 오류가 있었다네.  자네는 사실 불합격인데 컴퓨터 입력이 잘못되어 합격처리가 되었네. 지금 당장 다른...
The Status of Women 2006.11.23 (목)
by Angela MacKenzie  Segolene Royal, the Socialist Party candidate in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in France, is proving that women can be attractive, wear skirts and still be dynamic, political forces to be reckoned with (compare Royal to England's Margaret Thatcher from a few decades earlier).After standing by her man, former U.S....
엘핀 산행에서 우연히 시를 얻다
어떤 산이건 이를 오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라는 게 있다. 십중팔구 대개는 장엄하고 험준하며 남성적인 인상을 풍기는데 비해 엘핀호(Elfin Lake)는 그와 정반대의 여성적인 산이다.
쌕쌕이와 사진
9.  "아니 이거 누구야! 기원이 아니야!" 기원은 늘 씩씩하고 활달한 성격을 보여 주었던 학생이다. 이날 따라 기가 푹 죽었고 말소리도 누가 들을 까봐 소근소근했다.     "한 선생님, 속히 이곳을 피해야 해요"   "무슨 일이......"  "우리 아버지가...
1.실협 송년잔치 지난 한해 동안 격려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송년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이  참석하시어 즐거운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일시: 2006년 11월 24일 금요일...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교육 추구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특이한 건물이 있다. 토론토의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바로 미술과 디자인 전문 학교인 Ontario College of Art and Design(OCAD)의 샤프
캐나다의 한류 밴쿠버 아시아계 한국 드라마 팬 많아
국제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있는 드라마 <궁> “드라마에서 왕과 황태자가 나오던데, 한국은 실제로 입헌군주제인가요?” 최근 한국 드라마 <궁>에 빠져있는 대만 출신 도리스 장(Doris Chang·18세)양이 던진 질문이다. 올해 밴쿠버의 대학에...
노력의 눈물 2006.11.23 (목)
‘사당오락(四當五落)’ 이라는 말을 아는가? 하루 네 시간 자고 공부하면 대학 입학에 성공하고 하루 다섯 시간을 자면 입학에 실패 하게 된다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11월 16일은 한국 중, 고등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법한...
출처 밝히는 방식 철저히 숙지해야
대학에서 리포트나 논문을 쓸 때 교수 들과 조교들이 꼭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무단 도용 피하기(avoiding plagiarism) 이다. 대학교에서 말하는 무단 도용이란 자신이 직접 쓰거나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글을 출처나 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미국이 남북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북군과 남군이 대치했다. 이제 내일 아침에 싸움이 터져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그런 밤이었다. 달빛이 흐르는 조용한 시간에 군사들은 불안에 떨면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 누군가가 전쟁의...
리치몬드 RCMP 제보 60여건 접수...결정적 증언 확보 못해
리치몬드에서 지난 주 15일 뺑소니 교통사고로 숨진 아키 타지마씨 사건<본지 11월 18일자 보도>과 관련해 연방경찰(RCMP)은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추가 목격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보도 후 60건 가량의 제보를 받았으나 결정적인 진술을...
밴쿠버·버나비·노스쇼어 지역...탁도는 낮아져
광역 밴쿠버 지역 수돗물의 탁도가 낮아졌으나 밴쿠버, 버나비...
기상 악화로 인해 전기나 전화가 끊겨도 요금에서 자동적으로 차감되는 것은 아니라고 밴쿠버 지역 한 라디오 방송이 보도했다. 지난 주 폭풍우로 인해 20만가구가 단전됐으며 약 7000가구의 전화가 불통됐다. 뉴스1130에 따르면 텔러스의 경우 소비자가 상담센터로...
 1491  1492  1493  1494  1495  1496  1497  1498  1499  1500